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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Jan 10. 2022

나를 힘들게 한 학생들 1

지금까지 내가 쓴 글에 등장한 학생들은 모두 착하고 예의 바른 학생들이었다. 물론 이런 학생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기는 하지만, 당연히 항상 좋은 학생만 만난 것은 아니다. 수업 시간 내내 엎드려 자고 딴짓을 하고 무단 지각 결석을 하는 것을 넘어 교사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는 학생도 있다. 또, 착하고 성실한 학생이지만 가끔 철없는 행동으로 나를 당황하게 한 학생도 있다. 이번 글에서는 나를 힘들게 한 학생들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1. 그렇게 동영상을 보고 싶어?


한국어를 가르친 지 6개월도 안 된 초보 교사 때였다. 그 반은 몇몇 학생들은 공부하고 몇몇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도 대놓고 옆 친구와 수업과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를 하거나 핸드폰을 보는 분위기였다. 물론 주의를 주고 핸드폰을 뺏는 등 제재는 했지만 소용없었다. 솔직히 그때 나는 초보 교사였고 학생들과 나이 차이도 크게 나지 않아 '혼낸다'는 게 불편하고 어색했다. 심지어 나보다 나이가 많은 학생, 동갑인 학생도 몇 명 있었다. 그래서 '그래, 공부하는 학생들만 챙기면 되지. 안 하면 너희들만 손해지 내가 손해냐' 하는 조금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수업을 했다. 그래서 너무 얕보였나, 한 학생이 제대로 선을 넘어버렸다.


어느 날 한국어 듣기 수업을 할 때였다. CD를 틀어주고 학생들에게 듣기 문제를 풀라고 했다. 아무리 수업 시간에 떠드는 학생도 CD가 나오는 순간만큼은 조용히 한다. 그런데... '응? 이건 무슨 소리지? 밖에서 들리는 건가?' 갑자기 신나는 노래가 들렸다. '아 왜 하필 이 시간에...'라고 생각하며 눈을 돌렸는데, 내 눈에  너무 태연하게 핸드폰을 보며 낄낄거리고 웃는 A가 들어왔다. 음악 소리는 A의 핸드폰에서 나오고 있었다. 평소에도 자주 이어폰을 끼고 유튜브를 보는 학생인데, 이번에는 마지막 남은 양심을 어디 팔아버리고 온 건지 이어폰도 안 끼고 영상을 보고 있었다.


어이없음과 함께 치고 올라오는 화를 누르며 A에게 핸드폰을 달라고 했다. 그런데 A는 '아이고 선생님 죄송하게 됐습니다~ㅎㅎ' 하는 표정으로 핸드폰을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 전에도 핸드폰을 내라는 내 말을 무시한 적이 있었는데, 주머니와 가방을 뒤져 억지로 뺏는 것도 싫고 수업 시간을 낭비하는 것도 싫어서 그냥 포기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나는 계속 A의 앞에서 손을 내밀었고 핸드폰을 당장 내라는 말만 했다. 시간이 계속 흐르니 A도 민망해졌는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줬다. 나는 A에게 말했다.


"너 당장 나가. 나가서 들어오지 마."


그렇게 A는 계속 교실 밖에 있다가 수업이 끝나고 들어왔다. A는 한국어를 잘 못했다. 그래서 나는 한국어를 잘하는 학생 한 명에게 통역을 부탁하고 A에게 말했다. 너 때문에 다른 학생들이 공부에 방해가 된다. 기본적인 예의도 안 지킨다. 대체 왜 한국어 수업을 듣냐. 계속 공부하고 싶으면 이런 식으로 행동하지 마라. 그리고 앞으로도 이럴 거면 그냥 수업에 들어오지 마라 등등. A는 내 말을 들으며 어떤 변명도 없이 실실 웃으며 진정성이 하나도 없는 미안하다는 말만 했다. 내가 정색하며 "웃지 마. 지금 웃음이 나와? 재미있어?"라고 말하니까 그제야 분위기를 파악했는지 웃음을 멈추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A의 수업 태도는 계속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이후로는 수업 시간에 이어폰 없이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보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그다음 학기부터는 A를 볼 수 없었다. 학교에서는 성적이 나빠도 웬만하면 유급을 안 시키는데, A는 성적이 봐줄 수 없을 만큼 나빠서 유급이 된 것이다. 자퇴를 한 건지 휴학을 한 건지 모르겠다. 그런 태도로는 학교가 아닌 어딜 가도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 힘들 텐데, 좀 철이 들어서 나아졌으려나...


