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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담 Oct 02. 2022

현명한 울 아빠

인생 별거 아니야

 지금도 찾아뵈면 늘 변함없이 함박 웃으며 두 팔 벌려 안아주시는 울 아빠. 꼭 안으시고는 등을 토닥거리신다. 아무 말도 하시지 않으나, 다 안다고 괜찮다고 잘 왔다고 그렇게 토닥거려 주신다. 그러면 내 맘은 또 그렇게 풀리고 따스히 데워진다.

 지금껏 살아온 세월 속에 만난 인연들 중에 만날 때마다 이렇게 변함없이 해맑은 미소로 날 반겼던 이가 있을까. 엄마는 항상 억울하다고 하신다. 실제적인 뒤치다꺼리는 당신께서 다 하시는데 정작 자식이고 손주고 사위들조차 아빠를 더 좋아한다고. 그런 점에서 아빠는 참 현명하시다.


 어쩔 수 없는 옛날 사람인 아빠는 보수적이시다. 삶의 스타일부터 사회를 보는 시각, 해석 모든 면이 변함없이 보수적이시다. 하지만 아빠를 아는 그 누구도 어울리기 어려운 사람이란 말을 하지 않는다. 이제는 연세도 있으셔 만나는 사람이 거의 제한적이고 바깥출입도 줄어들어 가족에 한정된다 하더라도. 좋아하는 음식이 있으면 아빠를 떠올리며 같이 먹으며 즐기기를, 같이 대화하기를 원한다.

 물론 50년을 넘게 부부로 살아오신 엄마에게는 아빠의 평가가 예외이리라. 부부 사이는 자식이라도 다 이해하지 못하는 세월 속 두 분만의 켜켜이 쌓인 감정들이 있을 것이니 그것까지 판단할 수는 없다. 허나 엄마조차 인정하시는 아빠의 가족을 대하는 무한 사랑의 태도는 경이로울 정도이다.


  3녀 1남의 자식 중에 둘째 딸인 나는 어찌 보면 아빠랑 가장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딸이다. 장녀인 언니는 맏딸답게 부모님을 살뜰히 위한다. 사고의 깊이는 나머지 자식들의 범주를 벗어날 만큼 깊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안 계실 때는 언니가 부모 대신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고, 그렇게 동생들을 건사했고 우리도 언니를 그리 생각했으니 거진 반 부모인 셈이다. 밑의 여동생은 아빠와 가장 가깝다. 어려서부터 엄마보다 아빠를 더 좋아했고, 그만큼 사랑을 독차지했다. 유아 적 잘 때에도 엄마 젖가슴보다 아빠 손가락이라도 잡고 자는 걸 좋아했으니 어찌 이쁘지 않으랴. 직설적인 성격 탓에 가장 맞서기도 하지만, 가장 가까이서 챙겨 주기도 한다. 장손인 남동생에 대한 무한한 애정은 여러 일화가 회자될 만큼 각별하다. 그럼에도 여태껏 아빠가 우리를 차별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할 만큼 우리 각자에 대한 애정은 어느 누구랄 것 없이 애틋했다. 단지 표현이 서툰 내가 오히려 아빠에게 애정 표현을 아껴 온 것이리라. 아빠 역시 가장 순하다는 날 언제나 따스한 눈길과 따스한 포옹으로 수많은 말들보다 깊은 애정을 표현해 주신다.

 마음이 허하고 추울 땐 그냥 부모님께 가서 아빠의 따스한 포옹과 엄마의 따스한 밥 한 끼에 삶의 온기를 다시 채우고 온다.


 어느새 이렇게나 세월이 흘러와 버린 요즘, 나도 나려니와 요즘은 부모님들의 남은 세월에 대한 생각들로 괜스레 가슴이 아리고 눈물이 나는 순간이 잦다. 아직 내 삶도 스스로 감당하기 버겁고 무겁기만 하다. 허나 돌이켜 보면 그래도 가까이에 계시는 부모님 덕에, 그래도 아직 건강하신 부모님 덕에, 자식을 현명하게 키워내신 부모님 덕에 이렇게나마 행복함을 느끼며 산다. 엄마의 무한 희생과 베풂은 또 따로 지면을 할애해야 할 만큼 그 깊이가 무궁하다. 여기서는 아빠가 늘 해주셨던 말씀 되새기며 나름의 조그마한 감사를 표하고자 한다.  

