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세종학당 재단에서 한글날을 기념하여 개최한 ‘세종학당 우수학습자 초청 한국문화 연수회’에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올라왔다. 한국어교원 3급 자격시험을 공부하면서 외국인 학습자와 교류해 볼 기회를 꿈꾸던 나는 공고를 보자마자 지원했다. 무려 43개국 172명의 한국어 학습자들을 만날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나는 눈빛이 매서운 면접관 3명 앞에서 잔뜩 긴장한 채로 면접을 봤다. 말도 더듬고 대답도 시원찮게 해서 불만족스럽게 면접을 끝냈지만, 다행히도 합격했다! 그렇게 세종학당과 나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행사는 한글날을 전후한 7일 동안 진행되었다. 자원봉사 첫날, 나는 자원봉사자들과 세종학당 우수학습자들이 행사 기간 동안 머물 호텔로 일찍 가서 짐을 풀고 학습자들을 맞을 준비를 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세종학당 학습자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도와주고, 그들이 스케줄대로 잘 따라올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행사 보조 업무를 했다.
호텔에서 세종학당 우수학습자들을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의 눈에는 기대감과 행복감이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나는 겉으로는 반가워하며 속으로는 걱정을 했다. 이런 큰 행사가 처음이었기에 혹시나 내가 실수를 해서 재단과 학습자들에게 누를 끼치지는 않을까, 나를 마치 오랜만에 만난 그리웠던 친구처럼 반겨주는 외국인 학습자들에게 그들이 기대하는 만큼 한국 문화를 즐기고 갈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을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개회식이 시작되었다.
우리 자원봉사자들은 한 테이블 당 한 명씩 앉아 5~6명의 학습자들을 담당했다. 중국, 몽골, 일본, 이란, 독일, 베트남, 브라질, 멕시코, 영국, 터키 등 다양한 국가에서 온 학습자들은 모두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처음으로 직접 겪는 한국에 모두 들떠 있었다. ‘학습자들이 어색해 할 수도 있으니까 내가 적극적으로 다가가야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학습자들이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왔다. 개회식 공연으로는 비보이 댄스, 한국 전통악기 연주 등이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만찬을 즐길 때 학습자들은 나에게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것저것을 질문했다. 아까 공연 때 연주한 악기가 무엇인지, 한국 아이돌 가수를 아는지, 몇 살인지 등등... 마치 연예인이 된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학습자들의 한국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학습자들은 행사 기간 동안 이화여대 언어교육원에서 분반별로 K-POP 노래, K-POP 댄스, 태권도, 부채춤 등 문화 교육을 받기도 하고 한글날 특집 <도전, 한류 골든벨>도 촬영해야 했다. 또 세종문화회관에서 한글날 특집 행사 참관, K-POP공연 관람, 창덕궁 관람, 김치 만들기, 국립중앙박물관 견학 등도 해야 했다. 이 모든 일정이 단 일주일 동안 진행되었다.
학습자들은 즐겁게 문화 체험을 했다
2013년 도전 한류 골든벨 특집
“선생님 선생님, 엑소(EXO) 알아요? 블락비 알아요?”, “저는 K-POP을 너무 좋아해요. 가수들을 직접 만나고 싶어요!”, “선생님, 기념품 어디에서 살 수 있어요?”, “한복 너무 예뻐요! 입고 싶어요”, “이거는 한국어로 뭐예요?”, “선생님, 같이 사진 찍어요!”, “선생님 SNS 있어요? 우리 친구 해요!”, “선생님 너무 친절해서 좋아요. 계속 연락했으면 좋겠어요”...
학습자들은 자원봉사자들을 ‘선생님’이라고 불렀지만, 우리는 마치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인 것처럼 친하게 일주일을 동거 동락했다. 학습자들보다 일찍 일어나 늦게 자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자원봉사는 힘들었지만, 학습자들과 한국문화 체험을 같이 하며 웃고 떠들고 노는 것은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빡빡한 행사 일정에도 학습자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한국 문화를 배우는 것을 무척 즐겼다. 자원봉사자들은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면 피곤해서 침대부터 찾았는데 학습자들은 모여서 폐회식 때 공연할 것을 연습했다. 그들의 열정을 보며 내가 훗날 한국어교원이 되어 해외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모습을 상상했다. 나도 저들의 한국어 선생님처럼 한국어를 잘 가르칠 수 있을까? 내가 가르칠 학생도 저렇게 한국문화를 사랑하게 될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 친구들과 세종학당에서 다시 만나고 싶다'
부채춤을 배우는 학습자들
봉사활동을 하는 내내 새로 사귄 이 외국인 친구들을 단 일주일밖에 못 본다는 사실이 너무 아쉬웠다. ‘세종학당 교원이 되어서 해외로 나가면 다시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한국어 교원으로서의 꿈은 더 커졌다.
