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쉬어빠진 시간이었다. 쉬어빠진 시간은 그냥 팍 쉬어-꼬부라져서 어디에도 쓸 수가 없다. 뭉텅뭉텅 고기를 넣은 김치찌개를 팔팔 끓였다. 오랜만에 고기반찬이구나! 오예! 반찬도 꺼내고 수저도 일자로 놨다. 주걱을 엉덩이 박자에 맞게 흔들며 밥솥 뚜껑을 여니 아주 쉬어버린 밥이 노랗게 보이는 시간, 그게 바로 지나가버린 내 시간이었다. 일 년을 그렇게 보냈다. 가족들도 친구들도 쉬어가고 있는 내 시간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넸다. 아주 예전에는 밥이 귀해서 쉰밥도 씻어서 먹었다지만 적어도 내 쉰밥의 시간은 씻어도, 씻어도 먹을 수 없는 것이었다.
엄마가 울었다. 항상 집에서 공부하던 내가 혼자 국까지 끓이고 밥을 퍼서 반 정도 가량을 먹었는데 그제야 밥이 다 쉬어버렸다는 것을 알았던, 그날 엄마가 한참을 울었다. 엄마가 우는 건 그냥 내가 쉰밥을 먹어서가 아니라 내가 쉰밥 같아서 우는 것 같았다. 멋쩍게 머리를 긁었다. 밥은 먹지 않으면 쉰다. 킁킁 쉬어버린 밥은 버린다. 아무 쓸모도 없고 먹을 수도 없는 밥. 그건 그냥 쉰밥이다.
갓 지은 밥은 아주 따끈따끈하고 올라오는 김의 냄새마저도 고소하다. 꼿꼿하게 일어선 밥알에는 광택이 탱탱하게 흐르고 맛은 달달하고도 촉촉하다. 사실 고백하자면 나는 갓 지은 밥을 아주 좋아해서 그 밥만으로도 한 공기를 뚝딱 다 먹을 수 있다. 아주 맛있게. 어릴 적부터 나는 엄마가 밥에 꿀을 뿌리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엊그제는 냉장실 정리를 했다. 또 밥이 쉬어버려서 엄마가 울까 봐 밥만 하면 냉장고에 넣었더니 칸칸이 밥이 잔뜩 있었다. 그 밥을 다 버렸다. 쉰밥도 아니고 끈적끈적한 밥도 아니고 딱딱한 냉장실 밥도 아니고. 쌀을 씻어 따끈따끈한 밥을 지어야겠다고, 나는 힘차게 쌀을 비벼 씻었다.
정찬란 남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