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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Jul 16. 2022

안녕! 후에, 베트남!

2018년 후에 세종학당 3학기

"선생님, 그동안 가르쳐 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우리 나중에 다시 꼭 만나요!"

"저도 여러분들한테 정말 고마웠어요. 한국으로 유학 오면 연락하세요."


귀국할 때가 되자 나는 매일 학생들과 송별회를 하느라고 바빴다. 수업을 열심히 듣고 나를 좋아해 주고, 행복한 추억을 선물해 준 것만으로도 학생들에게 고마운데, 학생들은 나한테 계속 선물을 줬다. 먹을 거라서 비행기를 통과하지 못할까 걱정된다면서도 후에 특산물을 한 아름 안겨 주기도 하고, 'HUE'라고 크게 쓰여 있는 티셔츠를 선물하기도 하고 자기가 직접 만든 팔찌를 선물해 주기도 했다. 그런 선물들도 모두 고마웠지만, 가장 좋은 선물은 편지였다. 짧은 내용이든 긴 내용이든, 서툴든 완벽하든 진심을 담아 쓴 편지를 읽을 때마다 '아 이게 내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외국인 학생이 한국어로 쓴 편지를 읽을 때 느끼는 감동은 한국인 교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이 아닐까 싶다.


학생들의 편지

 

그중 가장 특별했던 편지는 3학기에 5권을 배운 학생들이 준 것이었다. 이 학생들은  내가 파견 왔을 때부터 계속 가르쳤던 학생들이라 나와 정이 깊었다. 학생들은 다 같이 손수 사진첩을 만들었는데, 사진첩 한 장당 한 명씩 나와 같이 찍었던 사진을 붙이고, 그 밑에 편지를 썼다. 나는 웬만해서는 감동받아 울지 않는 사람인데 너무나도 예쁘게, 정성 들여 만든 사진첩 편지를 받자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그런 나를 보고 학생들이 말했다.


"선생님, 빨리 우세요! 더 우세요!"

"아니에요. 안 울 거예요!"


우는 모습을 보여주기 창피해서 참고 있었는데 울라고 부추기는 걸 보니 웃겨서 눈물이 쏙 들어갔다. 


사진첩 편지. 한 장씩 넘기는 걸 동영상으로도 만들었다.


3학기가 끝나고 수료식을 했지만 나한테는 중급 회화 수업이 한 번 더 남아 있었다. 하지만 수업은 하지 않았다. 중급 회화는 특별 수업이라 수료증도 없고 수료식에도 참여 못했기 때문에 마지막을 우리끼리의 수료식으로 마무리했다. 수료식 전에 "중급회화 여러분 모두 수고했어요. 행복하세요♥" 문구를 쓴 케이크를 주문했다. 그리고 우유와 다른 간식을 사러 다녔다. 수료식이나 행사 때마다 운영요원 선생님과 이렇게 간식을 사러 다녔는데, 이것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씁쓸했다. 이 과자를 살까 저 과자를 살까, 내가 이걸 더 좋아하니 이걸로 사자, 땡땡이 치는 것 같아서 기분 좋다며 즐겁게 쇼핑했었는데 ...


중급회화 수료식은 귀국 바로 전날이었다. 먼저 학생들이 그동안 공부한 소감을 발표한 후, 준비한 케이크를 자르고 간식을 먹으며 수료식을 즐겼다. 학생들이 깜짝 선물로 논(Nón. 베트남 전통 모자)을 주었다.


중급 회화 수료식


이렇게 학생들과, 후에 세종학당 현지인 선생님들과 진한 작별 인사를 하고 집주인 언니와 청소 아주머니 등과도 인사를 했다. 집주인도 청소 아주머니도 세입자나 고용주가 떠나서 아쉬워하는 게 아닌 친구와 헤어지게 되어 아쉬워하는 게 느껴져서 정말 고마웠다. 집주인 언니는 비싼 저녁을 사 주고 선물도 주면서 후에에 다시 오면 꼭 연락하라고 했다.