2. 선생님, 왜 차별해요?


이 학생은 B라고 하겠다. B는 평소에 수업 시간에 다른 과목 숙제를 하거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지각도 자주 해서 빈번하게 지적당하는 학생이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기분 나쁜 것이 있으면 상대가 친구든 교사든 솔직하게 바로 표현하는 학생이었다.


기말고사 시험 기간이었다. 사정이 있어 시험날 시험을 못 본 학생이 B를 포함해서 몇 명 있었는데, 그 학생들은 비슷한 난이도로 문제를 바꿔 재시험을 보게 했다. 그런데 시험 결과 발표 날, 시험 점수를 확인한 B가 점수가 이상하다고 항의를 했다. 다른 학생보다 자기 점수가 낮은 게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이상한 것은 없다고 이게 맞는 점수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왜 원래 시험 문제와 재시험 문제가 다르냐며 항의했다. 문제 유출의 위험이 있어 비슷한 난이도로 문제를 바꾼 것이며, 만약 똑같이 냈으면 먼저 시험 본 학생이 불리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니, 말을 바꿔서 또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왜 차별해요? 학생 차별하지 마세요."


대체 무슨 말일까? 황당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학생을 차별한 기억이 없었다. 물론 교사도 사람이기에 더 마음이 가는 학생은 있다. 지각과 결석을 밥 먹듯이 하고 수업 시간에 대놓고 딴짓하는 학생과 성실하게 공부하고 예의 바른 학생을 똑같이 대할 수는 없지 않나? 하지만 맹세코 더 마음이 가는 학생들만 예뻐한다든가 특혜를 준다든가 하는 차별은 하지 않았다. 시험 점수는 객관적으로 판단한 것이고 절대 차별해서 준 점수가 아니었다. B에게 대체 무슨 이유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냐고 물어봤지만 B는 대답을 피했다. 나도 정말 화가 났지만, 학생과 감정적으로 싸워서는 안 되니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B가 문자를 보냈다

 

"선생님. 정말 죄송해요. 사실 저보다 한국어를 못하는 학생들이 저보다 점수가 높게 나와서 그랬어요. 선생님 잘못이 아닌데 그랬어요."


이날은 이렇게 마무리됐지만, B는 그 이후로도 몇 번 나에게 기분 나쁜 감정을 드러낸 적이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부분에서 그래서 답답했다.


그 이유는 시간이 지나고 B가 털어놓아서 알 수 있었다. 이 일은 내가 해외에서 일할 때 있었던 일이었는데, B는 사실 내가 이 학교에 오기 전부터 한국 선생님이 오신다는 말을 듣고 나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 했다고 했다. 학교에서는 내가 오기 전에 나를 도와줄 학생을 선발했었는데, 처음에는 여기에 B가 뽑혔다. 그런데 C라는 학생이 학교에 자기가 그 일을 하고 싶다고 너무 강력하게 요청을 해서 C로 바뀌었고, B는 이 일 때문에 C에게 안 좋은 감정이 생겼다. 나는 파견 초반에 C의 집에서 2주 동안 살며 학교 업무를 익히고 집을 구하고 파견된 나라의 문화를 공부하며 C의 가족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하지만 난 수업 시간에는 이런 개인적인 친분을 드러내지 않았고 다른 학생과 똑같이 대했는데, C는 친구들에게 은근히 나와 개인적인 친분을 자랑하고 싶어 했다. 그게 B가 보기에는 내가 C를 편애하는 것으로 느껴졌나 보다. (억울하게도, C는 내가 다른 학생들과 자기를 똑같이 대해서 섭섭하다고 말했다.) 또 B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반에서 싫어하는 학생이 또 있었는데, 그 학생은 아주 성실하고 한국어를 잘하는 학생이었다. 그런데 나와 친하게 지내고 싶었던 B는 수업 시간에 내가 자신이 싫어하는 학생을 칭찬할 때마다 질투를 한 것이었다.


