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국어 교원 Jul 25. 2022

세종학당 파견교원, 다시 도전

파견교원 면접 시범 강의2

귀국한 후 바로 대학교 어학당에서 시간 강사로 일하게 되었다. 어학당에서 강의하면서 세종학당이 많이 그리웠다. 세종학당 학생들은 정말 한국어를 공부하고 싶어서 혹은 토픽 합격이나 한국 회사 취업 등 목표가 있어서 오는 학생들이지만, 국내 대학교 어학당은 그렇지 않았다. 물론 어학당에도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 오로지 공부만 목적으로 온 학생은 많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불법 체류를 목적으로 온 학생이나 비자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출석 일수만 채우고 다른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 애초에 공부에는 관심이 없으니 강사에게도 예의가 없는 학생도 많았다.(참고 : 나를 힘들게 한 학생들 2 (brunch.co.kr))


그래도 어학당 생활도 좋은 편이었다. 몇몇 학생들이 문제이긴 했지만 열심히 하는 학생과 착한 학생도 많았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강의가 없는 방학 때는 대학원 수업을 들어서 학업과 일을 같이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희로애락을 공유할 수 있는 좋은 동료 강사들도 많이 만났다. 그렇게 2019년은 한국어 강의를 하고 대학교 수업을 들으며 보냈다. 여름에 그리웠던 몽골 울란바토르에 가서 학생들도 만났다.


'내년에 논문 다 쓰면 다시 세종학당 파견 교원에 지원해야지. 파견이 된다면 베트남이었으면 좋겠다. 베트남에 가면 몽골에서처럼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도 다시 만나야지.'


그런데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퍼지면서 나를 포함한 한국어 강사들이 대거 실직하고 유학생들도 빠져나가고 해외 파견도 일시 중단이 되어 버렸다. 이런 일들과 직업에 대한 회의감,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나 또한 무기력해지고 자존감도 낮아졌다. 그러다가 다문화 가정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힘을 내게 되었고, 내 직업에 대한 확신도 생겼다. (이때 다문화 아이들을 가르친 이야기는 브런치 북 '다문화 학생들과 추억'에, 다문화 가정 유아를 가르치면서 아이와 같이 성장하고 직업에 대한 확신을 다시 가지게 된 이야기는 에세이 책 <우리는 함께 자란다>에 있습니다.)


2020년에는 이렇게 시간 강사로 학교에 출강 가서 다문화 아이들을 가르치고 논문도 완성했다. 그리고 2021년 상반기 세종학당 파견 교원 모집 공고가 나오자 지원했다. 사실 지원할 때 고민이 많아서 서류를 일찍 다 작성하고도 제출 버튼을 누르는 것을 망설였다. 계속 다문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좋았기 때문이었다. 내년에도 한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칠까 세종학당에 지원을 할까 고민을 계속하다가, 시간 강사로 일하는 게 여러 가지로 힘든 점이 있었고 조금이라도 더 젊을 때 해외 근무를 더 많이 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베트남에 가고 싶은 마음도 계속 들어 거의 지원 마감 막바지에 제출 버튼을 눌렀다.


서류 전형 때 가고 싶은 나라를 1,2,3 지망에 썼던 2017년과 달리, 이번에는 가고 싶은 권역을 고르는 것이었다. 1권역은 동남아시아, 2권역은 동북아시아, 3권역은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나는 당연히 1권역 동남아시아를 선택했다. 서류를 통과하고 면접 준비를 했다. 2017년 파견 때와 똑같이 <세종한국어> 교재에서 주어진 단원 두 개 중 한 개를 골라 교안을 작성한 후 제출했다. 단원은 세종한국어 1권 10과 '주말 활동'과 2권의 2과 '취미생활'이 제시됐는데, 나는 '취미생활'을 선택했다. 수업 시간은 1시간으로 잡고 내용은 대화1의 취미 생활 어휘와 문법 '못 + 동사'로 정했다. (지금은 교안을 면접 당일에 면접장에서 작성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시범 강의 단원도 당일 알려준다고 한다.)


