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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Oct 02. 2022

다사다난한 출국길

2022년 문화원 세종학당 1학기

2022년에는 작년까지 같이 일했던 이 선생님이 계약 만료로 세종학당을 떠나시고 상반기 파견 교원으로 원 선생님이 새로 오셨다. 이 선생님도 한국으로 귀국하시고 원 선생님도 새 동료가 되셨으니, 한번 다 같이 모이자고 했다. 나와 이 선생님, 그리고 김 선생님과 원 선생님은 서울에서 만났다. 내가 문화원 세종학당에 들어오고 처음으로 실제로 문화원 동료 선생님들을 뵌 것이었다. 1년 가까이 코로나 때문에, 그리고 이 선생님은 베트남에 있고 나와 김 선생님은 한국에 있어서 서로 줌(ZOOM)으로만 이야기를 했었다. 우리는 서로 TV에서나 보던 연예인을 보는 느낌이라고 했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이야기도 실컷 하고 베트남으로 가기 전에 모이자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바로 2월에 문화원 방학 특별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두 번째 모임을 가졌다. 김 선생님의 부모님께서 영종도에서 펜션을 하시는데, 거기에서 전·현직 문화원 파견교원 선생님들이 모였다. 작년 여름까지 함께 하셨던 윤 선생님과 그전에 문화원에 계셨는데 또 세종학당 파견 교원이 되신 선생님까지 모였다. 인천공항에서 선생님들을 만나 펜션으로 갔는데, 3년 만에 보는 공항의 모습은 참 황량했다. 2011년, 단기 해외 봉사활동을 하러 처음으로 인천공항에 왔는데, 21살인 나에게 그 어마어마한 사람 수와 넓은 규모는 놀라움 자체였다. 인천공항은 그 이후로도 항상 사람들로 북적였었고, 내가 아는 장소 중에서 가장 복잡하고 정신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랬던 공항이 출국장인 2층은 너무 한적했고 입국장인 1층은 일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입점 가게들도 모두 문이 닫혀 있었다. 내가 베트남으로 출국할 때쯤에는 부디 활기를 조금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2022년 2월 초의 인천공항 출국장


김 선생님의 펜션은 바다 바로 근처에 있어서 좋았다. 영종도 바다 근처에서 일몰을 보며 산책하고, 펜션 강아지 '바다'하고도 놀고, 펜션으로 돌아와서는 김 선생님과 사장님께서 현란한 솜씨로 구워주신 바비큐를 아주 맛있게 먹었다. 1년 넘게 신경을 쓰던 비자 문제가 없어져서 출국하는 게 확정되었기 때문에 먼저 다녀오신 선생님들께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고 정보를 많이 얻었다. 나와 같이 출국하고, 나를 도와주실 분들이 있어서 든든했다.


바베큐 파티, 해질녘 영종도 바닷가


새 학기도 시작하고 비자 준비도 해야 해서 분주해졌다. 그런데 이제 아무 문제가 없어 일사천리로 될 것 같던 비자 준비가 쉽지 않았다. 세종학당 파견 교원들이 아마 제일 골머리 앓는 것은 비자 문제인 것 같다. 파견 교원의 비자는 세종학당재단, 현지 세종학당, 비자 대행사(여행사)가 모두 소통이 잘 되어야 스트레스 받지 않고 받을 수 있다. 안타깝게도 세 박자가 모두 맞는 경우는 별로 없다. 다행히 나는 학당과 소통이 원활했기 때문에 그나마 덜 답답했다. 아마 우리의 비자 문제에 관해서는 문화원 세종학당 담당 운영요원인 짱 선생님께서 가장 고생했을 것이다.


내가 받아야 하는 비자는 노동비자(취업비자)이다. 노동비자를 받으려면 워크퍼밋(노동허가서)을 받아야 했고, 워크퍼밋 신청에 필요한 서류는 경력증명서, 졸업증명서, 범죄경력회보서, 건강검진증명서, 한국어교원자격증, 여권 사본에다가 재단에서 발급해 줘야 하는 베트남 파견 알림서와 파견교원 전문가 확인서이다. 모든 서류는 이미 작년에 다 준비했었기에 2022년에 바로 공증 번역을 받으면 되겠다 싶었는데, 재단에서 비자 대행사 선정을 계속하지 않아 한 달을 넘게 기다렸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재단에서 비자 대행사를 선정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개별적으로 비자 대행사에 연락을 해서 공증 번역을 받았는데, 공증 번역 완료된 서류를 우편으로 받고 심히 당황했다. 서류 세 개가 빠진 것이다. 분명히 서류를 몇 번이나 확인해서 보냈었기 때문에 내가 빠뜨린 것은 아니었다. 비자 대행사에 항의하자 서류를 이메일로 다시 보내면 빠르게 번역 공증을 받을 수 있는 급행으로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며칠 후 완전한 서류를 받았지만 여행사의 실수와 시간이 지체된 데에 화가 났다.


어쨌든 서류를 베트남 문화원으로 보내고 워크퍼밋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우리 여권 사본을 신분 증명란뿐만 아니라 여권 표지부터 모든 페이지를 다 스캔해서 보내 달라는 연락이 왔다. 베트남 출입국사무소의 요청이었는데, 이해가 안 갔다. 40장 정도 되는 모든 페이지를 스캔하는 것도 이해가 안 가는데, 표지까지? 어쨌든 연락이 오자마자 부랴부랴 스캔을 해서 보냈는데, 더 이상 비자 문제 때문에 신경을 쓰기 싫은데 계속 일이 생기는 게 짜증이 났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이걸 그냥 스캔본만 보내는 게 아니라 공증 번역까지 받아야 해서 문화원에서 공증 번역을 해 줬다고 한다. 베트남 출입국사무소도 뭔가 합당한 이유가 있겠지 싶으면서도 이해가 안 되었다.


