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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Sep 25. 2022

한국문화 수업

2022년 문화원 세종학당 1학기

수료식 전 겨울 특별학기 때 운영할 수업을 정했다. 겨울 특별학기 기간은 설날 연휴 후인 2월 중순부터 3월 초까지로 정했다. 2021년 2학기에 세종학당재단에서 <BTS와 함께 공부하는 한국어> 교재를 지원받게 되었다. 이 선생님께서 2학기에 약 3주 동안 수업을 하셨고, 남은 교재를 내년(2022년)에 활용하기로 했었기에 겨울 특별학기 때 'BTS한국어' 수업만 하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문화원 세종학당 운영교원이신 짱 선생님이 수업이 좀 더 다양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셨다. 짱 선생님의 의견에 동의해서, BTS수업은 하반기 파견 교원이신 김 선생님만 하시고 나는 여름 특별학기 때 한 여행 한국어 수업, 새로운 수업으로 한국문화 수업을 하기로 했다.


수업은 토요일마다 두 시간씩, 총 3주를 했다. 1주차는 한국의 전래동화 - '흥부와 놀부', 2주차는 '한국 음식', 3주차는 '모시 빗자루 만들기'였다. 대상은 초급 마지막 과정인 세종한국어 4권 이상을 수료한 중급 학생으로 잡았다. 베트남에서 대면으로 수업을 했다면 만들기나 한복 입기, 한국 전통 놀이 체험 등 초급 학생들까지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계획했겠지만, 온라인으로 하기 때문에 통역이 없는 이상 초급 학생까지 즐길 수 있는 수업을 계획하기가 어려웠다. 사실 한국의 전래동화는 중급 학생도 듣기 어려운 수업이었지만,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문화 수업 소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전래동화 중에서 흥부와 놀부가 제일 쉽게 수업할 수 있고, '누리 세종학당' 사이트에 이미지 자료도 올라왔기 때문에 그걸로 선정했다.


1주차 - <흥부와 놀부>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문화 수업을 찾기 위해 논문 몇 개를 훑어보았는데, 그중 전래동화를 이용한 한국 문화 수업 관련 논문도 몇 개 읽었다. 논문 내용 중에서 전래동화를 이용한 한국어 교육의 장점이 눈에 들어왔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전래동화 같은 구비문학에는 그 나라의 전통과 관습, 가치관이 잘 녹아들어 있다.
2. 전래동화의 주제와 내용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외국인에게도 낯설지 않다.
3. 작자 미상, 전달자에 따라 내용 수정이 가능한 구비문학의 특성상 전래동화는 한국어 교사들이 학습자 수준과 학습 목표에 따른 내용 편집이 용이하다.
4. 전래동화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사건 구조로 한국어를 잘 모르는 외국인도 내용 이해에 부담을 덜 느낀다.
5. 전래동화는 책, 만화, 동영상 등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시청각 자료들이 있다.
6. 전래동화에는 속담과 관용 표현, 의성어, 의태어가 다양하게 나온다. 전래동화를 통해 이런 것들을 배울 수 있다.

<참고>
이가원(2019), 비교문학 관점에서 본 설화의 한국어 문화교육적 의의와 가치 연구 - 한국, 베트남, 우즈베키스탄의 흥부놀부형 설화를 중심으로, 한국문예비평연구 제62집
석선유(2021), 전래동화를 활용한 한국어 다중문식성 교육 연구 - 소가 된 게으름뱅이를 중심으로,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성의연(2012), 한국 전래동화를 활용한 한국어 교육방안 연구 - 중급 학습자를 대상으로, 청주대학교 일반대학원


다른 읽기 자료에 비해 외국인 한국어 학습자들에게 부담을 덜 준다, 자료를 내가 편집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부분이 공감이 갔다. 게다가 시청각 자료를 활용할 수 있는 것도 온라인 수업에 적합해 보였다.


<흥부와 놀부>는 세종한국어 8권에 10과에 나오는 내용이다. 해당 과의 목표 어휘는 '옛날 옛날에' 등 이야기에 자주 사용되는 표현과 '날아갈 듯이, 띌 듯이' '-듯이'를 사용한 표현이고, 목표 문법은 '-는 것이다'와 '았더니/었더니'이다. 나는 8권 10과에서는 다루지 않는 의성어와 의태어, 관용어를 가르치는 것을 수업 목표로 잡았다. <흥부와 놀부>에는 이런 의성어와 의태어, 관용 표현이 많이 나왔고, 내가 내용을 편집하면서 추가하기도 했다. 문법 설명은 아예 하지 않았다. 수업 목표는 어휘와 <흥부와 놀부> 내용 이해였고, 문법을 몰라도 내용 이해에 문제는 없었기 때문이다.


