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른 갈대밭을 품은 순천문학관

순천이 낳은 작가 김승옥, 정채봉

by 다담

쳇바퀴같은 하루, 늘상 옥죄는 업무 압박, 도처에서 다가오는 경쟁자들...이런 숨 막히는 일상에서 도피하고 싶다고 느끼지 않은 현대인이 있을까. 매일이 스트레스이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반복되는 삶 같아도 그 속에서 보람을 느끼기도 하고 도전과 성취의 쾌감도 있을 것이며, 무엇보다 물질적 보상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휴일이면 도시를, 일터를 벗아나려는 그 물결들은 일탈의 욕망을 지닌 우리네 모두의 모습일 것이다.


나에게 그런 도피처는 늘 자연의 품이었다.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고향이 없는, 혹은 고향이란 따스함과 어울리지 않는 도시가 고향인 현대인에게 말 없이 맑은 자연은 그 속에 잠시 머무르는 것으로도 위안을 준다. 너무 많은 볼거리 시각과 너무 큰 소리들의 청각적 자극에 지친 일터에서 벗어나 오로지 나도 하나의 작은 일부일 뿐인 자연에선 그저 조화로운 볼거리와 소리가 있을 뿐이다. 거슬리는 자극은 없다.


부산에서 순천까지의 짧지 않은 여정에서 거치는 휴게소 방문도 즐거움의 하나이다. 휴게소 벤치에 앉아 오가는 이들의 얼굴에 비치는 설렘을 보거나, 커피 한 잔의 여유와 휴게소만의 간식, 가끔 옛 포크 음악이 흘러나오면 더욱 좋다.


김승옥 작가의 소설 <무진기행>의 주인공 희중에게 무진은 일상의 서울과 대비되는 탈일상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작가 김승옥의 고향인 순천을 배경으로 쓴 소설이니 순천에 가면 안개를 볼 수 있으려나 설렜던 기억이 난다. 잊고 살았던 옛날의 나로 대하는 고향 사람들에 의해 본인 역시 그 시절의 나로 고스란히 돌아가는 것, 그리하여 다시 사랑에 빠질 수 있었던 그이나 결국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고 마는 그에게 무진은 그냥 일탈의 장소이고 꿈의 공간일 뿐이었다. 그저 잠시 쉬었다 가는 곳, 속박은 잊고 잠시 원하는대로 해 봐도 되는 곳. 그런 몽환적 분위기를 서정적 문체로 풀어낸 작가의 필력은 두고두고 존경스럽다.


너른 갈대밭 사이를 천천히 완상하는 그 여유로움은 어느 계절에 가도 만족감을 준다. 푸른 갈대가 햇살에 반짝이는 봄도, 누렇게 익어 버석거리는 소리가 쓸쓸한 가을 갈대밭도 운치가 있다. 이래저래 여러 번 오게 되는 순천만습지 갈대밭이지만, 그 초입에 있는 문학관은 찾는 이가 드물었다.

몇 해 전 뇌졸증으로 투병하던 김승옥 작가의 회복 소식에 기뻐하며 그의 그림책을 구입했었다. 글로 쓰던 그의 감각적인 서정성은 그림에서도 잘 드러났으며, 그의 부단한 노력이 그대로 보여 다시 존경심을 느꼈었다. 글이 아나라면 그림이라도 그리며 창작의 끈을 놓치 않는 그는 천상 예술가였다.

현대인의 비정성을 잘 보여주는 그의 또다른 소설 <서울,1964년 겨울>이나 <무진 기행>을 읽고 그의 문학관을 방문한다면 더욱 깊은 감성에 젖으리라 믿는다. 더불어 바로 이웃에 또다른 순천 출생 동화 작가 <정채봉관>도 빠뜨리지 말고 들르기를. 어린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의 글 속에는 무한 깊이의 인간애와 따스함이 가득하다. "동심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그와 법정 스님과 주고 받은 편지, 그의 죽음을 애도한 수많은 문인들의 친필 글도 만나 볼 수 있다.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된 "오세암'을 어찌 그냥 아이들만의 동화라고 얕게 볼 것인가.


너른 갈대밭을 끼고 자리한 토속적인 문학관 흙마당에서 온가족이 전통놀이를 즐겨보는 것도 재미이다. 딱지며 팽이며 투호 등 옛놀이 도구가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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