어쨌든 이런 과정을 거쳐 2022년 4월 초, 드디어 워크퍼밋을 받았다! 정말 속시원했다. 이제 비행기표 예매, 주한국 베트남 대사관에 가서 비자 받기, PCR 검사 음성 확인서를 받는 일만 남았다! 서둘러 같이 가기로 한 다른 교원들과 4월 16일에 출국하는 것으로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출국 전까지 코로나19를 피하기 위해 은신에 돌입했다. 지인들이 출국 전에 만나자고 하는 것도 모두 거절하고, 자주 가던 사람 별로 없는 카페도 가지 않았다. 바깥 활동은 산책이나 꼭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갈 때만 했고 그나마도 사람이 없는 곳으로만 다녔다.


"빨간약(요오드)으로 가글하면 코로나19 예방에 효과가 있대요."

"오, 저도 검사 받기 전까지 맨날 해야겠어요!"


출국 단톡방에서 김 선생님이 꿀팁을 알려 주셔서 바로 빨간약을 사러 약국에 갔다. 그런데 이런, 나만 모르던 꿀팁이었는지 다 팔리고 없단다. 약국 몇 개를 돌아다녀서 간신히 요오드 스프레이 하나를 샀다. 출국 전까지 매일매일 목구멍에 뿌리기로 했다. 이렇게 코로나19 예방에 온 신경을 썼는데, 딱 하나 비자를 받기 위해 서울에 가는 게 걱정되었다. 서울을 가면 버스나 기차를 타야 했고, 오전에 신청하면 오후에 비자가 나와서 점심도 먹어야 할 텐데, 그때 코로나19에 감염되면 어쩌나! 다행히 남동생이 백마... 가 아닌 자동차 탄 기사님이 되어 주었다.


"누나 내가 서울 태워다 줄게."


5살 차이 나서 아무리 대학원까지 졸업해서 그냥 어리게만 보이던 남동생이었는데 갑자기 너무 듬직해 보였다. 심지어 당일 약속이 있었는데 취소하고 나를 도와준 것이었다. 다른 날에 서울에 가려고 해서 그날밖에 시간이 안 되어서 미안했는데, 동생이 약속은 다음으로 미뤄도 된다며 자기가 먼저 흔쾌히 나를 도와줬다.


새벽에 출발해서 아침 9시 반이 조금 넘었을 때 베트남 대사관에 도착해, 2번 번호표를 받고 당일 발행으로 비자를 신청했다. 그리고 남는 시간 동안 남동생과 서울 구경을 했다. 경복궁도 가고 벚꽃이 만개한 여의도 한강 공원도 드라이브로 구경하고 점심도 맛있게 먹었다. 언니와는 둘이서만 가까운 곳에 가서 논 적은 가끔 있었지만, 동생이랑 그런 적은 없었다. 비자 신청이 동생하고 단 둘이 시간을 보낼 기회를 선물해 준 것 같아서 좋았다. 그런데 좋았던 기분은 베트남 대사관에 가서 깨졌다. 비자 스티커를 붙인 여권을 수령할 수 있는 시간은 16시 30분까지였다. 나는 16시에 여권을 받고 당일 수령 비용인 30만 원을 결제하려고 카드를 내밀었다. 그런데 직원이 카드는 안 되고 현금만 된다는 것이었다. 황당하면서도 정신이 아득해졌다. 카드 결제가 안 되는 것도 어이없었지만, 이런 정보를 모르고 그냥 온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대사관에 오기 전에 인터넷으로 관련 정보를 엄청 봤었는데, 이런 중요한 걸 왜 놓쳤을까. 대사관 직원에게 근처에 ATM이 있는지 물어보니, 가까운 거리에 우체국이 있다고 알려 줬다. 지갑을 들고 냅다 우체국으로 달려가 현금 30만 원을 뽑은 후 대사관으로 돌아와 간신히 비자를 받았다. 마감 15분 전이었다. 천만다행이었다.


주한국 베트남 대사관


마지막 관문은 PCR 검사였다. 지금은 검사가 필요 없지만, 2022년 4월은 PCR 검사 양성이 나오면 코로나가 완치된 후에 베트남에 갈 수 있었기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하루빨리 베트남에 가고 싶은 마음보다, 더 이상 출국에 신경을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나는 같이 출국하는 교원들과 같이 단톡방에서 '제발 음성'을 기원했다. 출국 이틀 전, 입과 목에 요오드 스프레이를 충분히 뿌리고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다른 교원들도 모두 오전에 검사를 받았다.


"저 음성 나왔습니다."

"저도 음성이에요!"


다른 지역 병원은 검사 결과가 일찍 나왔다. '다른 분들은 다 음성인데 나만 양성이면 어쩌지? 지금까지 코로나 증상은 없었는데, 혹시 내가 무증상 감염자였으면 어떡하지? PCR 검사는 코로나가 완치돼도 몇 개월은 양성이 나올 수 있다는데...' 불안해하던 중, 병원에서 문자가 왔다!


[최희숙 님 코로나19 PCR 검사 결과 음성입니다.]


와! 나도 음성이었다! 드디어 길고 긴 기다림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이제 비행기를 타는 일만 남았다. 이틀 뒤, 인천공항에 두 달 만에 다시 방문했다. 다시 방문한 인천공항은 여전히 한적했지만, 그래도 2월만큼은 아니었다. 코로나19 이전의 모습을 느리게 되찾아 가는 것 같았다. 공항에서 동료 선생님들을 만나서 저녁을 먹고, 늦은 저녁 하노이로 가는 아시아나 비행기에 올랐다.


2022년 4월 16일 인천 공항, 비행기 타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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