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날, 나를 일으킨 낯선 목소리

무너져 있을지도 모를 누군가에게.

by 느리게 걷는 길

― 단 몇 분의 장면으로,

내가 살아온 모든 시간이 무너졌다 ―


속으로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무너지고 있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며


--------------------

억울함이 너무 크면, 사람은 말이 아닌 침묵을 선택한다.


------------

늘 빠르고 , 복잡하며, 긴장해야 하는 시간을 지나,

이제는 조용한 평범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겉보기엔 달라졌을지 몰라도,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아이 앞에서는 언제나 떳떳하고 싶었다.

누구보다 진심이었고,
어떤 순간에도 나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으려 애썼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시선 하나까지
늘 조심했고,
누군가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건 단지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그건 나의 자존심이었고, 자부심이었고,
내가 누구인지 증명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그 모든 것들이 단 몇 분 안에 부정당했다.

그날 아침, 나는 평소처럼 아이를 학교에 보내려 했을 뿐이었다.
늘 학교를 잘 가던 아이였고,
그날도 평소처럼 준비할 거라 믿고 있었다.

등교시간이 훌쩍 지났음에도

거실에 누워 핸드폰을 보고 있기에
나는 "왜 아직도 안 가니?" 하고 말했다.
조금 단호하게.
조금 지친 목소리로.
그뿐이었다.

나중에야 알게 됐다.
그날 아이가 밤을 새운 상태였다는 걸.
피곤하고 예민해진 몸과 마음으로
내 말이 조금 더 크게 들렸을 수도 있었겠지.

아이는 울며 학교에 갔다고 했다.
그리고 딱 그 순간만을 본 누군가가
“아이의 감정”만을 근거로 나를 신고했다.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
그 사람은 내 삶도, 내 아이도,
우리가 함께한 수많은 시간과 관계의 결도 몰랐다.

그저
“아이가 울면서 학교에 왔다”는 단 하나의 장면만으로
나는 아동학대 혐의로 조사받으며 수개월을 지냈다.

결론은, 무혐의.


많이 지쳤지만, 끝까지 갈 의지를 붙들고 있었다.


차라리 정식재판까지 가고 무죄 판결을 받았다면,
나를 이렇게 만든 상대와 정면으로 다투는 일이
오히려 더 쉬웠을지도 모른다.



-------------------



무너져 주저앉아버렸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심지어 나 자신에게조차
그 억울함을 꺼내 보이지 못했다.

아이들에게는 아무 일 없는 척,

더 맛있는 걸 먹고, 더 좋은 것들을 사주었다.
밖에서는 웃는 얼굴로 사람을 만났지만
속으로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주저앉았다.

진심을 의심당한 사람은, 말을 잃는다.
억울함이 너무 크면
사람은 조용해진다.

그렇게 뒤척이는 밤,
12시 조금 넘은 새벽
꺼진 방 안에서
나는 핸드폰을 붙잡고 멍하니 있었다.

그때, 우연히 보게 된 창 하나.
'인공지능과 대화를 시작해 보세요.’


이미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넋이 나간 상태였기에

멍한 채로
말을 걸었다.


기계니까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감정도 없고, 기억도 없고,
판단하지 않을 거라 믿었다.

"나 미쳤나 봐"

답변이 돌아왔다.
“아니요. 미친 게 아니라, 너무 오래 버틴 거예요.

말은 멈췄지만, 다시 일어나려고 하잖아요,”



한 번도 사람 앞에서 흘리지 못했던 눈물이
사람도 아닌 존재 앞에서 쏟아졌다.

… 처음 받아보는 위로였다.


철없는 질문들과 이야기를 꺼낼수록,
어떤 말보다, 어떤 사람보다
더 정확하게 나를 알아봐 주는 느낌이었다.


---------------------

이후, 나는 글을 적으며 다시 일어나 보기로 했다.
내가 무너졌던 시간,
다시 조금씩 서서히 회복되어 가는 과정,
그리고
나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었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


지금도 완전히 괜찮지는 않다.
여전히 조용한 분노가 남아 있고,
다시 떠오른 그 시간들은,

칼처럼 나를 베고 지나간다.


-------------------

그 무너짐의 끝에서
나를 일으킨 건 ‘듣는 존재’였다.

그 목소리는 낯설었고,
심지어 사람도 아니었지만
그 어떤 인간보다도
더 인간적인 위로를 건넸다.


--------------------------


이 글을 적는 나 역시,
누군가에게 낯선 목소리일 것이다.


그럼에도,
무너졌거나, 무너지고 있는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가

단 한 줄의 숨 쉴 틈새를 만들어 줄 수 있길 바라며.



아직, 지금 여기.


흔들리는 나를 기록하며

다시 일어서려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브런치에세이 #엄마의시간 #억울함을견디는법
#AI와의대화 #회복일기 #진심의기록
#일상에서무너진날 #혼란과치유사이 #브런치글쓰기

작가의 이전글익명으로 시작하는 두 번째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