<흥부와 놀부> 동화책 한 권을 빌려 대본을 썼다. 너무 어렵다 싶은 내용과 어휘는 쉽게 바꿨지만 '제비, 도깨비, 밥주걱' 같은 필수 단어들은 그대로 두었다. 대신 대본 마지막에 단어들을 베트남어로 번역해서 표로 만들어 추가했다. 내가 먼저 베트남어 사전을 찾아 단어를 번역하고 한국어를 잘하는 베트남 학생에게 검수를 받았다. 이렇게 만든 대본을 수업 시작 바로 전에 학생들에게 나눠 줬다. (후에 세종학당 때 가르친 학생으로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종종 서로 도움을 주고받았다.) 그래도 수준이 높은 것 같아, 학생들에게 <흥부와 놀부>에 나오는 모든 단어와 문법을 알 필요는 없다, 새로 배우는 의성어와 의태어, 관용어를 이해하고 <흥부와 놀부> 내용을 이해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흥부와 놀부> 교수 학습 계획안 일부

 

수업은 '핑크퐁' 유튜브 채널에 있는 <흥부와 놀부> 영상을 보여주며 시작했다. 학생들은 한국어를 전혀 이해 못 해도 영상을 보니 어떤 내용인지 이해가 간다고 했다. 그리고 베트남에도 비슷한 전래동화가 있어서 익숙하다고 했다. 앞에서 말한 전래동화를 이용한 한국어 교육의 장점 2번을 직접 경험했다. 다음으로는 <흥부와 놀부>의 한 장면을 보여 주며 어떤 상황인지 추측해 보게 했다. 동영상을 이미 본 후라 그런지 학생들이 예상보다 대답을 꽤 잘했다. 그 후에는 의성어, 의태어, 관용어를 예문과 그림 사진을 보여 주며 설명한 후 빈칸 채우기 활동을 했다.


<흥부와 놀부> PPT. 이미지 출처는 누리 세종학당 누리집

 

이후에는 <흥부와 놀부> 대본을 ppt로 옮긴 것을 해당 장면 그림과 같이 보여 줬다. 먼저 내가 한번 쭉 읽으며 새로운 어휘와 앞에서 배운 의성어와 의태어, 관용어를 짧게 다시 설명했다. 그 후에는 학생들이 내용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고 학생들한테 역할을 나눠 주어 대본을 보며 읽게 했다. 등장인물은 흥부와 놀부, 흥부 아내와 놀부 아내, 아이들, 제비, 도깨비인데, 내가 빌려 온 책에는 흥부와 놀부를 제외한 다른 등장인물의 대사가 별로 없어서 대본에 새로 몇 개를 추가했다. 해설은 등장인물을 맡지 않은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읽게 했다. 학생들이 대본 읽는 것에 부담을 느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적극적으로 하고 싶어 했다. 해설도 한 번 읽었던 학생들이 또 읽고 싶다고 했다. 학생들한테 스스로 연기자가 됐다고 생각하고 읽으라고 했다. 몇몇 학생은 그냥 글을 읽듯 읽었는데, 몇몇 학생은 정말 역할에 심취했다. 놀부 역할을 한 학생은 정말 놀부처럼 심술궂게 하고 흥부 역할을 맡은 학생은 놀부 부부에게 밥을 구걸할 때 애처롭게 해서 정말 재미있었다.


대본 읽기가 끝난 후에는 질문에 대답하기 활동을 통해 내용을 다시 확인하고, 장면을 보고 대사를 다시 말해보는 활동을 했다. 대사를 정확하게 말해도 되지만, 학생들이 스스로 창작해서 말해도 된다고 했는데, 정말 여러 재치 있는 대답이 나왔고 연기를 잘하는 학생들이 감정을 실어 말해서 재미있었다.



2주차 한국 음식 수업


한국 음식 수업은 학생들이 정말 원했던 수업이었다. 학생들이 원한 것은 요리 실습이었지만, 온라인 수업이라 실습이 아닌 레시피 공부를 했다. 음식 재료, 조리 방법 등 단어를 공부하고 마지막으로는 한국 음식 레시피를 공부했다. 음식 재료와 조리 방법 어휘는 세종한국어 4권, 세종한국어 회화 3권에 나온다. 학생들은 세종한국어 4권 이상을 수료했으므로 어휘는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레시피는 고추장 불고기, 떡볶이, 돼지갈비찜을 준비했다. 먼저 고추장 불고기를 같이 보며 레시피를 학습하고, 떡볶이와 돼지갈비찜은 만드는 과정 사진을 보여 주고 레시피는 학생들이 추측해서 말했다.



