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해서
우리는 며칠짜리 여행을 갈 때 대부분 숙소를 예약하고 맛집을 검색한다. 혹시 모를 사고에도 대비해 여행자 보험을 들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내 삶이라는 긴 여행이 끝나는 순간에 대해서는 대부분 무계획적이다. 그저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대부분 방치하게 된다.
흔히 드라마에서 살날이 멀지 않은 환자를 두고 가족들이 다투는 장면을 본다. "그래도 끝까지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쪽과, "더 이상 받는 건 환자에게 오히려 고통이다"라는 쪽. 힘겹게 산소호흡기를 달고 누워있는 환자와 그를 두고 타협점을 찾지 못한 사람들의 모습은 결코 남의 일 같지 않다.
결국 인생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사고와 질병은 예고 없이 닥친다. 그렇기에 지금, 내 몸에 대한 결정권을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를 미리 마련해 두어야 한다. 바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다.
이제 갓 서른이 된 나에게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이 제도가 정확히 무엇인지 팩트 위주로 정리해 보려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있다. 이 서류를 작성하면 아파도 치료를 안 받고 죽는 것이 아닌지, 안락사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틀린 정보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나중에 내가 의학적으로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이 임박한 상태(임종 과정)라고 의사 2인(담당의사 1인, 해당분야 전문의 1인)에게 판단받았을 때, 무의미한 연명 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미리 밝혀두는 문서다.
여기서 거부할 수 있는 의료 행위는 법적으로 명확히 규정되어 있다. 초기에는 심폐소생술 등 4가지만 해당되었으나, 법 개정을 통해 현재는 7가지 항목에 대한 결정이 가능하다.
- 심폐소생술: 가슴 압박을 통해 심장을 억지로 뛰게 하는 행위
- 인공호흡기: 스스로 숨 쉴 수 없을 때 기계를 통해 호흡을 유지하는 행위
- 혈액투석: 신장 기능이 정지했을 때 기계로 피를 걸러내는 행위
- 항암제 투여: 생명 연장 효과 없이 고통만 가중하는 투약
- 체외생명유지술(ECMO): 심폐 기능을 대신하는 기계 장치 사용
- 수혈: 임종기 환자에게 무의미한 혈액 공급
- 승압제 투여: 혈압을 강제로 높이는 약물 투여
단, 이 서류를 썼다고 해서 모든 돌봄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통증을 줄이는 진통제 투여나 영양분, 물, 단순 산소 공급 등 기본적인 의료 행위는 절대 중단되지 않는다. 즉, 기계적인 연명을 거부하는 것이지 생명 존중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이 서류를 미리 써두지 않으면 방법이 아예 없는 걸까? 법적으로 대체 방안이 존재하긴 한다. 내가 의식이 없을 때, 가족 2인 이상이 "평소 고인이 연명 치료를 원하지 않았다"라고 진술하거나, 가족 전원이 만장일치로 합의하면 중단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그 합의 과정에 있다.
서류 한 장이면 끝날 일이, 내가 의식을 잃는 순간 남겨진 가족들의 만장일치가 필요한 논쟁으로 변질된다. 누군가는 죄책감에 반대하고, 누군가는 현실적인 문제로 찬성하며 다투는 사이, 의료진은 법적 근거가 없으니 중립적인 태도로 기계적 치료를 지속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 서류를 쓴다는 건, 효력 그 자체를 넘어 가족들에게 산소호흡기를 뗄 것인가? 같은 잔인한 결정의 책임을 떠넘기지 않겠다는 증거인 셈이다. 가족이 평생 안고 갈지도 모를 죄책감을 내가 미리 덜어주는 것, 그것이 이 제도가 가진 진짜 목적이다.
해당 문서는 내 생명을 다루는 일인 만큼 법적 절차가 필요하다.
준비물: 반드시 신분증(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여권 등)을 지참해야 한다.
장소: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을 직접 방문해야 한다. (대리 작성 불가)
[Q: 정확하게 어디로 가야 하나?]
모든 보건소나 병원이 다 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방문 전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홈페이지나 대표번호(1422-25)를 통해 [내 주변 지정 등록기관]을 확인해야 한다. 보통은 아래 기관 중 지정된 곳에서 가능하다.
[등록 가능 기관]
- 지역 보건소
-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사
- 의료기관(병원)
-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법인 등
기관에 도착하면 전문 상담사와 1:1 상담을 통해 설명을 듣고, 본인이 직접 서명하면 그 즉시 시스템에 등록된다. 등록 후에는 언제든지 내용을 열람하거나, 생각이 바뀌면 철회 및 수정도 가능하다.
이상,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해 정보를 정리했다. 글을 정리하면서 다른 것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가 미리 두려워하거나 절차 자체에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해당 문서는 마지막 순간에 위급 상황 시 의료진과 가족이 따라야 할 매뉴얼 정도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클라이언트에게 가장 받기 꺼려지는 피드백이 "그냥 알아서 잘해주세요"인 것처럼, 내 삶의 마지막 순간을 타인에게 맡기기보다 간단한 레퍼런스(예시)와 기획안을 공유하듯이 해당 정보를 아는 것만으로도 나와 내 사람들, 서로에게 좋은 방향이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한다.
불확실한 미래에 막연한 공포를 갖는 대신에 확실한 서류 한 장으로 불편한 마음 없이 정리하는 것. 내 몸의 마지막 권리를 스스로 결정하면서, 모두가 오늘을 더 가볍고 편안하게 살아가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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