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생팀장 Jul 28. 2022

정말 '아부'도 실력인가요?

(남.알.인.기) 남들이 알려주지 않는 재미있는 인사 이야기_평가편

상반기 평가 면담 후 결과를 통보받았는데, 평소 아부형 인간이라고 불리는
동료의 평가가 더 좋게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실력보다 아부가 우선인가요?


   몇 년 전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대기업과 중견기업 직장인 700명을 대상으로 한 인사평가제도에 대한 인식 수준 조사에 대한 질문에, 75.1%가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면 약 58.8%의 응답자들이 '사내정치'에 따른 평가를 들었고, 그다음으로 41.2%의 응답자들이 '개인 이미지'로 평가, 35.5%로 '연공서열'식의 평가라고 응답했는데, 결론적으로 보면, 아부 잘하는 사람들이 평가를 더 잘 받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이 박혀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재밌는 (누군가에게는 재미없고, 불편한 사례일 수도 있겠다) 사례를 한 번 들어보고자 한다. 모 대기업에는 임원(급) 이상의 조직 책임자를 대상으로 리더십 관련 교육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는데, 섹션별로 저명한 교수를 초빙하여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게 도와주곤 했다. 그날 그 섹션을 담당했던 대학 교수의 질문은 이랬다. 가령 당신의 부서에 '일은 정말 잘하는데, 조직 생활은 잘 못하는, 쉽게 말해 당신에게 아부도 잘 못하는 사람'과 ' 일은 정말 대충대충 하고 별 성과도 없는데, 조직 생활은 기가 막히게, 즉 어디서 '아부의 정석'이라도 마스터하고 온 사람' 중에 누구에게 더 평가를 더 잘 줄 것인가? 필자는 그 순간 그날 참석했던 수많은 조직장들의 얼굴 표정을 아직도 기억하는데, 고민하는 여력이 다분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거수투표를 하지 않았기에 실제 어떤 질문에 더 답을 많이 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으나, 아직도 기억하는 한 임원의 대답은 '케바케(케이스 바이 케이스)입니다'였다. 당시 필자는 속으로 상당히 실망했었다. 저게 곧바로 안 나올 대답인 것인가. 평가의 3요소라고 일컬어지는 타당성, 수용성, 신뢰성으로 비추어 볼 때, 성과를 내며 일 잘하는 사람보다, 아부 잘하는 사람의 평가가 높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어디에서 타당성을 찾고, 누가 수용하며, 어떻게 구성원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다는 것인가.


    한편, 기업별로 다르겠지만, 전체 조직의 평가 결과를 취합하여 시스템에 확정하기 전에, 인사부서장이 마지막으로 점검하는 세션이 있다. 상대평가 제도를 운영하는 회사의 경우 평가 T/O에 어긋나지는 않는지, 절대평가 제도를 운영하는 회사의 경우 평가결과의 쏠림현상이 있지는 않은지 샘플링하여 조사하기도 하는데, 어떤 한 조직책임자의 경우 똑같은 사람들이 3년 연속 똑같은 평가 결과를 받고 있었다. 일 잘하는 사람이 계속 일을 잘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수 도 있는데, 그 조직책임자는 알고 보니 나이와 연차를 높은 순으로 소위 '나래비'를 세워서 평가를 배분(?)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연공서열(seniority)식 평가이다. 이런 경우 평가 방식이 이상하다며 누군가가 건의는 할 수 있어도, 해당 부서장이 그렇게 평가하겠다는데 그 평가결과의 공정성에 대해 제동을 걸고 다시 roll back 할 수는 없다. 평가권이 해당 부서장에게 있기 때문이다.

