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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Sep 22. 2022

선생님 베트남에 언제 오세요?

2021년 2학기 문화원

"여러분, 여행을 간 적이 있어요?"

"아니요. 여행을 간 적이 없어요. 저는 돈이 없어요. 저는... 잠시만요... (사전을 찾음)... 저는 거지예요!"


2학기에 '-(으)ㄴ 적이 있다/없다' 문법을 가르칠 때였다. 문법 설명을 한 후 학생들한테 해당 문법을 사용해서 대답하게 했는데 '황'이라는 남학생이 이렇게 말해서 빵 터다. 또 다른 학생이 웃으며 말했다.


"거짓말! 황 씨는 돈이 많아요. 한국에 갔어요."

"여행 아니에요. 일했어요. 여행은 돈 필요해요. 저는 거지예요."

"선생님, 황 씨는 거짓말 (하는) 사람이에요. 사실 돈이 많아요. 부자예요."

"와 ~ 타오 씨, 어떻게 알아요? 지금 옆에 있어요?"


줌 화면 속의 황 씨가 무섭다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자 또 다 같이 빵 터져 버렸다. 나는 황 씨가 부자라는 타오 씨의 말을 믿겠다고 했다. 다음 활동으로 학생들에게 '-(으)ㄴ 적이 있다'를 사용해서 나한테 질문해 보라고 하자 한 학생이 질문했다.


"선생님은 하노이에 온 적이 있어요?"

"네. 간 적이 있어요. 하노이는 경치도 좋고 음식도 맛있었어요. 다시 가고 싶어요. "

"오 정말요? 그럼 언제 다시 베트남에 올 거예요?"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그때, 내 말을 들은 황 씨가 불쑥 말했다.


"선생님이 하노이에 오시면 제가 맛있는 거 사 드릴 거예요!"

"정말요? 그럼 황 씨는 부자니까 하노이에서 제일 비싸고 맛있는 거 사 주세요."

"오, 선생님... 저는 거지예요. 그런데 선생님 오시면 비싸고 맛있는 거 사 드릴게요. 아... 선생님 잠깐만요. (사전을 찾음) 아! 제 전 재산! 전 재산으로 사 드릴게요."

"약속했어요! 우리 다 같이 만나요. 그리고 황 씨가 한턱 세요!"

"한턱 세요 뭐예요 선생님?"

"우리 지난 시간에 배웠어요. 다른 사람에게 음식이나 음료를 사 주는 거예요."

"아, 아 네 그럼요. 저는 한턱 요!"  


4권 반 황 씨는 이렇게 수업 시간에 항상 다른 사람을 웃게 했고, 내가 어떤 농담을 해도 재미있게 받아 줬다. 2학기에는 세종한국어 3권, 4권, 5권, 비즈니스 한국어 2 수업을 맡았는데, 4권 수업은 황 씨가 있어서 수업 시간이 항상 재미있었다. 다른 수업도 문제없이 즐겁게 했다. 다만 '베트남에 언제 오냐'는 질문을 1학기 때보다 많이 듣는 것이 좀 신경 쓰였다. 전 글에서 썼다시피 한국에 있는 게 나는 그리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계속 파견 대기 중인 건 조금 스트레스이긴 했다. 왜냐하면 나는 파견 교원이라 원칙적으로는 파견을 가야 했고, 비자 문제가 해결되면 바로 파견 준비를 해야 했는데, 이게 언제 해결될지 몰라 미래를 확실하게 생각할 수 없어서였다. 그리고 그보다 더 스트레스인 건, 학생들을 포함해서 주변 사람들이 나한테 베트남에 언제 가는 거냐고 물어보는 거였다.


"선생님은 베트남에 언제 오세요?"

"쌤, 잘 지내시죠~ 베트남 가셨어요? 네? 아직도 못 가셨다고요?"

"그래서 비자는 언제 나온대?"

"그럼 내년에 가는 거야?"

"베트남 가는 건 어떻게 됐어?"


2021년 1월부터 계속 친구, 친척 등 내가 실제로든 카톡으로든 대화하는 사람한테마다 베트남 출국과 비자 이야기를 하니, 11월이 됐을 때는 이 질문에 약간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였다. 그래서 그때쯤에 우리 집에서는 베트남 언제 가냐는 말이 금기어가 됐다.


2021년 12월, 2학기 수업이 다 끝나갈 때 드디어 계속 출국길을 막고 있던 문제가 해결되었다. 베트남 문체부에서 드디어 외국인 채용 허가를 해 준 것이다! 때마침 베트남이 2022년 초에는 해외 입국 규제를 푼다는 말도 나오고 있었다. 허가가 났다고 바로 베트남에 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연초에 비자 신청용 건강검진도 받고 졸업증명서, 경력증명서 등 비자 신청에 필요한 서류를 모두 번역 공증받아서 준비했었는데, 유효 기간이 지나서 그 모든 걸 다시 해야 했다. 서류를 준비하고 번역 공증을 받는 것만 해도 시간이 꽤 걸릴 테니만, 그래도 일단 비자를 신청할 수 있어서 마음이 설렜다.


후에 세종학당은 1년에 3학기제이고, 학기가 시작하고 끝날 때마다 개강식과 수료식을 한다. 그런데 문화원은 1년에 2학기제이고, 개강식은 1학기가 시작할 때, 수료식은 2학기가 끝날 때만 한다고 한다. 12월이 되고 수료식을 할 때가 되었다. 내가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나를 많이 도와주신 윤 선생님은 1학기가 끝나고 계약 기간이 종료되셨고, 하노이에 파견 가 계신 이 선생님은 2학기 수료식 후 계약 종료였다. 이 선생님은 문화원은 학생들도 좋고 근무 환경도 좋다면서 떠나는 것을 매우 아쉬워하셨다. 나는 후에 세종학당 때 경험이 있어서 이 선생님의 심정을 백번 이해할 수 있었다.


2021년 수료식은 역시 줌으로 진행되었다. 온라인이라 다양한 행사는 못했지만, 참가한 학생들한테 번호를 주고 번호를 추첨해서 상품을 주는 이벤트와 퀴즈 대회  해서 학생들이 좋아했다. 진행은 2학기에 하반기 파견 교원으로 새로 오신 김 선생님이 하셨다. 원래대로라면 문화원에서 수료식을 아주 크게 한다는데, 줌으로 해서 아쉬움이 컸지만 선생님들이 애써 주셨고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덕분에 만족스럽게 끝났다. 내년에는 대면으로 행사를 멋있게 하겠지. 내년이 기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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