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를 비껴갈 방법은 없었던 것이다
아직도 일일일식 하고 있어?
저를 오랜만에 보시는 분들 중에 이렇게 묻는 분들이 더러 계십니다.
네, 아직도 하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일이 있었고 그 상황에 따라 제 성격상 이것저것 실험도 많이 해 봤지만, 결국, 다시, 할 수 없이, 일일일식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렇게 십년째, 일일일식 중입니다.
제 글들을 찬찬히 다 읽어보신 분들은 맨 처음에도 십년이라고 했는데 아직도 십년일까 의구심을 가질 분들이 혹간, 있으실 가능성도 - 거의 없긴 하지만, 저 스스로 그 부분이 자꾸 옆구리를 찔러서 - 있을것 같아 제가 살짝 짚고 넘어가자면요,
막 어느 날부터 요이땅이 아니었던 것도 있고, 처음에는 칠팔년째였는데 글을 쓰자니 대애충 반올림해서 십년이라고 쓴 것도 있답니다.
그러니 저는 정말로 십년째인 셈이지요.
무슨 일이 있었는데?
최근에 한쪽 가슴에서 비정형유선증식증이라는 작은 석회덩어리를 발견했어요. 암이 될 수도 있다고 하고 암튼, 여러 과정을 거쳐서 제거하고 최종결과 암세포는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어요 다행히도.
그런데 한 석달에 거친 이 과정중에서 너무나 당연하게도 나의 식단은 이대로 충분한가 하는 의문이 들었지요. 어쩌면 빈도의 문제보다 내용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여태까지 건강한줄 알았던 저의 자긍심을 파사삭 깨는 사건이 되었답니다.
뭐랄까, 제가 하는 식의 일일일식에 대한 확신이 무너졌다고나 할까요.
가리지 않고 먹던 인스턴트 음식들, 산화된 기름들, 귀찮으면 건너뛰던 비타민과 무기질, 무시하던 야채의 파이버들, 은근히 고통을 즐기며 내버려두었던 공복감들.
만약에 가슴의 혹이, '암으로 발전 가능성이 높은' 혹이 아니라 정말 암덩어리였다면 일일일식 최대의 위기가 도래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암이잖아요.
암인데, 암에 걸렸는데, 몇십 년짜리 삶을 탈탈 털어서라도 문제 규명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말입니다. 적어도 저의 성격에는요.
그랬다면, 일일일식에 대혁신이 왔거나 젓가락을 꺾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불행중 다행으로 일일일식과 저는 무탈하게 살아 남았고 지금껏 하루 점심 한끼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하나도 안변했어?
사실 조금 변하기는 했습니다 .
왜냐하면, 저에게 갱년기가 찾아오면서 체중변화가 왔기 때문입니다.
여태까지는 하루 한끼를 다른 사람의 두끼...까지는 아니지만 하여튼, 양으로보나 질로보나 아무런 부담 없이 한껏 만용을 부리면서 즐겨왔다면 이제는 그렇게 먹으면 안되는 상황이 온 것입니다.
아, 그렇게 된 것입니다.
지금은 적절하게 양을 조절하는 수위를 터득하게 되어 무한정으로 - 정말입니다 - 체중이 늘어나는 극한체험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이렇게 안정(?)되기까지 일년이 넘는 시행착오의 암흑기가 있었습니다.
남들은 세끼를 먹는데, 저는 겨우 한끼를 먹으면서 여기서 체중까지 늘어난다면 제가 설 곳은 어디인지 너무 억울해서 죽을 것 같았습니다. 저주받은 몸땡이를 보재기로 홱 싸서 어느 바위에서 뛰어 내리고 싶은 충동도 불끈 올라왔었다고 과장해서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질풍노도의 시간을 지나 '적당히' 먹으니 체중 변화가 예전만큼 요지부동은 아니지만 제어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적절한 양의 기준은 어이없게도 '배부르지 않게' 였습니다.
체중과 다이어트에 관심 있으신 분들이라면 아마 많이 들어보신 표현일 것으로 사료됩니다.
특별한 방법 없이 날씬한 체중을 유지하는 분들 중에 다수가 저런 표현을 쓰는 것을 저도 많이 듣고 보아왔으니까요.
여태까지 그런 저들에 대한 저의 총평은 '체중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은 배부른 소리'이거나 '엄청나게 예민하고 까다로워서 투하된 음식물의 무게감을 남들보다 많이 불쾌해하는 소리'로 대략 갈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네, 사람은 참 오래 살아야하는 거였던 것입니다.
저에게도 '배부르지 않게'를 몸소 체험하는 날이 오게 된 것이니까요.
정확하게 표현하기 애매한 부분이 없지않아 있지만,
배가 아주 텅텅 빈 상태에서 음식을 먹다보면 포만감이 전혀 없는 맹창맹창한 위의 느낌이 한동안 이어집니다. 바로 여기서 멈추는 것입니다.
헉, 배가 부른데?
이렇게 느끼면 조금 늦습니다.
말로 표현하니, 듣기만해도 거북스럽고 짜증스러워지실 수 있지만
이 맹창맹창한 상태가 꽤 오래 갑니다.
그러니까, 배부르지 않을 때까지 먹는 음식의 양이 꽤 된다는 뜻입니다.
저의 경우에 버거킹 와퍼주니어와 감자튀김 조금이나, 큼지막한 콜드 샌드위치 하나 또는 물냉면 한그릇 정도 됩니다. 괜찮지 않습니까?
그런데,
만약에 칼국수 한대접을 먹으면 초과한 것입니다.
주로 국이나 밥 종류의 한식을 먹게 되면 쉽게 초과상태에 이르게 되서 자연스럽게 한식은 줄여가게 됩니다 - 지난 십년 동안 여러 이유로 한식은 잘 먹지 않게 되어서 별로 아쉬운 점은 없습니다 -
전에는 배가 찢어질 때까지 먹는 것이 일일일식의 상징이기라도 한 것처럼 달려들었지만 지금은 그 부분이 바뀐 것입니다.
허기를 달래고 적당히 배가 찰 만큼만 먹는 것으로 말이지요.
결과적으로는 먹는 양이 줄어든 것이니 슬플 수밖에 없지만, 갱년기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이 정도가 어디인가 감지덕지 하고 있는 중입니다.
호기롭던 예전의 기세는 어디로 가버리고
다소 의기소침하게 축소된, 조심스러운 일일일식을 하고 있지만
속이 편하고 화장실을 잘가고 에너지가 쓸만큼 유지되고 있으니 감사할 일이 아닌가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아직도, 여전히
일일일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