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한국어학당에서 어학연수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을 때 일이다. 수업 시작 시간은 오전 9시, 20분 전부터 교실에 와 있었지만 일찍 온 학생은 한 명도 없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학생이 안 왔다. 그래도 몇 명은 오겠지... 했지만 기대와 다르게 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학생들이 별로 안 올 거라고 예상은 했다. 예상보다 좀 심하긴 했지만 말이다. 내가 맡은 베트남 반은 평소에도 지각과 결석을 밥 먹듯이 하는 학생들이었고, 무엇보다 시험이 어제 끝났기 때문이다. 시험 전에는 그래도 공부하려는 학생이 몇 명은 있었지만 지금은 시험도 끝났겠다 출석 일수도 비자 연장 신청에 문제없겠다, 학교에 올 이유가 없다 이거였다. 원래는 학기 마지막 날 시험을 봐야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시험이 끝나고도 수업이 있었다. 학생들에게 문자와 전화를 하고 페이스북 단체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지만 응답이 없다. 9시 30분이 지나고 다른 반 선생님께 카톡을 보냈다.
"저희 지금 한 명도 안 왔어요. 거기는요?"
"우린 그래도 세 명은 왔네요."
"선생님 저희도 두 명밖에 안 왔어요. 옆에 중국 반은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역시 다른 베트남 반도 비슷하다. 그래도 한 명은 오겠지.... 오긴 왔다. 1교시 수업이 끝나기 5분 전에 말이다. 수업은 안 듣고 출석만 하겠다는 생각으로 왔을 것이다. 누가 오긴 왔으니 그나마 다행인 건가? 결국 그날은 4교시가 될 때까지 전체 학생의 절반도 안 왔으며, 그나마 온 학생도 한두 교시만 수업을 듣고 갔다.
한국어 실력이 중급 정도 되면 아르바이트를 하는 어학연수생들이 많다. 그중 평일에 밤늦게까지 일하는 학생들은 부족한 잠을 수업 시간에 채우기도 한다. 깨워도 소용없는 학생들도 많지만, 대부분 교사가 깨우면 일어나려는 노력이나 최소 일어나는 척은 한다. 그런데 어느 날은 정말 황당한 장면을 봤다.
수업이 시작하자, 제일 앞에 앉은 한 학생이 교실 뒤에서 뭘 가져와서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베개였다. 설마 설마 했는데 그대로 베개 위에 머리를 올려 놓고 잔다. 황당했다. 그냥 자는 것도 아니고 베개를 베고 잔다고? 교사 바로 앞에서? 자는 학생은 많았지만 베개를 베고 자는 학생은 처음이었다. 나는 학생을 깨우고 혼내며 베개를 뺏었다. 그런데 학생은 어이없게도 오히려 짜증을 냈다. 내가 베개를 뒷자리에 다시 갔다 놓자, 일어나서 다시 가져왔다. 이번에는 베개를 뺏어서 가방 안에 넣었다. 학생은 "아, 선생님"만 반복하며 짜증을 내다가 그냥 엎드려 버렸다. 쉬는 시간에 잠깐 밖에 나갔다 다시 교실로 들어가 보니 그 학생이 베개를 베고 자고 있었다. 내 가방을 열어 베개를 빼 간 것이다.
기말고사 시험 기간이었다. 시험은 1교시부터 3교시까지 진행된다. 학교는 커닝을 방지하기 위해 시험 시작하기 전에 핸드폰을 모두 걷고 3교시 시험이 끝나기 전까지 돌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학생들의 교실도 바꾼다. 커닝을 하면 시험 점수는 무조건 0점이다. 시험 감독도 교사와 봉사활동 학생 한 명 이렇게 교실 당 두 명이 들어간다. 이런데도 커닝을 하는 학생들이 나온다. 그런데 이 경우는 커닝을 한 사실보다 커닝을 들킨 과정이 더 특별하고 어이없었다.