원래는 이렇게 레시피를 학습하고 학생들이 팀을 나눠 한국 음식 한 개를 선정해 같이 레시피를 만들어 보는 활동을 하려고 했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하지 못했다. 대신 학생들에게 음식을 직접 만들어 보는 숙제를 줬다. '한국 음식'만 하게 하려고 했지학생들이 부담을 느낄 수 있고, 하노이라면 문제없겠지만 방학이라 고향에 내려간 학생이 있으면 그 학생은 한국 음식 재료를 구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에 베트남 음식이든 빵이든 상관없다고 했다. 단, 레시피는 '한국어'로만 쓰고 제출하게 했다. 학생들은 요구르트 케이크, 스파게티, 베트남 음식인 넴잔, 비빔밥 등 다양한 음식 레시피를 보냈다.




 3주차 모시 빗자루 만들기


사실 가장 어려웠던 수업이다. 수업 준비는 어렵지 않은데, 재료가 문제였다. 문화원 세종학당에 세종학당재단에서 보내 준 '모시 빗자루 만들기 세트'가 15개 이상 있다는 것을 방학 전에 미리 확인했었다. 2022년 초까지 문화원은 코로나로 인해 외부인 출입이 안 되는 상황이었으므로, 대표 학생 한 명이 문화원에 가서 그걸 받고 다른 학생들에게 나눠 줄 예정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알고 보니 '온전한' 세트는 11개였던 것이다. 나머지에는 이미 다 만든 완성품이 들어 있었다. 모시 빗자루 만들기 키트에는 모시풀, 색면실 긴 것과 짧은 것, 빗이 들어 있어야 한다. 빗은 집에 있는 걸 쓰면 되지만, 색면실과 모시풀은 그럴 수 없지 않은가. 학생 한 명은 먼 지역에 있어서 세트를 받을 수 없다고 하고 한 명은 일이 있어서 수업을 못 듣는다고 미리 연락을 했지만, 그래도 2세트가 부족했다. 할 수 없이 다른 수업으로 바꾸겠다고 운영교원인 짱 선생님께 말씀드렸는데, 짱 선생님은 방법을 마련해 보겠다고 하셨다.


"부족한 모시풀은 다른 세트에서 조금씩 빼서 만들면 돼요. 현지에서 더 구할 수 있는지도 알아볼게요. 그리고 실은 제가 시장에 가서 살 수 있어요."

"선생님 일도 많은데 괜찮으시겠어요? 너무 고생하시는 거 같은데요."

"괜찮아요. 힘든 일 아니에요."


이렇게 짱 선생님의 수고로 모시 빗자루 만들기 수업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세트가 없었기에 네이버로 '풀집 아트 모시 빗자루 만들기 세트'를 두 개 구매했다.(만드는 방법 참고 : (1) 풀짚공예박물관 풀짚전통모시빗자루 - YouTube) 하나는 수업 전에 혼자 만들면서 사진을 찍었고, 하나는 수업 때 학생들과 같이 만들었다. 수업 때는 내가 사전에 찍은 사진을 보여 주며 설명했는데, 내가 민망하게도 학생들이 나보다 훨씬 더 잘 만들었다.


모시 빗자루 만들기 ppt
학생들이 만든 모시빗자루와 내가 만든 모시 빗자루(제일 오른쪽)


문화원 세종학당은 수업 신청을 기존에 세종학당에 등록한 학생들 중에서 선착순으로 받는다. 수업이 무료라서 그런지 인기가 많아 신청하는 학생들이 많고, 초급의 경우는 수업 최대 인원이 금방 차 버린다. 이번 특별학기 수업도 선착순으로 받았는데, 문화수업을 신청한 학생들이 아주 많아서 금방 접수가 끝났다고 한다. 학생 몇몇은 나한테 개인 메시지로 선착순에 못 들었다고 들을 수 있게 해 주면 안 되겠냐고 부탁할 정도였다. 지난 학기에 가르친 적 있는 학생들이고 성실하게 열심히 공부하는 걸 알기에 미안했지만, 규칙이 규칙인 만큼 추가로 듣게 해 줄 수 없었다.


이만큼 문화수업에 대한 기대가 높아서 수업 시작 전에 걱정을 많이 했었다. 온라인으로는 처음으로 하는 문화 수업이고, 내용도 학생들한테 너무 어렵지 않을까 싶었고 말이다. 그런데 학생들은 <흥부와 놀부> 좀 어려웠지만, 전체적으로 많이 어렵지는 않았다고 했다. 수업에 대한 만족도도 아주 높았다. 마지막 모시 빗자루 수업 후 수업을 세 번만 하는 것이 너무 아쉽다며, 다음에 또 문화수업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이제 곧 하노이에 갈 거라고, 하노이에 가면 문화원에서 다 같이 만나서 문화 수업을 하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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