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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Jan 03. 2022

그리운 몽골

다시 가고 싶은 몽골!

코이카 봉사 단원으로 파견되어 2년 동안 살았던 몽골 울란바타르. 귀국하고 한국에 살면서, 베트남에 살면서도 그곳은 항상 그리웠다. 몽골에서 사는 꿈을 꾸거나, 몽골이 너무 그리워 몽골로 여행을 가는 꿈을 꾼 적도 수도 없이 많다. 며칠 전에도 꿈을 꿨는데, 코로나19 시기에 가족들에게 말도 안 하고 몽골로 가 버려서 '코로나19에 걸리면 어떡하지, 귀국하면 자가 격리해야 하는데... 가족들한테는 어떻게 설명하지...' 하며 전전긍긍하다가 꿈에서 깬 적도 있었다.


베트남 학생들은 나한테 "선생님, 베트남이 더 좋아요 몽골이 더 좋아요?" 물어보고, 반대로 몽골 학생들은 "몽골이 더 좋아요, 베트남이 더 좋아요?" 물어본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둘 다 비교할 수 없이 좋다고 대답했다. 이건 사실이다. 베트남도 몽골도 다 나에게 소중한 추억을 안겨 주었고, 나는 더 성장하게 해 준 곳이다.


하지만 더 그리운 곳, 다시 한번 살고 싶은 곳은 몽골이다. 왜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마 몽골은 내가 처음으로 해외 생활을 한 곳이자 처음으로 한국어를 가르친 곳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처음이었던 만큼 서툴렀고 실수도 많았고 힘들었다. 나 홀로 해외에서 살아가는 것도 힘들었고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도 교사로서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았다. 부끄럽지만 수업 때 실수도 많이 했다. 처음 1년 동안은 수업할 때마다 잔뜩 긴장을 했다. 아마 코이카 동료들이 없었으면 나는 1년도 못 버티고 귀국했을 것이다. 하지만 베트남에 갔을 때는 이미 해외 생활을 2년 해 봤기 때문에 해외에 적응하는데 큰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한국어 수업도 익숙해져서 몽골에서보다 훨씬 더 잘, 능숙하게 가르쳤다. 그래서 베트남을 떠날 때는 후회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몽골은 후회를 가득 안고 떠난 곳이라 아쉬움도 그리움도 더 큰 것 같다. '지금 다시 몽골에 가면 더 잘 살 수 있는데, 더 잘 가르칠 수 있는데' 하면서 말이다.


제일 아쉬운 일은, 몽골에서의 기억 중 잊히는 것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이다. 사진으로 남긴 것이나 파견 초반에 일기로 써 놓은 것들은 자세히 기억이 나지만, 사소한 기억들은 나이가 들수록 사라진다. 몽골에서 알고 지낸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 내가 그랬었어?", "그런 일이 있었나?" 하는 기억들이 많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일기를 매일 쓸 걸! 몽골에서부터 브런치나 블로그를 할 걸!... 사실 일기를 매일 쓰려고 했는데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때 항상 우울한 일만 쓰다 보니 더 우울해져서 그만두었다.... 그만두지 말 걸!


후회해 봐야 뭐 하겠나. 후회할 일만 늘어나겠지. 언젠가는 몽골에 다시 갈 수 있기를 기대하며, 몽골에 관련된 추억을 조금 풀어 본다.



내가 파견되었던 몽골국립사범대학교 인문사회대학. 봉사단원 신분이었지만, 2년 동안 동양어문학부 한국어학과 교수로 일했었다. 몽골은 교수 개인 연구실이 따로 없고 교무실이 있는데, 나 혼자 외국인이고 몽골어도 못하고, 또 이런저런 이유로 불편해서 교무실에는 오래 앉아 있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용기 내서 교무실에서 다른 교수님들과 이야기를 좀 많이 해 볼 걸 그랬다.



처음으로 가르친 학생들. 정식으로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학교에 갔었는데, 학생들이 내가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런 깜짝 이벤트를 해 줬다. 마침 이날이 내 생일이었다.