다행히 B는 자기 잘못을 사과했고 나도 B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리고 내가 귀국할 때까지 서로 잘 지냈고, 귀국하고 나서도 가끔 연락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아직도 "선생님 학생을 차별하지 마세요."라는 말은 잊히지 않는다. 물론 이건 내가 정말 차별을 해서 들은 말은 아니지만, 혹시라도 학생이 차별이라고 오해할 만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더 조심하게 되었다.


3. 선생님은 우리 선생님이에요!


이것 참... 이번에는 내가 학생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해서 들은 말이다. 1학기 때 가르친 초급 반 학생들은 한국어 수업을 통해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학생들끼리 아주 잘 뭉쳤고, 나를 너무 좋아했다. 주말에 여행 가자, 카페에 놀러 가자 연락을 너무 해서 피곤할 정도였다. 다른 반 학생들도 서로 잘 모이고 담당 선생님을 좋아했지만, 다른 선생님들이 보기에도 이 학생들은 유별나다 싶을 정도였다.


2학기가 되고 1학기 때 내가 가르친 학생들인 1그룹과 다른 선생님이 가르친 2그룹 학생들이 합쳐져 한 반이 되었다. 담당 교사는 나였다. (1, 2그룹은 글에서만 쓴 편의상 명칭이고 실제로 그룹을 나눈 것은 아니다.) 나는 당연히 기존에 가르친 학생이든 새로 맡게 된 학생이든 똑같이 대했다. 2번에서 B의 일화도 있고 해서 혹시나 새로 만난 학생들이 섭섭해할 일이 생기지 않을까 더 조심했다. 그런데 1그룹 학생들이 2그룹을 처음부터 멀리했다. 그중에서도 학생 한 명이 유독 심했다. 그 학생은 2그룹 학생들에게는 인사도 안 했으며, 내가 2그룹 학생을 칭찬하면 대놓고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다. 딱히 무슨 일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내 관심을 새로 만난 학생들과 나눠 갖는 것을 싫어한 것이다.


어느 날, 1그룹 학생들이 나한테 수업이 끝나고 카페에 가자고 말했다. 나는 좋다고 하며 반 학생 모두에게 수업이 끝나고 시간이 되는 사람은 카페에 같이 가자고 말했다. 그러자 1그룹 학생들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2그룹 학생들은 1그룹의 눈치를 봐서 하는 핑계인지 정말인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안 맞는다며 나중에 보자고 했고, 나는 그럼 다음에 다 같이 시간 맞춰서 가자고 했다. 수업이 끝나고, 1그룹 학생 중 유독 2그룹을 싫어하는 그 학생이 나한테 와서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은 우리 선생님이에요. 다른 학생들 선생님 아니에요! 우리는 지난 학기부터 같이 공부했어요."


이게 무슨 말인가? 내가 어떻게 같은 반에서 일부 학생만의 선생님이 될 수 있나? 황당했다. 내가 나는 모두의 선생님이고 학생들과 다 같이 잘 지내는 게 좋다고 대답하자 그 학생은 섭섭한 표정을 지으며 교실을 나갔다. 나이가 어린 학생이면 그 마음을 좀 이해하고 타이를 수 있었을 텐데, 회사 일을 하는 학생이 그래서 더 황당했다. 다행히 1그룹의 다른 학생들은 그 학생만큼 편을 나누지 않았고, 나중에는 모두 사이좋게 학기를 마무리했다. 서로 다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학생들도 대부분 성인이었기에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짝 활동이나 게임을 할 때 일부러 1, 2그룹 학생을 섞어서 하게 했는데, 그게 좀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4. 한국에 가서 일하게 도와주세요.


역시 해외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학생이 상담을 요청해 왔다. 자기는 한국에서 일을 하고 싶은데, 지금 당장은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일할 수 있는 비자를 받고 가면 되지 않느냐 대답했다. 그런데 비자를 받고 가면 여러 가지 제약이 있고, 비자를 받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것도 많아서 안 된단다. 이 학생이 말한 방법은 일단 한국에 관광 비자로 입국을 해서 잠적하고 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불법 체류자가 되는 사람이 많아서 관광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신원을 보증해 줄 수 있는 한국 사람과 거주지 주소가 필요하다고 했다. 즉, 이 학생은 나한테 자신이 불법 체류자로 한국에서 일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안 된다고 거절했는데, 이런 부탁을 당당하게 하다니... 참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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