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이라는 숫자 뒤에 숨겨진 진짜 사정
28살 무렵, 매달 통장에 들어온 3,623,097원은 한 달 동안 내가 직장에서 모든 걸 쏟은 노력의 대가였다. 이 돈은 내가 인하우스 디자이너로서, 직장인으로서 평범하게 일을 하고 남들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매일 지하철 요금으로 1,400원을 내고, 배달 음식으로 몇 만 원을 결제하는 일상. 매달 나가는 고정 비용을 제때 내면서, 서울에서 혼자 자취하며 이런 삶을 살아가는 것이 당시 나에게는 중요한 목표였다. 또, 이 수입 안에서 생활하는 동안, 나는 내가 남들만큼은 살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사회가 제시하는 보통의 기준은 종종 내 일상과 성취를 침입한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30살 기본 자산은 몇 억이나 연봉 6,000-7,000만 원과 같은 특정 수치들이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처럼 언급된다. 이런 기준들은 개인이 이뤄낸 자산의 증가를 특정 숫자로 등급화하고, 수치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를 노력 부족으로 규정하는 흐름을 만든다. 특정 나이에 달성해야 할 표준적인 자산 규모를 정해두고, 그 기준선에 미치지 못하는 모든 과정을 실패로 간주하는 시각이 언제부터인가 일상화됐다.
일정 나이에 따른 평범한 삶에 대한 기준은 실제 통계 수치와 비교했을 때 더 선명해진다. 2026년 발표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30대 직장인의 월평균 소득은 세전 443만 원이며, 소득 순으로 나열했을 때 중위소득은 380만 원 수준이다. 통계적 수치로만 따지면 그 당시 내 월급은 아주 가까스로 평균에 근접해 있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에서 돌아다니는 높은 기준들과 비교하면, 자산을 불러 나갔던 과거의 노력은 종종 평범함에도 미치지 못하는 성적표로 취급받는 느낌이다. 통계적 평균조차 부족하다고 느껴지게 만드는 기준이 마치 사회에서 부족한 사람이라는 증거를 남기는 듯하다.
숫자를 중심으로 사회의 삶을 분류하는 방식은, 개인이 처한 구체적인 환경과 분투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보다 적은 소득으로 매일을 고군분투하는 이들에게 사회가 말하는 평균은 실질적인 생활과 거리가 먼 지표일 뿐이다. 개인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 투입하는 시간과 노동은 통계 수치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으며, 삶의 질을 오히려 떨어트린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평균 수준의 소득을 올리며 자산을 불려 나가는 경우라도 개인마다 감당해야 할 부채 규모나 부양가족 유무 등 사정이 다르기에, 같은 360만 원이 누군가에게는 큰 성취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부족한 비용일 수 있다. 사회적 지표는 이런 개별 사정을 생략한 채 '평범’이라는 단어를 가끔 누군가의 정의를 모두에게 강조하는 것처럼 들린다.
수치 중심의 시각은 삶의 마지막을 대할 때 더욱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흔히 “평범하게 살다 갔다”는 표현은 문제없이 생애를 보냈다는 의미로 자주 사용되지만, 이는 한 사람이 일상을 지키기 위해 했던 노력과 시간을 지표 하나로 요약해버리곤 한다. 소득의 규모나 자산의 증가 폭과 관계없이, 각자의 위치에서 삶을 버텨낸 무게는 숫자로 서열을 매길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런데도 사회는 종종 죽음마저 표준화된 절차와 일반적인 슬픔의 양으로 규정하려 하며, 그 기준에서 벗어난 사례를 특이하거나 부족한 것으로 분류해 다시 한번 평가의 대상으로 삼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평범'이라는 단어는 실제 우리의 상황을 표현하는 하나의 기준표로 보기보다, 복잡한 타인의 생애를 지표로 빠르게 요약하고, 판단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기준에 가깝다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한다. 우리는 통계 속의 평균값이나 남들이 정한 기준선에 맞추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무게를 견디며 삶을 살아나가는 것뿐이다. 삶과 죽음을 대하는 시선이 평균이라는 숫자 하나에만 머물러 있는 한, 우리는 결코 타인의 생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평범함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아니라, 타인의 삶이 가진 개별적인 맥락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시선이다. 누군가의 월급 액수나 마지막 순간을 보고 ‘평범하다’고 함부로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 숫자 뒤에 가려진, 각자의 사정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서로의 삶을 숫자라는 틀에 가두지 않고 저마다의 이야기가 담긴 서사로 대할 때, 틀에 갇히지 않는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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