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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아쑤아 Nov 11. 2022

뇌가 똑똑해지는 시간

심심할 시간을 허락하자!

"엄마~ 나 심심해~ 탭 봐도 돼?"

"응? 응.. 그럼 30분만 봐.." 

막내가 1학년 2학기가 되자 같이 놀던 친구들이 학원을 다니거나 방과 후 수업을 받게 되었다. 일주일에 2번 방과 후 놀이체육에만 다니는 막내는 형아가 하교할 때까지, 친구들이 학원에서 돌아올 시간까지 2시간 정도가 비었다. 그 시간에 나랑 같이 공을 차기도 하고, 놀기도 하였지만 예전만큼 열정적으로(?) 놀아주기가 힘들었다. 첫째, 둘째 때 너무 많이 한 역할놀이는 지겹고, 밖에 나가 뛰기는 귀찮았다. ^^;;

엄마랑 노는 게 지겨워지면 막내는 늘 "심심해"라고 말했고 그러면 나는 왠지 모를 죄책감이 생겼다. 이상하게 아이들을 심심하지 않게 해줘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다. 이 틈을 타서 막내가 영상을 보겠다고 하면 나는 찝찝한 마음을 뒤로한 채 허락해 주었다. 한편으로는 나도 일하랴, 공부하랴, 살림하랴 늘 바빴기에 막내가 탭을 보고 있으면 할 일을 할 수 있어서 편하기도 했다. 

그날도 같은 일상이었다. 막내는 탭을 찾았고 나도 일을 하느라 그러라고 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 우리 아이들이 심심할 시간이 없구나?!"

우리 집은 원래 아이들끼리 잘 놀아서 심심하진 않다. 그런데 언제인가부터 조금이라도 심심해지면 탭을 보거나, 게임을 하게 되니 '심심한데 뭐 하고 놀까?'이런 궁리할 시간이 없었다. 

"왜 심심하면 안 되는가?!"

 뇌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멍 때리는 시간'은 '창의적인 생각이 떠오르는 시간'이라고 한다. 뇌 발달에 관한 책을 봐도 아이들이 빈둥거리는 시간이 있어야 그동안 배운 것들이 조합되고 발전되어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한다고 한다.

이것을 인지하게 된 다음 날, 막내가 하교 후에 "엄마 심심해. 나 탭 봐도 돼?"라고 묻기에 "아니!"라고 대답했다. 막내는 평소와는 다른 엄마의 대답에 깜짝 놀라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왜? 안돼??"라고 되물었다. 나는 '엄마가 공부를 해서 알게 되었는데, 심심한 시간은 뇌가 똑똑해지는 시간이래.'라고 말해주었다. 막내는 '왜 심심한 게 뇌가 똑똑해지는 것이냐, 누가 그러냐?'라고 소리쳤다. 나는 유튜브나 오디오북으로 강의를 많이 듣는다. 그래서 아이들은 엄마가 핸드폰으로 공부를 한다고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뇌과학자의 영상을 하나 찾아 보여주며 엄마가 하는 말이 거짓말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그랬더니 시무룩하게 수긍했다. 아이들도 전문가의 말은 잘 믿는 것 같다. 

"우리 가비, 똑똑해지는 시간을 잘 즐겨봐." 그러고는 내버려 두었다. 처음에는 소파에서 누워있더니, 피규어 두 개를 들고 스토리를 만들어가며 놀기 시작했다. 그것도 지겨워지자 내가 앉아있는 식탁으로 와서 피규어를 그리기 시작했다. 실물을 보고 자기 나름대로 해석해서 그리는데 꼼꼼하고 비율이 딱 맞게 그려서 깜짝 놀랐다. 둘째는 종종 그림을 그리지만 막내가 그렇게 자세하게 그림을 그리는 것은 처음 보았다. 내가 진심으로 감탄하며 칭찬하니 막내는 기분이 으쓱해진 것 같았다. 

다른 두 아이들에게도 '심심한 시간은 뇌가 똑똑해지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지금은 '책 읽은 시간만큼만 디지털 하기'가 규칙이기에 심심하다고 탭을 찾지 않는다. 우리 집 아이들은 자유시간이 많은데, 그 시간을 어떻게 재미있게 보낼까 많이 궁리한다. 늘 재미있는 방법을 찾는 것은 아니다. 그저 늘어져있는 것처럼 보이는 날도 많고, 침실에 들어가서 이불로 난장판을 만들어 놓을 때도 많다. 늘어져서 빈둥거리는 꼴을 보는 것, 난장판 된 집을 견디고 정리하게 하는 것. 그것이 '뇌가 똑똑해지는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을 위해 엄마가 감내해야 하는 임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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