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에는 봄나들이를 가야겠습니다.'
다소 비장미가 깔린 문자를 받았다. 그저 나들이를 가자라는 제안투보다, 갔으면 좋겠다는 희망투보다 훨씬 나를 자극하는 말이었다. 안 가면 안된다는 강압의 느낌과 함께 간절함이 깃들어 감히 안돼요라든가 글쎄요라고 답할 수 없는 표현이었다.
전국이 설렌 봄의 향연으로 들썩이니 누군들 집밖을 나가고 싶지 않으랴. 짧은 봄을 그저 보내고 후회하고 싶지 않다는 그의 말애 또 장소를 물색해 본다.
누군가들의 정성으로 올린 사진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되는 시 구절들이 있다.
아름다운 이 계절을 한 폭의 시로 풀어 낸 작품들을 만나보자.
사랑의 셀렌 시작과 이별 후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배를 매는 것과 배를 미는 행위로 멋드러지게 쓴 장석남 시인의 또 다른 시 <수묵정원9-번짐>를 만나 보자.
이 계절과 어우러지는 시이자, 우리네 삶의 모습을 이다지도 쉬우면서도 아름답게 형상화할 수 있다니.
수묵정원9-번짐
-장석남
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
또 한 번-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
번짐,
번져야 사랑이지
산기슭의 오두막 한 채 번져서
봄 나비 한 마리 날아온다
수묵화 기법이라 할 수 있는 번짐을 통해 조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시인의 소망이 잘 드러난다.
결국 이 세상은 번짐으로 서로 살아가고 사랑하는 것이라는 시인의 혜안을 볼 수 있다.
'번짐'이라는 부제를 상징적 핵심어로 사용하여 시의 무게 중심을 잘 지키고 있다.
계절의 순환도 번짐이요, 인간관계도 알고 보면 서로에게 번짐이요, 각 예술 장르를 예술답게 하는 것도 번짐이요, 삶과 죽음도, 시간의 흐름도 역시 번짐이요, 자연과 인간도 결국 서로 번짐으로 조화를 이룬다.
그러하니, 굳이 상호 경계를 나누어 단절시키지 말 것이며, 어우러져 서로 스며드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삶에 대한 철학적인 사유가 이보다 명쾌할까.
시인의 시 창작 발상이나, 역설적 깨달음과 감각적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이 계절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
이별의 미학이라 칭할 만큼, 이별을 이다지도 아름답게 시로 승화할 수 있다니
봄이 되면 어김 없이 나를 매료하는 시는 다름 아닌, 이형기 시인의 <낙화>이다.
낙화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불교학과를 졸업하신 영향일까. 그의 시에는 소멸이 끝이 아님을 또다른 인연으로 이어지기 위한 과정임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불교적 인연설이 보인다. 물론 청춘의 사랑이 비장하게 죽음으로 이루는 영혼의 성숙은 그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니, 샘터의 물이 서서히 차오를 것을 믿는다. 흩날리는 꽃비를 보며 결별의 의미를 성찰하는 그의 시는 단연 봄의 시 중에 정수라 할 수 있다.
분분히 흩날리는 꽃잎어여
당장의 소멸을 아쉬워말라
그대의 생이 다시 단단한 열매로 맺음하리니
그저 한 생이 다른 생으로 모습을 바꿀뿐
그대의 엉혼은 깊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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