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관자 효과와 학습된 무기력 심리학 개념
학교 안에는 말 없는 폭력이 많다. 책상 밑으로 찬 발, 귓속으로 던지는 말, 몇 달씩 이어지는 따돌림. 처음엔 아무도 모른 척한 것이 아니다. 모른 척해야만 하는 공기 속에 놓인다. 눈치만 조금 늦어도 그 자리가 다음 표적이 되기 때문이다.
교실 안에서 처음 그런 장면을 본 아이의 마음은 공포로 얼어붙는다. 책가방을 움켜쥔 채, ‘이건 잘못된 일이다’라는 생각이 스쳐가지만 입술이 굳어 붙어버린다. 옆자리에 앉은 친구도, 복도 끝의 아이도 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선을 내리깔고, 시간만 흘러가길 바란다. 이런 훈련은 빠르게 몸에 새겨진다. 그리고 곧, 폭력을 목격해도 놀라지 않게 된다.
이 침묵의 공기는 단순히 비겁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아이들은 너무 빨리 배우게 된다. ‘책임지면 손해 본다’는 것을.
누군가를 말리다 함께 표적이 되는 일, 어른에게 알렸다가 “괜히 문제 키운다”는 말을 듣는 일. 이 경험이 반복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이라는 걸 알게 된다. 책임은 옳은 행동이 아니라 불이익을 자초하는 행동으로 학습된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방관자 효과라고 한다.
1964년 미국에서 발생한 키티 제노비스 살인 사건이 대표적이다. 수십 명의 목격자가 있었지만, 서로가 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사람이 많을수록 책임이 분산되고, 누군가 하겠지’라는 기대는 행동을 멈추게 한다.
교실에서도 똑같다. 많은 눈이 있지만, 움직이는 사람은 없다. 이런 환경이 길어지면 또 다른 심리 기제가 작동한다. 바로 학습된 무기력이다.
심리 실험에 따르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도망칠 수 없었던 개는 나중에는 문이 열려 있어도 움직이지 않았다. 사람도 같다. 한두 번 용기를 냈다가 상황이 변하지 않으면, 사람은 결국 시도 자체를 멈춘다. “어차피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이 믿음이 뇌에 깊게 새겨지면 외면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자동 반응이 된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들어도 몸은 움직이지 않고, 머릿속에서는 ‘하지 마’라는 브레이크만 걸린다. 위험을 피하려는 본능이 그렇게 학습된다. 이 생존 방식은 교실 안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대학, 직장, 온라인 커뮤니티... 장소만 바뀌었을 뿐 외면의 기술은 성인이 된 뒤에도 계속 쓰인다. 직장 내 괴롭힘, 직무상 부당한 지시, 불법 영상 유포 같은 범죄조차
“괜히 휘말리지 말자.”
“나만 피하면 된다.”
이 한 마디에 묻힌다.
눈을 감는 것이 현명한 처세술처럼 여겨지는 사회, 그러나 그 사이 피해자는 더 외롭고 더 쉽게 무너진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피하라고 가르친다.
싸움을 보면 말리지 말고 도망치라고,
괜히 휘말려 억울한 가해자가 되지 말라고,
참견이나 오지랖은 위험하다고.
문제를 피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배운 아이들은
결국 문제를 외면하는 법만 익힌다.
학교는 책임 없는 사람을 길러내는 사회의 연습장이 된다. 그렇다면 이 악순환을 끊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심리학은 분명히 말한다. 사람이 행동을 바꾸려면
'책임을 졌을 때 잃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이 있어야 한다.'
'책임을 지는 행동에 벌 대신 지지를 주는 사회'
"왜 나섰냐"가 아니라
"용기 내줘서 고맙다"는 말이 먼저 나오는 사회.
교육은 ‘외면하면 편하다’가 아니라 ‘개입하면 함께 해결할 수 있다’라는 경험을 심어줘야 한다.
작은 용기 하나가 칭찬과 보호로 돌아오는 환경, 심리적으로 안전한 교실을 만드는 것이 폭력을 막는 첫 번째 예방이다. 학교 폭력은 뉴스에 나오는 큰 사건만 있는 게 아니다. 대부분은 작은 말, 작은 표정, 작은 행동으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이 작은 폭력들이 쌓이면서 한 사람을 무너뜨릴 때까지는 그 누구도 막지 않는다.
용기 내어 나서는 사람이 벌을 받고
침묵이 보상받는 구조에서
폭력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아이들이 배우고 있는 것은 수학 공식일까,
아니면 외면하는 법일까. 그리고 그 외면이 자라는 동안,
폭력은 조용히 다음 아이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