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선생님이 내 교육관과 맞지 않을 때
새 학교로 전학을 하고 아이들도 어느 정도 적응을 해 나간 것같이 보여 한시름 놨을 때 학부모 공개수업 안내장이 왔다. 저학년인 막내 수업은 수요일 5교시. 고학년인 첫째, 둘째는 똑같이 목요일 6교시였다. 남편이 잠깐 외출 와서 첫째 딸의 수업을 가기로 하고 나는 둘째 아들 수업을 보기로 했다.
막내아들의 선생님은 사랑이 많은 분임이 느껴졌고, 그래서인지 교실 분위기도 밝았다. 집에서는 문제집 푸는 30분을 가만 앉아있지 못하고 10분마다 한 번씩 돌아다니는데 40분 수업 내내 얌전히 앉아 있는 모습만으로도 대견했다. 실제로 초등 저학년의 집중 시간은 10분을 넘지 않는다고 하니 40분씩 몇 교시를 하는 시간표대로 앉아서 있는 것 자체가 대단하지 않은가!
공개수업 중에 모두가 한 번씩은 발표를 할 수 있도록 하셨는데 중간에 손 들고 하고 싶은 아이는 먼저 발표할 수도 있었다. 역시나 우리 막내는 절대 손을 들지 않았다. ㅋㅋㅋ 그래도 자기 차례가 되었을 때 큰 소리로 또박또박 발표를 잘하기에 칭찬을 많이 해주었다. 1학년때에 비하면 선생님 말씀에 훨씬 잘 집중하고 따라가는 모습이었다. 집에서는 막내고, 12월생이라 늘 어리게만 생각했는데 학교에서 아이를 보니 많이 자랐구나 싶어 뭉클했다. 막내는 집에 와서 내가 발표 제일 잘했지?!라고 자신 있게 말했는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
다음날은 첫째와 둘째의 공개수업. 남편은 6학년 교실로, 나는 4학년 교실로 갔다. 6학년인 딸은 자기가 원하는 주제를 조사하여 ppt로 만들어 발표하는 수업을 한다고 했다. 개인으로 혹은 그룹으로 해도 된다는데 딸은 친한 친구와 둘이 한다고 했고, 미리 ppt를 봤는데 꽤 잘 만들어서 깜짝 놀랐다. 집에서 컴퓨터를 써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했는지 신기했다. 친구랑 둘이 만져보고 선생님이 알려주셨다는데 정말 요즘 아이들은 디지털 뇌를 타고 나나보다.
딸은 어릴 때부터 발표를 잘하는 아이였다. 얌전한 얼굴로 말 한마디 안 할 것처럼 앉아서 '발표할 사람?'그러면 번쩍 손을 들고 똑 부러지게 말한다고 매년 담임 선생님들이 말씀하신다. 남편은 처음으로 아이들 공개수업을 보러 왔는데 역시 딸은 잘했던 모양인지 칭찬을 늘어놓았다.
둘째의 수업이 가장 궁금했다. 담임 선생님은 꽤 엄하고 딱딱한 분이라고 들었고, 어떤 수업을 할지 미리 공지도 없었다. (다른 두 아이들은 선생님께서 미리 교안을 공지하셨다) 역시 둘째 교실 분위기는 굉장히 딱딱했다. 원래 공개수업 하는 날엔 아이들도 긴장하기 마련이라 평소보다 조용한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4학년인데 지나치게 정돈된 모습이었다. 보아하니 책상에서 연필과 지우개를 놓는 위치, 앉는 자세 등이 모두 정해져 있었고,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선생님께서 지적을 하셨다. 부모들이 있어도 이 정도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이 시작되었는데 역시 발표를 하는 아이들이 정해져 있었고, 우리 둘째는 절대 손을 들지 않았다.ㅋㅋ 그래도 자기 차례가 되니 크게 또박또박 발표를 했다. 수업 시간에 바르게 잘 앉아 있고, 해야 할 활동을 충실하게 하고, 발표도 해야 할 때는 잘하니 그것으로 충분히 대견했고, 끝나고는 많이 칭찬해 주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이 있었다. 작년엔 역할극을 많이 시킨 선생님이셨는데, 아들은 개그맨이라고 불릴 정도로 재밌게 역할극을 한다고 들었다. 이 교실에서는 잔뜩 긴장해서 앉아있는 모습을 보니 아이의 역량이 다 발현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불안이 높은 둘째는 아무래도 분위기를 타는 편이다..
하지만 곧 마음을 바꿨다. 어차피 1년은 이 교실에서 지내야 하고, 분위기에 맞게 행동할 만큼 사회성이 좋은 것이다고 생각했다. 괜히 까불어서 지적당할 필요가 없다. 아이에게 담임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해서 나쁜 감정을 키워 줄 필요도 없다. 싫어하는 사람을 1년간 매일 봐야 한다면 아이가 얼마나 힘들겠는가?
집에 와서 아들에게 칭찬을 잔뜩 해주고, 담임선생님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해줬다. "너네 선생님하고 1년 살면 다음에 웬만큼 깐깐한 선생님을 만나도 끄떡없을 것 같아! 엄마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았어." 그랬더니 울 아들 왈, "오늘 선생님 엄청 친절했어. 매일 오늘 같이만 해주면 좋겠어.." ^^;;; 그러고는 저도 선생님이 조금씩 나아진다고 했다. 아무리 엄한 선생님이라도 자기 하기 나름이니, 우리 미카는 지금처럼만 하면 별로 지적당할 일이 없을 거라고. 발표하는 거에 대해 너무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고, 해야 할 때 하면 되는 거라고. 선생님 칭찬에 연연하지 말라고, 내가 생각할 때 잘했으면 잘한 것이지 누가 칭찬해 주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해 주었다. (써놓고 보니 내 마음이 불편했나 보다. 잔소리가 길었군..;;)
하지만, 선생님이라도 부정적인 말씀을 많이 하신다면 그런 말은 귀를 닫고 있어도 된다고 해주었다. 다른 반과 비교하는 말이나, 반 전체를 싸잡아서 이것밖에 못 배웠냐는 등의 말은 듣지 않아도 되는, 잘못된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말은 무시하라고 해주었다. 교육적으로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선생님 말씀이라고 무조건 들어야 한다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그렇게 세 아이의 공개수업이 끝났다. 원래도 잘하려니 생각했지만 보고 오니 더 잘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내 아이를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면 그리 뛰어난 아이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그게 무슨 의미인가? 내가 내 아이를 긍정적으로 봐주고, 잘할 것이라 믿어주면 아이는 자존감 높게 자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다면 마음껏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는 것이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역할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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