학생들과 수업이 끝난 후와 주말에 계속 모여서 같이 준비했던 연극 대회와 퀴즈 온 코리아 대회. 비록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준비하는 과정은 참 즐거웠다.



울란바타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자이승 전망대. 집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라 운동하고 싶으면 여기에 올라갔다. 스트레스받아서 한국으로 가고 싶을 때 자이승에 올라 울란바타르를 내려다보면 '아, 여기서 보면 다 작아 보이네. 내가 안고 있는 스트레스도 사실 작은 거 아닐까? 그리고 여기도 내 삶의 터전이다!' 하는 생각이 들어 귀국 생각이 사라졌다. 운동도 하고 기분 전환도 할 수 있었던 최고의 장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몽골의 광활한 자연 풍경! 몽골의 전통 집 게르는 몽골의 초원을 더 돋보이게 한다. 몽골이 그리운 이유는 사실 어디 가도 볼 수 없는, 사진으로는 차마 다 표현하지 못하는 자연 때문인 것도 있다. 도시를 벗어나자마자 보이는 탁 트인 초원과 풀을 뜯어먹는 가축 무리들, 평지에 있는데도 가까워 보이는 웅장한 하늘. 무엇보다도 밤하늘에 흐르는 은하수를 아주 또렷하게 볼 수 있다는 것. 은하수를 바라보며 컵라면과 맥주를 마신 기억은 정말 죽을 때까지 잊히지 않을 것이다. 핸드폰으로 은하수를 찍을 수 없었다는 것이 아쉽다.




몽골의 자연을 제대로 즐기고 싶으면 고비 여행을 가야 한다. 고비 여행은 정말... 너무 힘들어서 두 번은 못하겠지만 살면서 한 번쯤은 반드시! 꼭! 가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고비의 웅장한 경관은 아무리 잘 찍은 사진이라도 10분의 1도 담아내지 못하는 것 같다. 꼭 직접 눈으로 봐야 한다. '와!'가 아니라 '와......' 소리가 자동으로 연달아 나오는 곳이 바로 고비다.



학생들에게 내 준 과제와 시험 문제. 귀국할 때 나중에 논문 쓰면서 연구 자료로 쓸 수 있을까 해서 이런 자료들을 좀 챙겨 왔는데, 논문에 사용하지는 않았고 기념품이 되었다. 어제 밑에 두 사진의 주인공 앙흐바야르에게 이 사진을 보냈는데, 이때 자기가 이렇게 귀여웠냐며 새해 선물을 받은 느낌이라고 아주 좋아했다. 이때 앙흐바야르는 한국어를 배운 지 약 1년이 지났을 때였다. 그랬던 앙흐바야르는 2년 전에 한국어능력시험 6급(제일 높은 등급)에 합격했고 한국어 번역 통역 일도 하는 직장인이 되었다.



3학년 학생들에게 천상병 시인의 <귀천>,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주고 시화를 그려 보게 했다. 시에 대한 설명을 아무것도 해 주지 않은 상태에서 학생들이 스스로 시의 의미를 해석해서 그리게 했다. 그 후에 학생들이 자신이 어떻게 이해하고 그린 것인지 발표하게 하고, 발표가 끝난 후에 내가 어떤 시인지 설명해 주었다. 가운데 학생은 귀천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놀랐었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이다. 나는 몽골에 사는 2년 내내 학원을 다니며 몽골어를 공부했다.  오늘 어쩌다가 그때 공부한 교재를 다시 훑어보았는데, 교재를 보니 몽골이 더 그리워졌다. 그리고 동시에 참 아쉬웠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던 몽골어인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행히 초급 수준은 얼추 기억이 나는데... 나는 몽골 교육부에서 인증하는 몽골어 시험도 중급 수준으로 합격했었다. 그런데 정말 중급 수준의 문장과 단어가 기억이 안 난다. 억울하다... 귀국한 이후 공부를 안 했으니 기억이 안 나는 건 당연한 건데 억울하다... 다시 간다면 하루 3시간은 몽골어 공부에 올인할 것이다.


아 어쨌든 그리운 몽골로 다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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