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닐라 라테 | 차이콥스키, '사계' 중 1월

피아노 : 임윤찬

Tchaikovsky, The Seasons, Op. 37a

I. January

Piano : 임윤찬


https://youtu.be/CFAwQyNdoVQ?si=R44QIGurIPNZkTsW






성민은 이키케 해변을 천천히 걸었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그의 얼굴을 스치며 지나간다. 파도가 해변에 부딪치는 소리는 규칙적이면서도 단조로웠다. 그는 이현의 메일을 받고 난 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현이 이키케 프로젝트에 합류한다는 소식. 그는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려 했다. 이미 정리된 감정이라고,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왔다. 하지만 바다 앞에 서자 그동안 잊고 있었던 이현과의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때가 언제였을까. 2001년 봄, 건축학과 2학년이 시작되었을 때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이현이 뛰어들어왔다. "앗, 감사합니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웃는 모습이었다. 성민은 7층 버튼이 이미 눌려져 있는 것을 본 그녀가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며 같은 목적지라는 것을 알았다.


성민은 그녀에게서 풍겨오는 은은한 향기를 기억했다. 각 층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닫혔지만 아무도 타지 않았다. 그는 그때 처음으로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것을 느꼈다.


7층 카페에서 이현은 따뜻하고 달콤한 바닐라 라테를 주문했다. 성민은 평소라면 당연히 샷을 추가한 아메리카노를 시켰을 것이다. 쓰고 진한 커피만이 그의 취향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날은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입을 열었다.


"저도 앞에 여자분과 같은 걸로 주세요."


성민은 커피를 받고 잠시 머뭇거렸다. 당장 이현에게 다가가 같은 학과 신입생인지 아니면 다른 과 학생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이현을 뒤로하고 건물 7층 옥상정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옥상정원에는 유독 성민이 좋아하는 벤치 자리가 있었다. 그곳에 앉으면 학교의 전경이 한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산과 산 중턱 터널로 빨려 들어가는 차량 행렬을 보고 있으면, 자연과 인간의 삶이 하나의 유기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성민이 학교의 전경을 멍하게 바라보고, 큰 한숨을 내쉬며 바닐라 라테를 한 모금 들이마신 순간이었다.




"저... 선배,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건축학과 1학년 조이현이라고 합니다."




성민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시간은 잠시 멈춘 듯했고, 라테 잔을 쥔 손끝에서 미세한 떨림이 전해졌다.







'왜 내 귀에는 클래식이 안 들리는 걸까'

이지협 지음 / 연암사



[EBS 라디오 '정경의 클래식 클래식'] 클래식 살롱 - 1 I 2025년 9월 18일 방송

https://youtu.be/y0N2dRmSOg4?si=RlcPuPhkWtypuCmU


[EBS 라디오 '정경의 클래식 클래식'] 클래식 살롱 - 2 I 2025년 9월 25일 방송

https://youtu.be/CE7ydU3_YNo?si=_CVThWzHzK14hdUG


[EBS 라디오 '정경의 클래식 클래식'] 클래식 살롱 - 3 I 2025년 10월 02일 방송

https://youtu.be/_AkS2A_SQcQ?si=lSNgz9bjQldODZW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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