   더욱 심한 경우도 보았다. 한 부서장에게 똑같은 사람을, 똑같은 성과를 가지고 평가를 해보도록 한 조사에서, 시간에 따라 평가 결과가 서로 다르게 나온 것이다. 이런 경우는 다소 드물긴 한데, 전혀 없는 경우도 아니다. 나중에 사유를 분석했더니, 돌아온 답이 가관이다. 그냥 느낌이 그랬단다. 즉, 어제는 잘한 것처럼 보였는데, 오늘 보니 잘 못한 것 같았다는 건데, 이 쯤되면 평가를 도대체 왜 하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왜 이런 일들이 계속 생기는 걸까? 왜 평가의 신뢰성에 대한 설문 조사에서 저렇게 부정적인 응답이 계속 나오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평가제도의 공정성이니 신뢰성이니 뭐니, 이론적인 얘기를 아무리 해봤자, 바로 위의 조직 책임자처럼 '난 다 모르겠고, 그냥 나이 많고 오래 다닌 사람을 잘 줄래', '하루 지나서 보니 더 잘한 것 같아서 결과를 달리 줬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타당성, 수용성, 신뢰성은 그냥 책 속의 이야기일 뿐인 것이다. 그럼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평가를 아예 안 하면 되지 않을까? 시중에 있는 무수한 평가제도 관련 서적 중에 '평가제도를 없애야 한다' 등 평가제도 무용론에 대한 도서도 적지 않다. 좋은 얘기도 상당히 많다. 다만, 기업이나 조직 입장에서 보면 평가 제도가 없을 경우, 그럼 어떤 식으로 연봉 인상을 시켜줘야 하며, PI(Personal Incentive)니 RI(Retention Incentive)니 PS(Profit Sharing)니 등등 각종 인센티브는 어떻게 줘야 할까. 더더군다나 승진은 또 어떻게 시켜야 하며, 하다못해 각종 단발성 인센티브(Spot Incentive)도 어떻게든 성과에 대한 평가를 해서 줘야 하는데, 평가제도 자체를 없앨 경우 우리나라처럼 성과급, 연공급이 대부분인 조직 단위에서 어떤 식으로 평가와 보상을 연계시킬 수 있을까. 기업 및 조직의 규모가 커질수록 이런 고민들은 더욱더 커진다. 현재 대한민국 기업/조직들의 보상 제도는 대부분 90년대 초반(한국의 고도 성장기)부터 성행했던 서구식 성과주의 형태가 자리 잡아 있는데, 이와 함께 유지되고 있는 것이 현재의 평가 제도이기 때문에, 기업 또는 조직 입장에서 보면 바꾸기가 쉽지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즉, 기업이나 조직의 인사부서에서도 이런 상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당장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경우, 근본을 바꾸지 않 이상, 주변부터 바꾸어 나가기엔 시간이 많이 소모될 수밖에. 필자도 이런 고민을 늘 해오던 터라, 마침 AI 쪽에 발을 잠깐 담근 적이 있어서, 저명한 연구자에게 이런 상황을 설명하고, AI가 평가하면 어떨까요라고 슬쩍 물어봤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NO였다. 이유는 사람이 못하는 것은 AI도 못한다며, AI를 못 믿는 게 아니라, 그 알고리즘을 짠 사람을 못 믿기 때문이란다. 얼핏 이해가 전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물론 시간이 흘러, AI 판단성에 대한 신뢰도가 올라가면 얘기가 달라질 수는 있겠으나, 당분간은 사람이 평가하는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것이 당시 필자의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사람의 주관성이 그대로 반영되는 평가 상황에서는 이렇게 평가자들이 욕을 먹어가며, 평가제도를 정교화시키겠다고 불철주야 애쓰는 인사 담당 부서들의 노고가 그렇게 '티'가 나지 않을 수밖에 없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사람인지라 본인에게 매일 아침 '좋아요'를 백개 누를 준비를 하고 있는 자기 부서원에게 더 정이 가고, 평가를 잘 주고 싶을 수밖에 없는 상황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너무 지나치게 티가 난다는 것이다. 자기 자리에서 본인의 역할을 다하고, 120% 성과를 내고 있는 사람들이 이런 정치쟁이, 아부쟁이들에게 밀리는 상황을 계속해서 지켜보아야 한다는 말인가. 물론 많은 리더들이 올바른 평가 잣대, 투명한 판단 기준을 근거로 평가에 임하고 있을 것이지만, 맨 처음 나타난 저 조사를 근거로 본다면 평가를 받고 있는 신분으로서의 심정은 많이 부족해 보일 것이다. 누구 말대로, '야, 아부가 쉬운 줄 알아? 아부도 실력이야'라고 말씀하고 다니시는 분들의 말을 빌어, 소위 '조직 생활'을 잘해 오고 있다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본인들도 처음부터 그렇게 '정치', '아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본인들도 '아 이 사람이 지금 나에게 아부하고 있구나'를 아부 선임자로서 더 잘 파악한다고 했다. 본인들도 회사 또는 조직에 들어와서 처음부터 아부만 하는 사람은 싫어한단다. 그럼 어쩌라는 것인가. 맨 처음 사례로 들었던, 리더십 교육 중에 어느 임원이 했던 말인 '케바케'입니다의 숨겨진 의미를 소위 티안나게 아부잘하는 분께 여줘봤더니 그 말을 이렇게 해석했다. '팀장이든 파트장이든 어떤 형태의 리더를 맡게 되면 그때부터가 아부의 시작점'이라고. 사내 정치를 못하는 사람이 리더로 있을 경우, 그 조직원이 상당히 피곤해진단다. 그도 그럴 것이 리더는 그 상위자와 본인 조직원 사이의 중재자 또는 연결자로의 존재감이 중요한데, 정치를 잘 못하거나, 그 윗사람에게 아부를 잘 못하여 소위 '찍히게'되면 본인만 힘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바라보고 일하고 있는 소속 부서원들도 함께 힘들어진다는 거다. 결국 요약하면 어떤 형태이든 '타이틀'을 달기 전까지는 성과를 우선으로 두고 조직생활하되, 그 이후는 본인뿐만 아니라, 소속 구성원들을 위해 정치력과 아부력을 탑재해야 한다고. 그러면 그 전까지는 아부안해도 되나요? 했더니 제대로된 조직이면 그런 아부쟁이는 높은 자리로 올라가지 못할 확률이 높단다. 아부쟁이로 커 온 사람들일수록 자기의 한계를 알기 때문에 자기랑 비슷한 형태의 인간을 높게 올리지 않는다라나.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룰(Rule)이 있나보다.


   이래나 저래나 참 피곤한 세상이다. 끝으로 필자의 사무실은 꽤 고층에 있었는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로 올라가는 그 순간 어느 임원과 부서장의 대화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배 나온 임원: 아 어제 공이 하나도 안 맞았어. 골프를 그만둘 때가 온건가 싶어. 이게 흔히 말하는 입스(스윙                      전 샷 실패나 부상에 대한 두려움, 각종 불안 증세)인가?

아부쟁이 부장: 괜찮습니다 상무님. 어제 타이거 우즈도 못 쳤답니다.

옆에 있던 필자: ......


      

작가의 이전글 '추천인'란을 꼭 써야 하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