2교시 시험이 끝나고 교실에서 커닝 페이퍼가 발견됐는데, 누구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커닝 페이퍼의 주인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라 예상했지만 주인은 빨리, 그리고 아주 어이없게 밝혀졌다. 학생이 쉬는 시간에 자기가 쓴 커닝 페이퍼를 SNS에 자랑스럽게 찍어서 올린 것을 교사들이 본 것이다. 몇몇 학생들은 수업 시간이나 시험 시간에 제출하는 휴대폰과 진짜 핸드폰을 따로 가지고 있다. 이 학생도 제출용 핸드폰을 시험 전에 낸 것이다. 학기가 시작되면 한국어 교사들은 담당 학생과 모두 SNS 친구를 맺는다. 그런데 이 학생은 유급을 많이 해서 학교에서 오랫동안 공부한 학생이라 많은 선생님들과 SNS 친구를 맺은 학생이었다. 그런데도 자기가 쓴 커닝 페이퍼를, 그것도 시험이 끝나기도 전에 SNS에 올렸다. 이걸 안 들킬 거라고 생각한 것일까?
불행히도 그 학생은 내가 담당하는 반 학생이었다. 그 학생에게 커닝 페이퍼와 SNS에 올린 사진을 보여주며 따지자 학생은 겁먹은 표정으로 똑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선생님, 아니에요. 아니에요. 죄송해요. 제발요."
뭐가 아니라는 걸까, 아니라고 우기면 정말 아닌 것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 학생은 사무실에 불려가 주임 선생님과 이야기하면서도 어떤 변명도 없이 저 말만 계속했다. 결국 시험 점수는 0점 처리되었고, 학생은 다시 한번 유급을 하게 됐다.
위의 일들은 대학교 한국어학당에서 베트남인 학생들을 가르쳤을 때 겪었던 일들 중 일부이다. 이 외에도 학생들 때문에 힘들었던 경험은 많지만 위의 일화들이 제일 강하게 기억에 남는다. 다른 국적의 학생들도 문제 될 때가 가끔 있었지만 유독 베트남 학생들은 대학교 한국어학당에서 요주의 인물들이 되곤 한다.
현재 한국 대학교 부설 한국어학당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유학생은 베트남인 유학생이다. 과거에는 중국인 유학생이 대부분이었고 그다음은 일본인 유학생이었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베트남인 유학생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한국의 친 베트남 정책으로 베트남 유학생들이 대거 늘어났다. 한국 대학들도 출산율 감소 등으로 점점 줄어드는 학생을 유학생을 통해 채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베트남 학생들을 유치했다. 2020년 통계 자료를 보면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유학생은 모두 153,361명인데, 그중 중국인 유학생이 51,120명이다. 그런데 베트남인 유학생은 57,946명이다. 전체 유학생의 30%를 차지하고 있는 데다가 중국 유학생의 수를 뛰어넘었다. 중국 인구가 거의 14억 명인데 비해 베트남 인구는 1억 명이 조금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 유학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있다. 이중 34,178명은 학위 과정을 밟는 학생이 아니라 어학연수생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렇게 대거로 들어오는 베트남 어학연수생들이 모두 한국어 공부를 목적으로 오는 것은 아니다. 많은 학생들이 어학연수 비자로 입국한 후에 학교를 이탈하여 불법체류자가 된다. 유학생 신분으로는 취직을 할 수 없고,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해도 제약이 있다. 법적으로 어학연수 비자인 D-4 비자를 가진 학생은 아르바이트를 하려면 입국 후 6개월이 지나야 하며 한국어능력시험(TOPIK) 2급 이상에 합격해야 하고 주당 20시간 이내로만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베트남 학생들은 대부분 돈이 부족하다. 주당 20시간 이내로만 알바를 하면 몇 백이 되는 학비와 한국의 높은 물가를 감당할 수 없다. 심지어 한국에 유학 오기 위해 집안(친척들까지)의 돈을 끌어모아 온 학생도 다수 있는데, 이런 경우는 정기적으로 베트남에 있는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야 했다. 그래서 규정을 지키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이 수없이 많다. 처음부터 돈을 목표로 온 학생도 있지만, 정말 공부를 하기 위해 한국에 온 학생도 한국에서 계속 살기 위해 공부보다는 돈을 버는 일에 더 중점을 두기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
