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한끼를 십 년 동안 하다 보니 저절로 터득된 문제
내가 일일 일식을 오랫동안 해왔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의 첫 번째 질문은 압도적으로 다음과 같다.
배고픈 걸 어떻게 참나요?
그런데, 의외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간단하지도 명쾌하지도 않아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머뭇거렸다. 무엇보다 마음 밑바닥에 있는, 일일 일식이 일부 부정적 셀프 이미지를 가진 사람들의 극단적 단식법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될 수 있으면 피해 가고 싶었다. 하지만 일일 일식 애호가로서, 일일 일식을 하다 보면 누구나 피해 갈 수 없는 공복감에 대한 관리와 조절 얘기에 입을 다무는 것 또한 적절치 않기에 오늘 말문을 열어보기로 한다.
십 년 전에 처음 일일 일식을 시작할 때는 삼주 정도 하다 그만둘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보통 다이어트하듯이 무식하게 참았던 것 같다. 하지만 최근 2~3년을 돌아보면 분명히 내게 공복을 어렵지 않게 유지하는 팁들은 존재해 왔다. 다만 일일 일식이 누구에게나 맞는 방법이 아닐 수 있는 것과 같이, 내가 팁이랍시고 제공하는 이 것 들도 맞지 않으시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것이다. 다만 수집된 정보들 중에서 본인에게 맞는 옥석을 잘 찾아가시기를 바라며, 몇 개의 선택지를 드린다.
일일 일식으로 어느 끼니를 먹을까 고민하는 분들에게 나는 항상 점심을 추천한다. 내가 그렇게 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무 환경, 가정환경, 선호하는 음식의 종류 등 개인의 사정이 모두 다르므로 몇 가지 장점을 포기하더라도 장기간 유지할 수 있는 맞춤형 끼니가 있다면 나는 그 한 끼를 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그것이 점심일 뿐이다.
점심 한 끼를 먹는 일일 일식은 기상해서 11:30까지가 한 구간, 그리고 점심식사가 끝난 후인 12:30부터 취침하는 자정까지가 한 구간, 이렇게 두 구간으로 나누어 공복감을 다스려야 한다. 나의 경우 기상이 오전 7시이니까 첫 번째 구간에서는 얼추 다섯 시간 반, 두 번째 구간에서는 대략 12시간을 공복 상태로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아침 구간은 거의 공복감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특별한 비법이 없다. 너무 맥 빠지는 정보일까?
일일 일식을 규칙적으로 한 달 이상 성공적으로 유지하게 되면 그 전날 먹었던 끼니때에 찾아오던 공복감 -어제 아침을 오전 7시에 먹었으면 그 다음날 오전 7시에 공복감이 오는 것이다- 이 반 이상 줄어든다. 여기서 내가 주장하는 위 근육설이 나온다. 사람은 먹어야 사는 동물이니까 절대적인 단식 상태는 당연히 자연스러운 공복감을 야기한다. 근육설에서 말하는 공복감은 사느냐 죽느냐가 달린 공복 상태가 아니라 어제 오후 3시에 먹었었는데 오늘 오후 3시에 음식물 섭취가 안될 때 위가 수축, 이완 운동을 반복하며 쥐어짜는 그런 기억성 공복감이다. 즉, 몸이 음식을 필요로 하는 똑똑한 외침이라기보다 주기적인 근육운동을 하기 위한 다소 페이크성 공복감인 것이다.
이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어떻게든 한 달 정도만 일일 일식을 성공하게 되면 더 이상 페이크성 공복감에 시달릴 필요가 거의 없다는 것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어느 시점에 달하면, 어느 한 끼든 본인이 선택한 하루 한 번의 식사시간에만 공복감이 찾아오게 될 것이다. 이것이 이론적으로 일일 일식이 장기간 유지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끼 먹는 사람이 끼니때마다 찾아오는 종류의 심한 공복감을 일일 일식을 하면서도 평생 경험해야 한다면 아무도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이론상으로는 그렇다.
다만 활동량의 정도, 기후, 몸의 컨디션, 환경적 무드, 섭취한 열량에 따라서 한 끼 식사 외에도 공복감을 느낄 수는 있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일일 일식으로의 전환 초기에 경험하는 심한 공복감이 아닌 경미한 충동 정도에 그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경미함 또한 폭식은 아니더라도 일일 일식의 '금식'을 방해할 만큼의 음식물 섭취를 충분히 유발할 수는 있기 때문에 사람마다 나름대로의 요령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나의 경우,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차갑거나 뜨거운 블랙커피가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
다만 공복일 때 음용해야만 효과가 있다. 나를 포함해서 카페인 쇼크가 있는 사람들은 공복에 한잔 이상의 강한 블랙커피는 불안, 초조, 심장 두근거림 등의 쇼크 현상을 겪을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하지만 카페인의 정도를 잘 조절하면 식욕을 억제시키는 효과가 분명히 있다. 실제로 작년에 두어 달에 걸쳐, 일을 한 주중 나흘 동안 점심시간에 블랙커피 두세 잔을 마신 것 외에 특별한 음식을 섭취하지 않은 적도 있다. 공복감이 없었음은 물론이다. 물론 음식 섭취를 극도로 제한하는 것을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그때는 나름의 상황적 이유가 있었고 실험적으로 어느 한 부분이 가능하다는 것을 얘기하려는 것이다.
