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은 나를 감추는 이름이 아니라, 나로 말하기 위한 용기였다.
한때는 이름을 걸고 살았다.
누구의 선생님, 누구의 엄마, 누구의 딸.
그리고 누군가의 믿음을 대신 입은 사람이었다.
이름이 직업이었고,
존재가 명함이었다.
말 한마디가 총과 방패 같았으니,
말을 아끼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말을 삼키게 되었다.
무슨 말을 해도
누군가의 기대에 어긋날까 봐,
다른 뜻으로 왜곡될까 봐,
조심스럽게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익명을 택했다.
숨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이제야 숨을 쉬고 싶어서.
익명은 나를 감추는 이름이 아니라,
비로소 나로서 말할 수 있는 이름이다.
실명을 쓰면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다.
너무나도 사적인 기억,
부끄러웠던 선택,
돌이켜보면 고마운 실패들.
언젠가 누군가가 물을지도 모른다.
“왜 익명으로 쓰세요?”
나는 그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
다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익명은 나를 감추는 이름이 아니라,
내 마음을 드러내는 방법이었다고.
이름은 지웠지만,
마음은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
익명 뒤에 있지만,
나의 진심은 누구보다 선명하다.
그렇게 나는
익명이라는 가면을 쓰고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잘 지냈어?
많이 힘들지?
이젠 좀 나를 챙겨도 될까?
아이들이 커가는 만큼
나는 점점 작아졌고,
가끔은 투명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그 투명함이 어느 날은 편했고,
또 어떤 날은,
내가 나에게조차 낯선 사람이 되었다.
이 글은 어쩌면
누군가의 기억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말을 삼킨 날들,
참고 또 참은 순간들.
그러다 어느 날
익명으로라도 소리 내고 싶어진 마음.
익명으로 시작했지만,
오래 잊고 지냈던 나와
다시 연결되고 있는 기분이다.
아직은 내 이름으로 말할 용기는 없지만,
언젠가는 그날이 올지도 모른다.
이렇게라도, 지금은
그리고 오늘도
나를 다시 살아가게 만든다.
“여러분은 익명이라는 공간을 어떻게 느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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