높은 산에서 발원하여 흐르고 흘러 아래로 아래로 내려온 샘물은 결국 바다에 도달한다. 논어에서 <仁者樂山 智者樂水>라 하나, 산은 고요하고 변함없다는 그 인(仁)의 성정이 오히려 바다와 가깝고, 자유로우며 막힘이 없다던 물의 지(智)의 성정은 나에게 오히려 산과 가깝게 느껴진다. 성인들의 그 깊은 뜻을 속인인 내가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랴마는 주관적 경험의 소치이다. 열심히 두 다리로 걸어 올라가야 조망이 가능한 산은 매 계절의 변화를 온 몸으로 보여주는 변화의 장소이다. 계절마다 풍광이 다른 것은 물론, 한 계절에도 기온과 날씨에 따라 그 변화무쌍함은 가히 상상을 뛰어넘어 감탄을 자아낸다. 물론 휘몰아치는 계곡물이나 풍랑이 거센 바다를 보지 않은 것은 아니나, 늘 가까이 바다를 끼고 자란 나의 지난 세월 속 바다는 주로 잔잔하며 고요하고, 늘 침묵하고 있다. 계절의 변화에 특출한 변화를 보이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그저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 속에 묻히는 걸 좋아한다.
모두에게 바다는 너른 품을 허락한다. 해안가 조그마한 자투리 땅도 건물을 올려 손님 맞이를 하고 바다 조망을 간판으로 내걸고 있다.인지상정이라, 외진곳도, 좁은 길도 마다 않고 그 건물마다 사람이 들어찬 걸 보면 바다를 보고싶은 건 다 내 마음과 같은 거 아닐까. 외가 한적한 시골에도 어찌 입소문이 났는지 화려한 외관의 카페가 들어서 시선을 끌고 있다. 그리하여 나의 한적한 바다 감상에서 오히려 제외되기도 한다. 그러하니, 아무리 바다를 좋아하는 나여도 여름 계절엔 기피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천성이 쫄보에 액티브 하고는 담 쌓고 살았고 번잡한 것을 싫어하니, 인파가 넘치는 여름 바다는 그저 뉴스에서나 본다. 세계적인 관광명소 해운대에 그리 오래 살고 있어도 여름 피서는 해운대를 벗어나 외지로 가는 아이러니한 삶이다.
내리쬐는 여름, 피서지로 바다도 좋으나 차라리 산으로 가서 녹음 속 송림의 바람과 여름꽃 감상을 선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름꽃으로는 나라꽃인 무궁화, 수국, 배롱나무꽃, 칸나, 원추리, 다알리아 등으로 뜨거운 햇빛을 받고 자라서인지 유달리 색들이 화려하고 크다. 그 중 단연 으뜸은 연꽃일 것이다.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자라는 환경에 비해 단아한 그 자태가 시선을 부여잡는다. 아라연꽃 군락지인 함안 연꽃 테마파크나 사하구 생태공원 가시연꽃 군락지의 장관을 본 이라면 충분히 공감하리라 믿는다. 이번엔 아리따운 연꽃과 함께 정갈하면서도 고요히 힐링도 함께 할 수 있는 사찰인 <경남 산청 수선사>로 다녀왔다.
부산해운대에서 2시간 40분 거리, 중간 진영휴게소에서 식사를 해결하니 3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다소 외지고 좁은 산 오르막길을 오르다보면 [아름다운 연꽃도량 수선사]라는 표지판이 반갑고, 더욱 들뜨게 한다.
드뎌 아름다운 절 수선사에 도착. 주차장이 꽤 넖게 계단식으로 마련돼 있다.
다소 가파른 언덕을 살짝 올라가면,이 절의 또다른 명소(?)인 화장실이먼저 나온다. 신발 벗고 입장하는 화장실이라니.절에서 직접 관리한다고 하고 실내화가 입구 준비돼 있다.꼭 들러볼 만하다.
드디어,
시야에 가려진 언덕 너머로 오르면,
푸르고 푸른 너른 연잎과 하이얀 연꽃이 만발한 연못이 나온다. 그다지 크지 않은 연못이나 오래된 나무다리와 주변 나무데크, 그리고 너와지붕의 정자와 어우러진 연화소는 어느 사극의 배경마냥 신비스럽기까지 하다.시대를 거슬러 사극의 한 장면으로 소환된다.
<시절인연時節人然>이란 문구는 또 어찌나 맘에 드는지.잊지 못할 인연을 만나거나, 그리운 이와의 해후의 장소로 이보다 좋을 수 있을까.
당연 인기짱 포토존이다.
연화소 옆으로 길쭉한 건물은 카페가앉아 있다.
연못을 끼고 들어갈 수도 있고 수선사 마당에서 다리를 건너 갈 수도 있는 카페 <커피와 꽃자리>가 자리하고 있다.우선 수선사 사찰 구경부터 하고 시원한 빙수 먹기로 했다.
지금까지 얼마되지 않는 사찰탐방 경험이지만 이렇게 단아하고 정갈한 절은 진짜 처음이었다.사찰마당이 온통 초록 잔디가 깔려있는 것도 신기하고 마치 정원마냥 정성스레 손질된 흔적이 고스란히 보였다. 야트마한 산과 닿은 좌측에 흐드러지게 핀 서양수국은 또 어찌나 반가운지.
사찰이 이리 아름다울 일인가. 그저 방문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곳이라 따로 기원할 마음조차 놓게 되더라.'나무아미타불'이란 6글자만 되뇌이는 불경이 계속 울리는 마당 한 켠에 앉아 본다. 온통 푸르름이 가득한 이 세상 같지 않은 고요와 평화에 그저 편안하고 고른 숨이 쉬어진다.
카페 가기 전 사찰 마당 끝자락에 소원바위가 있다. 그냥 지나치기엔 바라는게 많은 중생이라, 시주하고 정성껏 빌어본다. 세계 평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속 좁은 중생의 내면의 평화만이라도.이곳에서 연화소를 내려다보는 조망도 정말 좋다.
6곡을 곱게 간 가루가 얹혀진 전통 팥빙수가 주는 고소함은 또 다른 별맛이었다.에어컨 나오는 실내 좌석은 몇자리 안돼서 야외로 나왔는데 아래로 펼쳐진 연꽃 보는 맛도 꽤 괜찮았다.마련된 대형 선풍기가 마치 산바람처럼 느껴지는 기분이라니.
다음 일정으로 자리를 떴으나 참 아쉬운 곳이었다.
딱 여름 이 뙤약볕에 가야 이쁜 연꽃과 조우할 수 있는 곳이다.흐르지 못하고 고여 있는 멈춘 진흙탕 속에서 저리도 이쁜 꽃을 피워내는 단아한 연꽂을 보며 살짝 삶의 진리를 느껴도 본다. 내 삶에서 피워날 아름다운 연꽃도 분명 있으리라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