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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 May 12. 2017

[리스본] 20유로 아저씨

[170426-170506] 스페인,포르투갈 여자혼자 여행


<에피소드로 푸는 여행일기>





세비야에서 야간버스를 타고 리스본에 내리니 새벽 6시.
숙소로 가는 버스를 타러 가는데 어떤 외국인 아저씨가 붙잡으면서 좀 도와달라고 했다.


"제가 포르투에서 오면서 버스에 내 타블렛이랑 지갑 등 모든걸 다 놓고 내렸어요.
매표소 직원한테 그 상황을 말하고 표를 다시 끊어달라고 했는데 안된다고 하네요. 
여기서 내리는 사람들에게 모두 도와달라고 했어요. 다들 그냥 지나쳤어요..
제가 돈은 다시 돌려드릴게요.지금 저한텐1유로 밖에 없어요." 

같은 여행자로써 그 아저씨의 절실함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버스비 20유로를 빌려줬다.
아니, 그냥 줬다고 하는게 맞을 거다.
나는 받을 마음이 없었다. 
그 아저씨는 꼭 돌려주겠다며 번호를 물어봤는데 
포루투갈에서 로밍이 되질 않아 이메일 주소를 남겨줬다.
11시 30분 정도에 메일을 준다고 약속 후 헤어졌다.


이후 연락두절.

참 씁쓸하게도.
내 감정에 솔직해서 돈을 줘 놓고선 나도 돈이 아쉬운지라 돌려 받길 원했다. 

왜 저 아저씨에게 갑자기
줄 마음이 생겼을까.?

동행이 같이 있었기에 허세용인가
기분이 좋아서 돈을 쓴 것인가
...


여행 막바지에 정말 돈이 아쉬워서 아저씨가 남겨준 연락처에 문자를 넣어봤지만 
없는 번호인지 뭔지 전송실패했다. 
사기처럼 보이진 않았는데 ..

그래서 계속 생각했다.
왜 바로 넙죽 주게 된 것일까.

아저씨가 너무 절실해서? 
아니었다.


돌아오는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답을 찾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일일히 다 말했다.>라는 것에서 마음이 움직였던 것이다.







이것에 관련된 두가지 경험이 있다.

전에 화장품 가게 일명 '매장언니'로 일한 적 있다. 이유는 거절을 많이 받아보기 위해서 였다.
커미션을 받는 영업직이다 보니 제품이 마음에 안들어도 손님의 마음을 움직여 팔아야 했다. 거절 받는 일은 안힘들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한번 판매에 성공하면 모든 거절들이 경험치로 축적되는 느낌이 든다. 나랑 같이 일한, 미친듯이 잘 파는 어린 친구는 안 사가려했던 사람도 구매하게 만드는 재주를 가졌었다. 사기성이 조금 있는 멘트였지만 말이다.
노하우는 자신만의 멘트를 만들어서 들어오는 모든 사람에게 소개해보는 것이었다. 
살 것 같은게 손톱만큼이라도 보이면 계속 달라붙어서 설득, 그리고 구매로 이어지는 것.


다른 한가지는, 인큐 윤소정 대표 세바시 강연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편에서 한 말이다.

'부잣집과 가난한 집 아이들을 비교했을 때 누가 성공할 확률이 높을까? 당연히 부잣집 아이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이 당연한 걸 왜 심리학자들은 실험를 했을까. 그들은 돈이 있어서가 아니라 '실용지능'이란게 있기 때문에 성공한다는 걸 알아냈다. 뭔가를 요구하고 어떻게 협상을 해야 얻을 수 있는지를 아는 지능. 그러면 우리도 실용지능을 높이면 될 것 아닌가?'

난 무의식 중에 그 아저씨가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투자한 것 같다.

나는 그저 20유로지만 아저씨에게는 여행이 끝나고도 두고두고 고마움으로 남겠지. 
술 마시며 이 이야기는 안주거리가 될 것이다.

영감을 주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게 내 꿈인 만큼
작은 영향이라도 누군가에게 끼쳤다는 생각에.. 
이 사건은 나의 포루투갈 여행의 가장 큰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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