공복에 블랙커피만 있었으면 내 인생이 훨씬 순조로웠겠지만(?) 나의 또 다른 글에서도 밝힌 것처럼 올해 초, 고질적인 요도염을 해결하기 위해 커피를 끊게 되었다. 그 이후 커피 없이 살던 팔 개월 동안 문화적, 정서적, 습관적으로 금단현상을 겪으며 힘들었던 것은 차치하고라도 전에 없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공복감에 참으로 난감했다. 하루한끼는 지켜졌지만 오후 여섯 시쯤 일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으면 온갖 주전부리가 머릿속에 떠올라 전에 없이 오징어 다리도 물고, 새우깡도 먹으며 저녁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같은 상황에서 커피 한잔 마시고 끝났을 일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나자 아, 나는 태생이 주전부리가 없고 공복감이 없어 맞춤형 일일 일식 인간이었던 것이 아니라 공복에 블랙커피가 지탱하는 지극히 평범한 인생이었구나를 깨닫게 된 것이다.
블랙커피를 공복에 음용할 수 없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위에 생채기가 있거나 위염, 위궤양 등 위벽이 약하고 염증이 쉽게 일어날 수 있는 분들은 분명히 피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두 번은 괜찮을지 몰라도 장복하는 것은 문제를 키우게 될 것이다. 블랙커피를 잃어버린 내가 취했던 다른 방법은 껌 씹기였다.
어젯밤에 시청한 어느 탐정 드라마에서 80년대를 배경으로 연기하는 주인공이 은단 껌을 씹으며 금연을 지켜내는 모습- 어렸을 적 기억에도, 얄팍하고 동그란 통에 가득 들어있는 통깨 같은 은단을 자주 꺼내 드시던 어른들이 주변에 있었다 - 을 보고 나의 껌 씹기를 투영하게 되었다. 은단 자체로 니코틴 중독을 방해하는 성분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 구글 하면 나오겠지만 구글 하면 나오는 지식 따위 요새는 귀찮다 - 요즘 대부분의 껌에 들어있는 매니톨, 민트향 등의 입속을 화아 하게 맵고 청량하게 해주는 맛이 은단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둘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머릿속에서, 그리고 입속에서 맴도는 생각과 맛을 싹 씻어내 주는 역할 말이다. 뭔지 모르지만 입이 심심하다고 생각할 때 한 번씩 껌을 씹어보면 어느새 혓바닥의 모든 욕망들이 리셋되어 한동안은 아무 생각이 없어지기도 한다. 물론 의미 없는 껌 씹기를 너무 자주 반복하는 것은 턱관절에 안 좋을 수 있으므로 과용은 금물이다.
일일 일식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극적인 음식을 줄여가게 된다. 오랫동안 공복이었다는 것은 혀와 입술, 식도, 위, 장 모두가 오랜만에 음식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종교 등의 이유로 일주일 동안 금식을 하면 첫끼는 당연히 미음이나 각종 죽 종류의 음식으로 시작하게 된다. 그만큼 몸의 각 기관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시간을 주며 차차 그보다 조금 더 소화하기 힘든 다른 종류의 음식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그것과 똑같이 12시간 공복 후에 섭취하는 음식이 불닭 볶음면, 불맛 나는 오징어볶음, 매운맛 양념치킨 이런 음식들이라면 입속에서부터 무리가 온다.
실제로 시간이 지날수록 자극적인 음식에 대한 욕구가 줄어들며 조금 더 부드럽고 무난한 요리들을 선호하게 된다. 이를테면 크림 파스타, 일반 햄버거, 백반, 만둣국, 샐러드 등의 음식 말이다. 소위 단짠의 고리가 자연스럽게 끊어진다. 다시 말해 강한 음식을 먹었으니 또 다른 강한 음식으로 그 얼얼한 혀를 달래고 싶은 공복감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립적인 음식들은 맛 그 자체로 2차 공복감을 야기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일일 일식을 하시는 모든 분들이 다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는 것은 아니므로 만약 공복감이 문제가 된다면 중립적인 음식을 선택해 나가면서 그 빈도를 줄여나갈 수 있는 것이다.
블랙커피와 껌과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이라니 참으로 빈약해 보이는 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일일 일식의 원리와 원칙이 함께 동반된다면 이런 약간의 도움만으로도 충분히 이 식단을 즐겁게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상 일일 일식을 하면서 공복감과 관련되어 그동안 생각했던 것들을 나열해 보았다. 일일 일식은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므로 얻어진 경험들은 앞으로도 이 매거진 안에서 게시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