나는 특히 많이 친해진 대만 세종학당 학습자 샤오위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꼭 세종학당 선생님이 될 거예요. 세종학당 선생님이 돼서 여기서 만난 친구들을 다시 만나고 싶어요.”
샤오위는 내 손을 잡고 활짝 웃으며 꼭 대만으로 오라고 말했다.
이란 테헤란 세종학당 학습자 알마는 자신은 K-POP을 너무 좋아해서 나중에 K-POP을 이용한 한국어 교재를 만들고 싶다며, 만약 책이 나오면 나에게 1등으로 줄 거라고 말했다. 아쉽게도 알마는 K-POP 책을 만들지는 못한 것 같지만, 알마와 나의 인연은 SNS를 통해 계속 이어졌다. 러시아 세종학당에서 온 나타샤는 한국어 고급 학습자였는데, 한국어를 너무 좋아해서 한국어로 시를 쓴다고도 했다. 행사 둘째 날 B가 나에게 한국어로 쓴 시를 보여주며 틀린 곳이 있는지 봐 달라고 했다. 정말 외국인이 썼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훌륭한 시였다. 나는 시에 대한 내 의견을 말하며 칭찬을 해 주었다. 나타샤는 사실 지금 쓰고 있는 시가 더 있다며 나중에 다 쓰면 나에게 제일 처음으로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 이 외에도 많은 학습자들과 행사 기간 동안 소중한 경험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이런 학습자들과 선생님과 학생으로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아니면 해외 세종학당에서 가르치면서 이런 학습자와 같은 소중한 인연을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나의 세종학당 파견 교원이 되겠다는 꿈은 점점 싹을 틔어 갔다.
러시아 학생이 쓴 시
바쁘게 움직인 만큼 시간도 바쁘게 움직였는지, 1주일이 쏜살같이 지나 어느덧 폐회식이 되었다. 학습자들은 그동안 잠자는 것도 아껴가며 연습한 한국 노래, 댄스, 태권도, 부채춤 공연을 성공적으로 선보였다. 단 6일 만에 저 정도의 공연을 하다니, 내가 옆에서 연습하는 걸 지켜봤는데도 놀라웠다. 그리고 몇몇의 초청 공연 이후 이사장님과 교수님들의 말씀을 끝으로 우리는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그리고 나타샤는 약속대로 나에게 본인이 새로 쓴 시를 보여줬다. 지난번에 보여 준 시보다 훨씬 정교하고 감성적인 시였다. 나는 나타샤의 시에도 감동이었지만, 제일 처음으로 보여주겠다는 약속을 지킨 나타샤 덕분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이 외에도 나에게 선물이라며 행운의 2달러를 선물한 제임스, 손에서 카메라를 놓지 못하고 계속 촬영을 하며 자원봉사자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던 요셉, 태권도반에 배정됐는데 태권도에 자신이 없다며 반을 바꿔 달라고 했지만 결국에는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태권도 공연을 펼친 라나, 나에게 자신이 직접 만든 김치를 선물해 준 프란체, 티셔츠에 한국어로 한마디 써 달라고 한 린 짱, 한국어 공부에 아주 열정적이어서 행사 내내 계속 문법 질문을 했던 찬청 등 많은 학생들이 나에게 소중한 추억을 남겨 주었다.
(좌)학생의 부탁으로 티셔츠에 써 주었다 / (우) 중국 학생이 폐회식 때 준 선물
자원봉사 자체는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그때 고생은 더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기 위한 거름이었던 것 같다. 비록 43개국이라는 각자 다른 나라, 다른 언어와 다른 문화라는 색을 지녔지만, 일주일 동안 우린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사랑하는 친구라는 한 가지 색으로 존재했다. 다시 오지 않을 꿈같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