대학교 한국어학당은 이런 베트남 학생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공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학교에 오는 학생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나마 초급 학생들은 성실하게 공부하는 학생이 많은데, 중급으로 올라갈수록 수업에 불성실한 학생이 많아진다. 어학연수생들이 비자를 유지하기 위해 지켜야 하는 것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학교 출석 일수 70%를 채우는 것이다. 몇몇 학생은 단지 출석일수를 채우기 위해 학교에 온다. 자기가 몇 번을 더 결석해도 되는 건지 물어보는 학생도 많았다. 이런 학생들이 수업을 들을 리가 없다.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부족한 잠을 수업 시간에 채운다. 하지만 학생들이 이렇게 불성실하게 수업을 들어도 한국어 교사나 학교에서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걸 아는 학생들 중 일부는 대놓고 수업 시간에 자거나 떠든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라도 학교에 오면 다행이다. 더 큰 문제는 연락을 끊고 소리소문없이 사라져 불법체류자가 되는 것이다. 학교를 다니면서 어학연수생 신분으로 돈을 벌기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있다. 이런 제약에서 벗어나기 위해 학생들이 학교를 이탈하는 것이다. 공부하다가 도망을 가는 경우도 있고, 아예 불법체류자로 일하기 위한 방법으로 어학연수생 비자를 받아 입국하는 경우도 있다. 제일 악질인 것은 현지 유학원과 손을 잡고 한국 입국 후 이탈하는 경우이다. 내가 베트남 반을 담당했을 때는 다행히도 학기 중에 이탈하는 학생이 없었지만, 학생이 결석을 너무 많이 하면 '이 학생 도망가는 거 아닐까' 항상 걱정을 했다. 그리고 나중에 결국 그중 몇몇이 이탈해서 불법체류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렇게 학생들이 이탈하면 타격은 학교가 받는다. 불법체류자가 되는 학생 비율이 10% 넘으면 비자발급 제한 학교가 되어 유학생을 받기가 어려워진다. 베트남 유학생들이 단체로 이탈하여 잠시 문을 닫아야 했던 대학교 한국어학당도 몇 곳 있다. 어떤 경우는 한 유학원을 통해 입국한 베트남 학생들이 입국하자마자 학교에 한 번도 나오지 않고 단체로 이탈한 경우도 있다.
(참고 기사 : 박항서 매직과 베트남 불법체류자에 대한 불편한 시각 < 최진우의 세상 읽기 < 일반칼럼 < 기사본문 - 오피니언타임스 (opiniontimes.co.kr) , 무더기 잠적 인천대 베트남 연수생들…유흥업소 알바까지 | 연합뉴스 (yna.co.kr) , 코로나가 밉다…어학연수생 이탈 급증 - 경북일보 - 굿데이 굿뉴스 (kyongbuk.co.kr) )
물론 '모든' 베트남 유학생이 이렇게 문제인 것은 아니다. 오직 공부를 목적으로 유학 와서 성실하게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도 많다. 사실 그런 학생을 더 많이 만났기에 위에 일화들이 더 특별하게 느껴진 것이다. 한국으로 유학 오는 중국인 학생들은 대부분 집에서 돈을 충분히 보내 주기에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학업에 집중할 수 있다. 하지만 저소득 국가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장학금을 받아도 기본적인 생활비가 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학업을 이어가기가 힘들다. 베트남인 학생들이 제일 대표적이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밤 11시 12시까지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집에 와서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복습하고 겨우 자는 학생들도 많았는데, 수업 시간에 졸음과 싸우며 수업에 집중하려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 대학교 내 한국어학당이 베트남 학생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것도 사실이다. 대학교 자체에서 이런 문제를 강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 없다. 유학생들이 학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 유학생들의 이탈을 막을 수 방법은 대학 뿐만 아니라 교육부나 출입국관리사무소 등 부처에서 함께 고민을 해야 할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