면접날, 준비한 교안을 들고 서초에 있는 세종학당 재단으로 갔다. 면접을 대기하는 동안 준비한 교안을 훑어보았다. 내 차례가 되자 안으로 들어갔다. 면접관 세 분이 앉아 계셨다. 그중 한 분은 한국어 교육 교수님이었다. 교안에서 앞에 어휘 설명을 빼고 문법 제시와 설명 부분만 보여 달라는 교수님의 말씀으로 면접을 시작했다.


시범 강의 면접 교안 일부


시범 강의가 무사히 끝났다. 이어서 교수님이 시범 강의 내용에 대한 질문을 하셨고, 다음에 나머지 두 분이 세종학당 파견과 근무에 대한 질문을 하셨다.


"가고 싶은 나라하고 학당이 있으세요?"

"네. 저는 베트남에 가고 싶습니다."

"가고 싶은 학당을 말해 주세요. 그리고 그곳에 가고 싶은 이유도요."


조금 당황했다. 나는 그냥 베트남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후에로 가고 싶었지만 그때는 후에 세종학당에 수요가 나오지 않았고 나왔다고 해도 한 번 파견 간 학당에 다시 파견 가지는 못 한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질문을 받았을 때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정했다.


"베트남이면 좋지만 그중에서도 호찌민이나 하노이에 가고 싶습니다. 제가 전에는 후에에 파견됐었는데, 후에는 시골에 가까운 도시였습니다. 후에도 아주 좋았지만 다시 베트남에 간다면 도시 체험도 하고 싶습니다."


갑자기 만들어 낸 대답이지만, 그렇게 말하고 나니 하노이나 호찌민으로 가고 싶다는 마음이 확 들었다. 후에에서는 베트남어를 가르치는 기관도 없고 과외 선생님도 별로 없는데, 그나마도 과외 선생님과 시간을 맞출 수가 없어 현지에서 베트남어 공부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독학을 해야 했는데 하노이와 호찌민은 대도시이니 베트남어도 현지에서 직접 공부할 수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몇 개의 질문이 더 이어진 후 면접이 끝났다. 2017년 파견 때는 합격 발표를 조마조마 기다렸는데, 이번에는 꽤 편안하게 기다렸다. 불합격하면 내년에도 다문화 아이들을 가르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합격하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합격하면 베트남으로 파견되느냐 아니냐였다.


발표 당일, 다문화 한국어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면접 결과를 확인하라는 세종학당 재단의 문자가 왔다. 카페에 들러 면접 결과를 확인했다. 합격이었다. 조금 기뻤다. 왜 조금 기뻤냐면, 이제 다문화 아이들을 2년 동안 가르치지 못 하는 게 확실해져서 아쉽기도 했고 가장 중요한 파견지는 합격 발표 며칠 후에 결정되기 때문이었다. 베트남에 살았었고 베트남어 중급 성적 증명서도 있으니 당연히 베트남이지 않을까... 생각하기에는 2017년의 경험 때문에 확신할 수 없었다. 당시 몽골에서 2년 살고 막 귀국한 상황이었고 세종학당재단 지원 시 가산점이 인정되는 시험은 아니지만 몽골 교육부 인증 몽골어 시험을 중급 수준으로 통과한 증명서도 제출했었다. 당연히 1지망도 몽골이었지만 파견지는 2, 3지망에도 없던 베트남이 되어서 황당했었다. 그래도 그때는 몽골이 아니어도 가겠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이번에는 베트남이 아니라면 합격 포기를 고민할 수도 있었다.


국내 교육 오리엔테이션 전날, 파견지 배치 메일이 왔다. 합격 발표를 확인할 때와 다르게 긴장이 되었다. 마음속으로 계속 '제발 베트남, 제발 베트남!'이라고 말하며 메일을 열었다.


결과는 베트남이었다! 그것도 면접 때 내가 가고 싶다고 한 하노이! 그렇게 나는 하노이 한국문화원 세종학당에서 두 번째 파견 교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안녕! 후에, 베트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