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짱이처럼 살고 싶어
요즘 나에게 퇴사를 부르는 기운이 있는 모양이다. 뭐 정작 나는 무직이지만, 요즘 주변에 퇴직하는 친구들이 늘었다. 건강상 문제, 대학원 진학, 업종 변경, 공무원 시험 등 이유도 참 제각각이다. 처음 퇴사를 결정한 친구는 사회복지사였다. 원장님의 피 말리는 조임에 부정맥이 온 지는 오래됐고 미뤄뒀던 학업을 잇고 싶다고 친구는 퇴사의 이유를 설명했다. 나는 처음에 퇴사가 무척 큰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치 친구의 인생이 무너지고 있는 것처럼 걱정했다. 게다가 그 친구는 2년 전 구직 당시 몇십 번의 서류 광탈로 구직 스트레스가 컸던 친구라서 더 걱정이 되었다.
어느덧 주변 친구들의 퇴사가 줄을 잇더니 5명을 넘어섰다. 가족을 포함하여 카카오톡 친구가 20명을 채 넘지 않는 내 주변인 수를 감안하면 꽤 많은 숫자다. 친구들은 평균적으로 2년에서 3년쯤 근무를 하고 사직서를 쓴다. 퇴사 이야기를 처음 꺼내고 평균적으로 1년 여정도를 고민하다 결국은 사직서를 썼다.(아, 물론 입버릇처럼 말하는 '퇴사하고 싶어'를 제외하고)
통학 시간이 왕복 4시간을 넘는 거리를 다니면서도 꾸준히 운동을 하던 친구는 입사 후 반복되는, 기약 없는 야근에 복싱을 1번, 발레를 1번, 필라테스가 1번. 모두 등록만 하고 5번을 채 가지 못한 채 한 달을 넘겼다. 매일 퇴근 후 발이 퉁퉁 부어서 아버지의 발마사지기에 누운 채로 친구는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루는 원장님이 친구의 얼굴에 보고서를 던졌다는 이야기, 하루는 좁은 사무실에 선풍기를 한 대 놓고 예닐곱 명이 버티고 있는 이야기, 하루는 오늘도 갑자기 생긴 야근 때문에 복싱을 못 가서 그냥 체육관에 전화해서 동생의 앞으로 이전해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는 이야기, 하루는 정년이 얼마 남지 않으신 아버지가 실적 압박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신다는 이야기, 하루는 엄마가 건강검진을 받으셨는데 자궁 쪽이 좋지 않으셔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 자꾸 소화가 안 돼서 병원에 가볼까 한다는 이야기. 친구와 통화하는 동안 내가 학교에 다니며 받는 스트레스는, 고작해야 발표 수업에서 만난 조원의 허접한 PPT 실력 따위라는 사실을 나는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생업에 종사하는 친구에게 내 이야기는 너무 사치처럼 느껴졌다.
퇴사를 고민하는 친구들의 걱정 중 가장 큰 걱정은 보통 임금 피크제에 맞닿으신 아버지였다. 갑작스러운 임금피크제의 도입으로 친구네 가족은 부모님의 노후 계획을 크게 바꿨다고 했다. '임금피크제를 적용하면 아빠가 몇 년 더 근무는 하겠지만 퇴직금이 훅 줄어들어서 큰 메리트가 없대. 동생은 사대를 다니고 있어서 제대를 해도 끝이 없을 임용의 늪에 빠져있을 것이 분명하잖아. 엄마는 수술 후 체력이 급격히 약해지셔서 언제까지 학원 운영을 하실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친구는 계속 고민했다. 친구의 가족들은 여자가 학력이 너무 높으면 시집을 못 간다는 이유로 반대를 했다. 늘 남자인 동생에게 치이고 공부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던 친구는 결국 강한 의지를 내비치며 가족들에게 입학에 대한 '협조'를 얻었다.
퇴사를 하고 1년이 지났다. 그동안 친구는 대학원에 들어가 시험을 2번 치렀고, 발레는 기초반에서 기본반으로의 월반을 노리고 있으며, 엄마의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무서운 선생님으로 엄마의 일을 돕고 있고, 찐한 연애를 했고, 여행도 여러 번 다녀왔다. 정말 교통비 20만 원만 지급한다는 조그만 기관에서 일을 배우고 있고 가끔 나를 만나러 버스를 타고 오기도 했다.
인생의 고민은 항상 첩첩산중이라 고민이 없는 것도 아닐 텐데 매일 밤마다 출근할 걱정에 잠이 안 온다며 울던 친구가 요즘 전화를 안 한다. '갑자기 집에 가다가 보고 싶어서', '커피 먹으러 왔는데 맛있는 거 추천 좀', '나 여기 홍대인데 예쁜 양말 좀 사다 놨어. 집에 와서 가져가' 일상적 단어가 가득 찬 전화만 간간이 왔다. 친구 어머니의 몸이 갑자기 좋아지신 것도, 아버지의 퇴직이 미뤄진 것도 아닌데 요즘은 전화를 안 한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친구한테는 출근병(이라고 쓰고 불면증이라고 읽는 병)이 있었던 것 같다.
오늘 또 다른 친구한테 퇴사를 고민하는 중이라는 연락이 왔다. 엊그제 만나서 같이 맥주를 마시다가 지진에 허둥지둥 헤어진 친구인데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 퇴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할아버지 상사가 자꾸 있지도 않았던 일을 지어내서 다른 상사를 붙잡고 계속 내 이야기를 한대.' 이 사무실에서 친구는 4번째 사람이라고 했다. 다른 곳에서 근무하던 친구가 발령을 받아 왔을 때는 이미 이 상사에게 스트레스를 받아서 20년을 근무한 직원 3명이 같은 이유로 줄줄이 사표를 쓰고 나간 상태였다고 했다. 안 그래도 직업 특성상 도(都)를 텀벙텀벙 건너뛰는 발령이 잦아서 결혼을 앞두고 이직을 고민하던 친구였다. 타지 생활도 외로운데 다른 현장으로 발령이 날 때까지 버티기는 힘들 것 같다고 했다. '결혼을 미뤄야지 뭐. 근데 나 잘하는 걸까' 친구의 카톡이 애처로이 왔다.
'나중에 행복한 건 없어.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그 지금이 모여서 바로 행복하지 않은 삶이 되는 거야. 27살의 행복을 미뤄서 72살이 되면 27살의 행복은 절대 느낄 수 없어.' 카톡에 답장을 했다.
- 정찬란 남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