김 선생님은 개인 사정으로 먼저 귀국하셨기 때문에 나 혼자 귀국해야 했다. 올 때는 같이 왔는데 갈 때는 혼자 가는 게 쓸쓸... 할 뻔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짱 선생님이 김 선생님이 귀국할 때도 내가 귀국할 때도, 집부터 공항까지 배웅을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귀국날, 문화 인턴 선생님과 이 선생님, 짱 선생님과 후에 세종학당 정회원 학생들이(나는 마치 후에 세종학당 직원처럼 학당 행사 때마다 적극적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매 학기 등록하는 중급 학생들을 이렇게 불렀다.) 아파트 앞에서 다낭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을 기다려 주었다. 차가 좀 늦게 왔지만 전혀 심심하지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같이 노래를 부르고, 학생들과 문화 인턴 선생님이 그동안 연습한 아이콘의 '사랑을 했다' 춤을 잠깐 추기도 하고, 나도 어설프게 따라 하면서 즐겁게 기다렸다. 아니, 오히려 차가 오자 아쉽기까지 했다. 이젠 정말 후에를 떠나야 했으니까.


다낭 공항에 도착하자 다낭에서 일하고 있는 후에 세종학당 정회원 학생 황 씨가 왔다. 시간이 애매해서 저녁을 못 먹고 있었는데 케이크를 좋아하는 날 위해 다낭에서 유명한 컵케이크들을 사 왔다. 우리는 케이크를 같이 먹으며 셀카를 찍으며 즐겁게 놀았다.

               

"선생님, 이번에는 이 스티커 사진으로 찍어요!"     

"우리 다 우는 표정으로 찍어요."

"이제 웃긴 표정으로!"

               

이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니 어느새 출국 게이트로 들어갈 시간이 되었다. 출국 게이트 줄을 서기 전에 서로 안고 작별 인사를 하니 짱 선생님과 황 씨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선생님, 대학원 졸업할 때 갈게요. 그리고 졸업 선물 사 줄게요."     

"네, 우리 꼭 한국에서 만나요. 졸업 선물 주러 꼭 와야 해요!"               


정말로 한국에서 만날 수 있을까? 황 씨도 짱 선생님도 이게 마지막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꼭 다시 만나고 싶다. 그런데 다시 만난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나도 눈물이 나오려고 했지만 참았다. 둘은 내가 게이트에 들어갈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출국장에 들어오고 정말 혼자가 되었다. 방금 전까지 신나게 웃고 떠들었는데 혼자가 되니 외로워졌다. 귀국행 비행기에 오르고 계속 창 밖을 봤다. 베트남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고 싶었다. 가기 싫다, 아쉽다, 조금이라도 더 있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1년 8개월 전 이곳으로 베트남에 입국했을 때, 사우나 같은 습한 더위에 당황해서 '과연 여기서 내가 내년까지 살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이제 떠나기를 아쉬워하다니, 문득 사람은 어떻게 변할지 몰라 재미있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귀국행 비행기에서 찍은 다낭 공항

         

비행기가 이륙하고 베트남의 모습이 점점 더 멀어졌다. 그제야 소리 없는 눈물이 흘렀다. 후에에 있으면서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다. 내가 준 것에 비해 과분한 사랑이었다. 그리고 소중한 추억을 많이 쌓았다. 내가 또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럴 수 있다고 해도 내가 후에에서 보낸 시간들은 두 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들이었다. 후에 세종학당에서의 추억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코이카 단원 시절 몽골에서도 학생들과 동기들과의 좋은 추억이 많았다. 하지만 몽골을 떠날 때는 조금이라도 빨리 한국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몽골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냥 언젠가는 다시 올 수 있다는 생각에 떠나는 게 아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에 몽골을 많이 그리워했다. 그리워한 것은 장소가 아닌 시간이었다. 소중한 사람들과 같이 울고 웃었던 시간 말이다. 아, 그곳은 다시 갈 수 있어도 그 시절로는 다시 못 돌아간다는 걸 왜 그때는 깨닫지 못했을까. 함께 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모르고 빨리 한국으로 귀국할 생각만 했던 그때를 후회했다. 그래서 베트남으로 다시 올 수는 있어도 돌아오지 않을 추억을 계속 그리워할 것을 알기에, 마음속 아쉬움과 고마움과 그리움이 눈물이 되어 뺨을 적셨다.


베트남이 시야에서 없어지자 언젠가는 다시 가야지, 대학원을 졸업하면 세종학당 교원이 되어 다시 베트남으로 가야지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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