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전벽해에도 변하지 않는 것
돌이켜보면 우리들의 청춘은 결핍의 시대였다. 아껴야 잘 산다는 부모님의 가치관 아래 풍족한 게 없었다. 시대가 가난하기도 했으며, 다들 그리 살았다. 몽당연필을 요즘 아이들이 알까. 설빔이니 추석빔이니 하는 말을 듣고 자라지 못한 아이들이 낮은 곳에서 아직 그 시대에 머물러 살아가는 이들에 공감할 수 있을까.
교실마다 분실 문구가 바구니에 항상 가득해도 찾는 이는 없다. 청소시간 바닥에 뒹구는 동전을 주워라하면 필요없다는 대답도 적잖이 나온다. 학년 진급 후 아예 겉옷이나 가방조차도 찾지 않는 아이들도 있다. 이렇게 물질적으로 풍족한 아이들이다. 그러면 그에 따라 마음도 여유 있고 너그러워져 타인에게 베풀고 그렇게 행복에 겨워 사는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더 메마른 정서에 더 외로움을 느끼고 자꾸 더 요구하는 결핍상태이다.
말그대로 퓽요 속의 빈곤이다.
결핍은 혼자 메우기 버겁다. 우리들은 모두 각자 결핍을 안고 있었기에 다같이 그 구멍을 메울 줄 알았다.
어찌보면 그 결핍은 그저 물질적으로 고만고만하게 부족한 것들이라 다른 측면에서 메우면 된다. 다들 그저그런 집반찬을 싸온 도시락이지만 모아보면 제법 근사한 뷔페가 된다. 그렇게 둘러 앉아 한끼를 나누고, 골목 구석구석에 흩어져 있는 자잘한 둥근 돌들을 주워 또 다같이 모여 살구놀이를 한다. 공 하나만 있으면 공터는 최고의 놀이터였다. 누가 가져온 고무줄이라도 있으면 뉘엿 저녁놀이 퍼질 즈음 집에서 밥 먹자는 부름이 있을 때까지 같이 놀았다. 각자 집으로 달려가는 골목길에 가득 퍼졌던 밥짓는 내음과 친구들 얼굴마다 가득했던 미소는 아직도 선명하다. 친구집 사정 쯤이야 다들 알았고, 늘 보는 친구라도 그렇게 손편지를 주고받으며 마음을 나누었다. 물질적으론 모자랐으나 넘치는 정으로 웃음이 끊이지 않던 또다른 풍요의 시대였다.
요즘 아이들은 제각각 따로 논다. 같이 어울리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집에서도 바쁘신 부모님과 같이 하는 시간이 적고, 귀한 외동인 경우가 많으며 친척들과 교류도 그다지 많지 않다. 가족 명단에 반려견은 넣어도 할아버지 이모 삼촌은 없다 한다. 혼자에 익숙하다. 더구나 세계적인 팬데믹이 3년을 넘어서연서 더더욱 혼자 있는 시간이 넘쳐난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누구나 거리두기를 하게 하고 집콕을 권장한다. 자의든 타의든 혼자가 익숙한 시간들이 이어졌다. 혼자에 익숙해져야 했고 혼자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았다. 그리고 타인과 어울지 않고 혼자 노는 데는 제법 비싼 경제적 기반이 필오하다. 적어도 컴퓨터나 스마트폰 게임기 등 디지털 기기가 갖춰져야 하고 쉽게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 돈도 있어야 한다. 학생들의 한 달 용돈 씀씀이를 들으면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원격이니 온라인이니 디지털 기기에 의존한 수업이 길게도 이어졌다. 일상회복이라는 타이틀로 교실에 다시 집합시키고 보니 더더욱 관계 맺기에 어색한 아이들의 문제가 여기저기 터진다. 기초학습력은 떨어지고 공동체 생활에 길들여지지 않은 청소년들은 협업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여 쉽게 포기하거나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서로의 의사 전달이 제대로 되지않아 어긋나니 툭하면 오해하고 상처받고 상처 주는 일로 호출한다. 삼자대면 후 차근차근 각자 입장을 얘기하고 서로의 진심을 전달하게 하면 풀리는 일이 태반이다. 서로 같이 함께 하는 시간이 부족했음을 절실히 느낀다. 말 그대로 부대끼며 알아갈 시간이 없었던 아이들의 성장통을 고스란히 지켜보고 있다. 물질적인 풍요로운 지지 속에 사람다움이 결핍된 아이들의 아픔이 안타깝다.
넘치는 물건들에 막혀 제스스로 가슴은 말라가는 또 다른 결핍의 시대이다.
이 아이들의 결핍을 보듬어 주어야 할 때이다. 혼자 견디는 아이들에게 더불어 함께 어깨동무할 때 얼마나 힘이 되는지 알게해야 한다. 부디 물질에 정신이 매몰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진정한 픙요로움은 사람이 전해주는 따스한 온기로 가득할 때임을 느끼길 바란다. 안전하다는 이유로 집안에만 방치되지 않기를 바란다. 점점 더 혼자에 익숙해지는 아이들이 입시라는 치열한 관문을 통과에 사회에 나아갔을 때 넘치는 사람과의 관계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지 심히 염려스럽다.
심신의 조화로운 발전이 안되니, 자아존중감 형성이 더디고 기본 학습능력의 저하로 문제 해결력도 미비하다. 게다가 소통의 부족으로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바탕으로 하는 공동체 의식의 부족을 학교에서 교육만으로 해결될까.
풍요와 빈곤의 대상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과잉 풍요는 없는지 필수빈곤에 처하진 않았는지..아무리 상전벽해의 급변하는 시기라 해도 결국 더불어 함께 살아야 하는 우리는 사회적 동물인 것이다. <함께, 같이>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풍요와 결핍의 경계에서 조금이나마 아이들이 덜 상처받기를 바라는 이느 한 어른의 푸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