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김지혜 작가 가제본 서평 <00각본>-창비出

by 다담

길어진 장마와 폭우로 전국 여기저기 수해 소식까지 전해지며 우울한 날들이 이어졌다. 축축한 공기와 바닥과 함께 마음까지 젖어 무거웠다. 퇴근 후 현관에 도착한 한 권의 조그마한 책. 쏟아 붓는 비를 뚫고 무사히 도착한 선물이라 더욱 반가웠고 고마웠다.

7월 28일 온라인 서점에 도서가 등록되기 전, 미리 만날 소중한 기회를 얻게 되었으니 이보다 반갑고 기쁠 수가. 더구나 <선량한 차별주의자>로 이미 팬이 돼 버린 김지혜 작가의 신간이라니. 은연 중에 하는 우리들의 말과 행동 이면에 사실 어마어마한 차별이 숨어 있음을 절실히 깨닫게 해준 작가. 차별 당하는 이들은 차고 넘치는데 차별한다는 이는 없는 모순된 현실에 당당히 잘못하고 있다고, 당신들 생각이 그르다고 말하는 작가. 그가 이번에 펼칠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시작부터 사뭇 긴장하게 했다.


당신의 OO은 '정상'입니까

'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교수의 두번째 기획

한국 사회 OO을 해부하다



프롤로그/ 에필로그 외 총 7장의 글 중 가제본에는 3장까지 담고 있었다. 가로 세로 12×18cm의 자그마한 미니책으로 손 안에 쏙 들어와서 들고 다니며 읽다보니 하루만에 끝을 보고 말았다. 뒤가 궁금하여 아쉬움이 길게 남았다. 처음엔 "맞아, 그래, 진짜? 왜 그래야 해? 답이 없을까?"라는 수 많은 의문투성이로 작가 생각을 좇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프롤로그

우리에게 가족이란 어떤 것이며, 가족 안에서 우리의 관계와 역할은 왜 성별로 규정되며 애초에 이 역할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성소수자의 등장으로 혼란해진 가족 각본을 들여다 보며, 당연하다 여겼던 것들을 의심해 보아야 우리가 바라는 가족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가족 각본을 고정된 불변의 것으로 여기게 되면, 가족 제도의 불합리함과 그로 인한 불평들은 그저 개인의 책임과 불운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는 얼마나 슬픈 일인가. 선택하지 못한 출발선상의 불평등이 결국 개인의 책임이라니.


제1장 왜 며느리가 남자면 안 될까

세계적 문화 흐름에 따라 우리나라에도 꽤 다양한 퀴어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고 여겼으나, 실제로 우리나라 국민의 동성애 수용도가 겨우 3.2점 (10점 만점, 네덜란드 9점, 일본 6.2점)이라는 것은 충격이었다. OECD 32개국 (평균 6점) 중 30위라니 그간 여러가지 숨기고 싶은 등위와 함께 또 다른 부끄러움이었다.

며느리와 사위라는 명칭을 비교해 보면, 단순한 성별의 차이만을 반영하고 있지는 않다.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보면, 이는 성별보다 가족 내 역할의 차이를 내포하고 있다. 한 집안의 흥망성쇠를 결정할 만큼 대단한 의무와 책임을 다 해야 하는 며느리이나, 그 지위는 매우 낮다는 모순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평등은 결코 성별로 그 지위가 결정되어서는 안된다. 부모에 의해 결정된 혼인으로 가부장적인 제도 내 유사 노예와 같은 여성의 며느리라는 지위는 얼마나 부당하며 명백한 차별인가. 그러하니 며느리가 남자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기보다는 왜 며느리가 여성이어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는 작가의 지적은 가슴을 뚫는 시원함이 있었다.


2장 결혼과 출산의 절대 공식

우리나라의 초저출산 문제는 20년 간의 지속적인 문제이나 그 해답조차 찾지 못하고 제자리 걸음이다. 작가는 이 문제에 있어서 결혼과 출산의 관계에 대해 묻는다. 적법 출산과 불법 출산의 구분이 과연 타당한 것이며, 출생에서부터 혼외출생자라는 이름으로 차별받는 것이 옳은지. 결혼 안과 밖의 자녀를 구분하는 제도는 남성이 자신과 자신의 공식적 가족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재정적 결과를 피하면서도 성적 자유를 유지하는데 유용할 뿐이라 지적한다. 결혼 제도에 따라 갓 태어난 아이의 운명이 달라진다는 것은 얼마나 불합리한가. 차별을 설계한 사회가 출생부터 차별을 용인하는 사회가 출산율을 높여야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란 것이다.

국가적 위기의 해결책으로 출산율을 장려한다는 것 자체가 사람의 가치를 그저 노동력의 생산 주체로만 파악하는 도구적 사고이니, 평등이 보장되는 사회가 되기 전까지 이 세상에 나가지 않겠다는 아이들의 절박한 집단행동이라는 지적은 무섭기까지 했다.


3장 초대받지 않은 탄생, 허락받지 못한 출산

출생 미신고 영아 사망 사건인 대구 냉장고 영아 살인 사건으로 전 국민을 공분케 하는 뉴스가 연일 보도 되었으며, 미신고 영아에 대한 전수 조사에 들어갔다고 한다. 조사 대상 2123 명 중 200 명이 넘는 영아가 이미 사망하였다 하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초저출산 사회에 이 무슨 모순된 일이라 말인지.

특히 3장에서 작가가 던지는 수많은 질문들은 세계사적 사건들과 맞물려 그간 관심을 가지고 읽었던 타 도서들과 함께 더욱 구체적인 사회의 차별에 대한 저항으로 다가왔다. 자유와 평등을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 헌법을 기반으로 하는 현대 사회에서 왜 유독 가족제도는 평등보다는 전통으로 수호해야 한다는 사고가 아직 지배적일까.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연간 수백의 해외 입양아의 수는 무엇을 말하는가. 이 땅에서는 심각한 차별을 받을 것이니 다른 나라로 떠나보낸다는 논리는 과연 해외 입양 아동을 위한 최선의 선택인가. 역사를 거슬러 가면, 국가에 출산에 깊이 관여한 것은 20세기 초 우생학의 등장 이후이다. 우수종을 번식시키고 열등종을 없애야 한다는 의학과 과학의 결합으로 자행된 수 많은 인종차별의 만행들. 나치의 대학살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시 한센인과 장애인에 대한 강제불임 시행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마치 인류의 발전을 위한다는 가면으로 사람의 가치를 경제발전의 도구로만 서열을 매기는 우생학은 소수자에 대한 차별의 이론적 기반이 되었던 것이다. 임신과 출산이 국가적 수단이 아니라 국가가 보장해야 할 개인적 권리임을 확인해야 한다.


차별을 용인하고 묵인할 때에는 누군가의 출산을 막는 일이 아동의 권리를 옹호하는 일처럼 보였겠지만, 차별과 맞서기로 결정한다면 양육자의 권리가 곧 아동의 권리이고 가족의 권리를 옹호하는 일이 모든 사람의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옹호하는 일이 된다. -P92


아직은 갈 길이 먼 우리사회의 가족 내 평등을 위한 작가의 현 제도 분석과 함께 스스로 질문해 보는 반성의 시간들이었다. 잘못된 각본이 결국은 연극을 망치듯이 고정되어 변화를 담지 못하는 가족 각본은 결국 차별을 더 양성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며 이는 변화의 출발점이 어디인지를 암시한다.

곧 만날 완성본에서 작가가 해부해 줄 이 사회의 차별에 부끄럽고 아프겠지만 반드시 대면해야 할 치부임을 알기에 용기 내어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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