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wn-noser(noun) : a person who acts in a grossly obsequious way
<출처 : Gibbleguts Comics>
필자가 미국에 있었을 때 얘기다. 필자가 미국에서 있었던 곳은 S&P 500 기업 중 17개 이상의 기업 본사(Headquaters)가 있는 기업도시였었는데, 한국인들도 다소 많이 근무하고 있어서 친분 관계를 계속 유지했더랬다. 그중 설립된 지 100년 이상된 회사에 다니고 계신 한국인 분과 꽤 친해지게 되어 집에 초대를 받았었는데, 식사를 함께 하면서 이런저런 회사 생활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이 분은 한국에서 학창생활 및 수년간 회사 생활을 경험하고, 한국 기업의 딱딱한 조직문화와 이런저런 정치질(필자한텐 광풍 속에서 사는 듯했다고 표현함)이나 아부질에 너무 학을 떼서, 미국으로 이직했단다. 왜 하필 미국으로 오셨나고 물어봤더니 미국 기업이 수평적이고, 본인만 잘하면 아무도 터치 안 하고, 저녁이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확신했고 등등.. 요약하면 눈치 안 보고 회사생활할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했다. 이분이 미국으로 이직한 시점이 2010년 정도였는데, 2010년 당시 한국 기업의 조직문화 특성은 한마디로 '혁신'이었다. 직급 혁신, 제도 혁신 등 한국형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되네, 수평적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하네, 하면서 구성원들을 많이 들들 볶던(?) 시기 이기도 하다. 기억해보면 그 무렵 즈음 필자 주변에서도 진절머리 난다며 해외기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던 사람들도 꽤 되었던 듯하다. 그중 어떤 분은 구글(Google) 조직 문화, 일하는 방법을 배우라고 그렇게 '구글 구글' 거려서 그냥 때려치우고 구글로 입사해 버렸다고.
아무튼 그런 시기에 미국으로 건너온 이 분은, 입사 첫 달부터 아주 황당한 별명을 얻었다고 했다. 그게 바로 '브라운 노우저(brown noser)' 였단다. 솔직히 처음 들어본 용어라, 왜 갈색 코예요? 동양인을 차별적으로 부르는 용어 중에 '브라운 멍키'는 들어봤어도 갈색 코? 쉽게 이해가 되질 않아서 되물었더니, 미국 기업 내에 아부쟁이를 부르는 용어란다. 필자가 이 전에 쓴 글인 '아부도 실력인가요?'에 나오는 전형적 아부쟁이를 뜻하는 단어인데, 우리로 치면 '상사 xx를 하도 핥아서 코가 갈색으로 변할 정도의 아부쟁이' 정도 랄까. 자기도 처음엔 이게 무슨 말인가 해서 그냥 웃고 넘겼다가, 나중에 그 뜻을 알고 그냥 넘길 일이 아닌 걸 알았다고 했다. 아니 그렇게 아부나 정치가 싫어서 미국으로 건너온 건데, 왜 자기 보고 아부쟁이라며, 그것도 그냥 아부쟁이도 아니고, 하도 아부를 해대서 코가 갈색으로 변할 지경인 아부쟁이라니. 나중에 친하게 된 현지인에게 슬쩍 물어봤더니 돌아온 대답은, 이 분이 상사가 뭐라고 업무 지시하면 퇴근 시간 지나서 일을 다 하고 가거나, 모자를 경우 토요일에 조금 나와서 일한 걸 가지고 그렇게 불렀단다. 너무 한국적으로 일하는 스타일이 몸에 배어서 그런 것인가 싶어, 설명을 하고 인종 차별적 용어 아니냐고 따지고 들었더니, 그게 아니라 현지인들도 그런 얘기를 듣는 사람이 꽤 있단다.
이래저래 마음에 다소 상처도 입고, 같이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싶지도 않아서, 그다음부터는 상사가 요청을 해도 정중하게 사과를 하고 난 다음, 당분간 토요일도 안 나가고 보란 듯이 칼퇴를 했단다. 시간이 조금 흘러서 그 친한 사람에게 요즘 자기 보고 어떻게 부르냐고 다시 되물었는데 그 현지인이 쭈뼛쭈뼛 대면서 하는 말이, '넌 이제 브라운 노우저에서 스파인리스(Spineless : lacking spirit, courage, or determination. google search에서 발췌)라고 불려'라고 했단다. 줏대 없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라는 미국 기업 내 회사 용어이다. 직역하면 척추 없이 이렇게 시키면 이렇게 하고, 저렇게 시키면 저렇게 하는 사람이라는 말인데, 그 말을 듣고 너무나도 화가 나서 도대체 자기가 뭘 그리 잘못했길래 연속 2 연타를 맞으며 회사 생활을 계속해야 하는지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단다. 아니, 일이 조금 밀린 것 같아 퇴근 후 남아서 일하고, 그것도 모잘라 토요일날 나와서 조금 일한 거밖에 없는데, 자기 보고 소위 'XX 핥는 인간'이라고 하질 않나, 오해 사기 싫어서 칼퇴하고, 주말엔 회사 근처에 얼씬도 안 하고 있었더니 '줏대 없는 갈대 같은 인간'이라고 얘길 하질 않나. 아니 뭐 어쩌라고?
미국 직장 생활 내 아부쟁이나 정치 쟁이들을 일컬어 Brown noser 또는 Spinesless라고 부르는데, 놀라운 사실은 이와 관련된 꽤 많은 서적을 아마존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100 ways to be a brown noser' 나 이와 비슷한 유형이 책들이 팔리고 있는데, 티 안 나게 아부하는 방법 등은 뭐 국내 서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그 당시 새롭게 안 사실이었지만, 미국 내 현지인이든 외국인이든 미국 기업에서 생존하는 또 다른 방법 중 하나로 정당화된 아부쟁이가 되는 법을 나름대로 서로 공유한단다. 새로 온 매니저가 그 이전 직장에서 뭘 좋아하는지, 가령 테니스를 좋아하는지, 어느 식당을 자주 가는지 등등을 서로 공유하고 시의적절하게 대응한다고. 뭐 로비(Lobbying) 활동이 활성화되어 있는 나라인지, 이런 상황들이 새삼스럽게 느껴지진 않았지만, 일반 직장 내에도 꽤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름 흥미로웠다. 결국 뭐 새로운 곳은 없는 것 같다. 전 세계 모든 직장이라고 일반화하긴 어렵겠지만, 위-아래가 있는 조직 구조를 가진 거의 모든 직장에서는 아부나 정치가 없을 수는 없지 않나 싶다.
아무튼, 브라운 노우저와 스파인리스였던 그분은 그 후 어떻게 됐을까. 그 이후 그 딱지를 떼게 되었는데, 회사 내에, 한국 회사로 따지면 오픈 컴 또는 타운홀처럼 전 사원이 참가하는 meeting이 있고, 그 미팅 후 회사 내 모임자리가 있었는데, 그때 자기소개를 거창하게 했단다. 그리고 난 다음 각 종 회사에서 주최하는 사교 모임 외에도, 개인적인 모임 자리가 있으면 꼭 참석했다고. 그러면서 한국 회사에서 일했던 방식을 설명해주었더니 그제야 이해를 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게 별명을 떼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녔다고. 첫 글자만 대도 다 알만한 유명한 기업에서 온 어느 한 사람이 부서 내에 들어왔는데, 그 타이틀을 가져가게 되면서 자기한테는 더 이상 그렇게 안 부르더라나 뭐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