   

책값 아끼지 마라


 아빠 친구분들은 딸 교육에 열의를 다하는 아빠를 이해하지 못하셨다. 그저 살아가기도 빠듯한 세상에 자식들 고등교육까지 다 시킬 필요 있냐고. 게다가 딸들인데. 시집만 잘 보내면 됐지, 그러셨다. 하루를 마감하고 친구분들과 동네 포장마차서 약주하는 아빠를 저녁 드시라 모셔오는 심부름을 종종 했다. 다들 거나해진 얼굴로 한참 얘기하시다 날 보고 친구분께서 ‘네년들 탓에 니 애비 등골 휜다’는 얘길 들으며 죄인처럼 고개 숙인 적이 있다. 그때야 몰랐는데 지금 돌아보니 그때 아빠 나이가 지금 남편 나이 정도이니 그 어깨 얼마나 무거우셨을까. 다행히 공교육 평준화와 과외 금지의 시대라 따로 사교육비가 들지 않았다 하더라도 자식 넷 각자 책값만 해도 만만치 않았다. 그 책값을 부모님은 한번도 안 된다며 사주지 않은 적이 없었다.

 집 거실이며, 방이며 둘러싼 곳은 다 책장으로 메워져 책이 가득하니 그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신기하게 아직은 어느 책이 어디에 있는지 대략 알아 쉽게 찾을 수는 있으나, 곧 엉망이 되리라. 그래도 아직은 e-book보다는 활자책을 선호하고 대여보다는 직접 구입하여 밑줄 긋고 한 귀퉁이 메모하는 걸 좋아한다. 사 두고 다 읽지 못한 책들도 많으니 책 중독인가 의심도 해본다. 그래도 책 구입비는 아낌없이 쓰는 건 아빠의 오랜 가르침 덕이라 믿는다. 젤 중요한 재산은 머릿속에 두는 거라고 항상 책값 아끼지 말라셨던 그 말은 지금도 나의 생활 신조이다.

     

음식이 보약이다

 넉넉지 못한 형편에 네 명의 자식들을 대학까지 보내셨으니, 집안 경제를 담당한 엄만 늘 부족한 돈 걱정에 머리가 아프셨을 것이나 돌아보면 우린 항상 풍족한 간식거리로 매일 저녁 행복했다. 음식 솜씨가 남달랐던 엄만 직접 깨끗한 재료를 손질하여 우리들의 간식을 만들어 주셨다. 지금의 나조차 도전하기 어려운 순대며 케이크며 핫도그 등등 무엇이든 먹고 싶다는 건 어찌 방법을 아셨는지 뚝딱 만들어 주셨다. 여기엔 외식을 싫어하시는 아빠가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어찌보면 간 큰 남편일 수 있는 그 아빠 덕에 우리는 행복했으나, 돌이켜 보면 참 힘드셨으리라. 엄마를 그리 움직이게 만든 울 아빠. 아직도 우리는 매일 저녁 하루를 마감하는 엄마의 가계부 정리하는 모습이 선하다. 그 깨알 같은 글자며, 혹여 단돈 500원이라도 비는 날엔 딸 셋은 비상상태로 엄마와 함께 엄마의 하루를 다시 훑었다. “아~맞네. 거기 썼지!”라는 엄마의 미소를 봐야 우리도 하루가 마감되었다.  

 어떤 음식이든 먹기 전 아빠는 그 음식의 좋은 점을 열거한다. 이래서 좋고 저래서 좋고, 하시며 항상 맛나게 드신다. 물론 정말 엄마의 음식 솜씨는 훌륭도 하거니와 그래도 모든 음식이 그리 다 보약일까 싶을 만큼 아빠에겐 집에서 먹는 엄마 집밥이 만병통치약이었다. 따뜻한 집밥 한 끼 잘 먹는 게 삶의 에너지임을 다 커서 실감하니 과연 울 아빠는 현명하시다. 지금도 세상 억울하고 기력 소진하면 엄마에게 가서 음식 자랑하는 아빠와 한 끼하고 오면 그렇게 또 삶이 그럭저럭 살만하다.

     

칭찬 아끼지 마라

 항상 울 딸이 최고다. 해낼 줄 알았어. 그 정도면 훌륭해. 어디 봐도 우리 딸 만한 애 없더라. 인생 별거 아니야 하면 돼. 안되면 또 어때, 잘했어. 분명 과장된 칭찬임을 아는데 가끔은 아빠의 그런 칭찬 소리가 그립다. 뭘 대단히 이뤄 놓은 것도 없고 그저 하루 살아내기에 최선을 다하고는 있으나, 늘 인정받고 늘 칭찬받는 삶이 어디 있으랴. 노을지는 저녁 하늘에 마음이 텅비기도 하고 무기력함에 그저 땅으로 꺼지는 날도 있다. 허나 그래도 내 삶의 방향성을 잘 지키며 바르게 살고자 노력한 건 믿어 주는 부모님 덕이리라. “밥 먹었니?”라는 엄마의 한 마디, “잘했어.”라는 아빠의 칭찬에 또 힘을 내 본다. 칭찬에 궁색하지는 않은지 나를 돌아보면서.


 이번 주말 오후, 좋아하시는 팥빵이라도 사 들고 아빠 뵈러 가는 길, 햇살 따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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