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최은영작가 -밝은 밤

-슬픔을 위로하는 더 큰 슬픔

by 다담
제29회 대산문학상
올해 우리 소설이 이룬 최고의 성과 (심사평에서)


최은영 작가 : 2013년 '작가세계' 신인상 중편소설 <쇼쿄의 미소> 당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 2021년 첫 장편소설 <밝은 밤> 대산문학상 수상 외 제5회 제8회 제11회 젊은 작가상 수상. 2022년 짧은 소설집 <애쓰지 않아도> 출간.


2022 여름 한정 에디션으로 출간


지나친 나의 염려와 지나친 고민들로 숙면은 애당초포기하고 깨는 날엔 그냥 깬대로 시간을 흘러보내다가 잠이 오면 다시 자기로 했다. 그런 시간에 들고 보았던 책을 소개해 볼까...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만은 없는 책이었다. 젊은 작가의 문체와 깊이가 의외로 몰입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근 백여 년의 세월 속 4대에 걸친 그녀들의 굴곡진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꽤 아팠다. 참 녹록지 않은 여인들의 삶이자 우리 민족사이다. 백정의 딸이라는 신분의 굴레로 일제강점기를 산 증조모 삼천이와 피란지에서 속이고 결혼한 아내가 낳은 자식이 딸이라 돌아보지 않고 전처와 아들에게 돌아가 버린 아버지를 둔 할머니 영옥, 그런 어머니의 순한 딸이나 늘 거리감을 느꼈고 어린 큰딸을 잃고 상실감을 안고 산 엄마 미선, 언니의 존재를 언급조차 할 수 없는 삶을 살았으나 결국 남편의 외도로 이혼은 한 딸 지연. 이렇게 아픔이 응축된 집안이 있을까 싶다가도 조금만 둘러보면 우리 모두의 역사 속 우리 할머니 이야기이고 우리 어머니 이야기이고 형제자매 이야기인 것이다.


우리는 둥글고 푸른 배를 타고 컴컴한 바다를 떠돌다

대부분 백 년도 되지 않아 떠나야 한다. 그래서 어디로 가나.

우주의 나이에 비하면 아니, 그보다 훨씬 짧은 지구의 나이에 비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삶은 너무도 찰나가 아닐까.

찰나에 불과한 삶이 왜 때로는이렇게 길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참나무로, 기러기로 태어날 수도 있었을텐데, 어째서 인간이었던 걸까.

-P130


남편의 외도로 이혼했으나 그 아픔을 참고 평범하게 살기를 바랐다는 엄마인 미선에게 분노하는 지연이, 딸에게 청혼한 사나이가 이미 북에서 결혼한 경력이 있음을 알고도 묵인하고 결혼시킨 아버지를 둔 할머니 삼천이와 그 아내와 딸을 버리고 가버린 아버지를 둔 엄마 미선이 큰딸을 잃고 견뎌온 아픔이 너무나 고스란히 전달되어 내내 인생의 쓴맛을 느끼며 읽었다. 어느 날은 역전에서 옥수수를 팔다 일본군에게 끌려가기 싫어 병든 어머니가 만류함에도 낯선 남자 따라 개성으로 시집가는 증조모가 되기도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핑계는 위로가 되지 않는다. 남은 자는 결국 쓴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또 어떤 날은 다정했던 남편을 잃고 피란길에 찾아간 친구 집에서조차 머물지 못하고 어린 딸을 끼고 다시 추운 피란길을 떠나는 새비 아주머니가 되어 온몸으로 추위를 느끼며 떨기도 했다.


긴 터널 속에 갇힌 듯 심장이 조여오는 아픔과 짙은 먹빛 어둠 속에서 견뎌야 하는 것은 역사 속에서 여인들에게 더 가혹했다. 다행 그 여인들에게는 서로의 시린 가슴을 어루만져주는 벗들이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특히 증조모 삼천과 새비 아주머니의 우정은 깊이 인상적이었다. 사진으로 몇 번 묘사되는, 곁에 앉은 친구의 한쪽 손을 따스히 잡아주는 장면으로도 둘의 우정이 보인다. 서로에게 긍정적 힘으로 감싸주는 벗이 있어서 그 추억으로 각자의 삶에 고통이 있더라도 온전히 마주하고 이겨 낼 수 있었으리라.


내가 지금의 나이면서 세 살의 나이기도 하고, 열 일곱 살의 나이기도 하다는 것도, 내게서 버려진 내가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도.

그애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관심을 바라면서 누구도 아닌

나에게 위로받기를 원하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P337


결국은 모두가 종말을 맞아야 하는 인생을 살고 있는 우리네 삶에서 그래도 살 이유를 찾자면 답은 사랑일 것이다. 지연이가 희령이라는 옛 고향에서 증조모와 할머니의 삶 속에서 끈끈한 사랑을 느끼고 다시 자신을 마주하고 사랑하여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듯이, 우리들에게 '문득' 닥친 긴 어둠 같은 고통을 이겨내리라 믿는다. 스스로를 마주하면서 위로하며 타인의 아픔도 보듬고 안아주는 사랑으로 남은 시간을 함께 할 것이다.


마지막 장을 읽고 나니 먹먹한 마음속 한 가닥 희망이 눈물 되어 뺨을 타고 흘렀다. 어린 시절 동무를 만나러 가는 할머니와 그를 배웅하는 지연이에게 앞으로 기쁜 일이 더 생기기를 바랐다.


-슬픔을 위로하고 감싸주는 것은 더 큰 슬픔의 힘이라는 평이 가슴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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