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16일, 드디어 하노이에 첫 발을 내디뎠다! 비행기가 도착했을 때는 거의 새벽 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안 그래도 저녁 비행기인데 연착까지 되어서 늦게 도착한 것이다. 그나마 코로나의 영향으로 공항에 사람이 별로 없어 입국 수속이 빨리 끝나서 다행이었다. 2017년 다낭 공항으로 입국했을 때는 사람은 넘치는데 직원들은 너무 여유가 있어서 입국 수속만 1시간이 걸렸었는데 말이다.
나는 예약해 둔 한국문화원 근처 아도니스 호텔로 갔다. 호텔에 도착하니 거의 새벽 2시가 되어 있었다. 기다리던 하노이에 도착했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고, 피로가 쌓인 데다가 공항에서 그랩(Grab. 베트남 사람들이 대부분 이용하는 택시 호출, 배달 서비스 앱)이 잡히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탄 개인택시에서 바가지를 쓰기도 해서 이래저래 상태가 별로였다. 그런데 호텔 직원이 친절하게 맞아줘서 긴장도 풀리고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Do you have a reservation?(예약하셨어요?)"
"Vâng. Tôi đã đặt phòng rồi. Tôi tên là 최희숙. (네. 예약했어요. 제 이름은 최희숙이에요.)"
"A, Chị nói tiếng việt tốt lắm! Phát âm rất tốt! (아, 베트남어를 잘하시네요! 발음이 아주 좋아요!)"
"Cảm ơn anh.(감사해요.)"
값도 싸고 시설도 좋고 직원도 친절했던 아도니스 호텔
학생이 아닌 그냥 베트남 사람에게 베트남어로 대화하는 게 얼마나 오랜만의 일인지. 베트남에 온 게 좀 실감이 났다. 호텔 방에 들어오자마자 대충 씻고 바로 잤다. 다음 날이 일요일이라 다행이었다.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집을 구하는 일인데, 이건 문화원 운영요원 짱 선생님께서 월요일에 같이 돌아다니며 집주인과의 통역을 도와주시기로 하셨기 때문에 일요일은 완전히 스케줄이 비었다.
일요일 아침에는 호텔 직원에게 유심침을 살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을 물어보고, 거기에 가서 휴대폰을 개통했다. 나는 베트남 통신사 중에서 비엣텔(viettell)이 가장 괜찮다고 들어서 비엣텔로 사려고 했는데, 하필이면 내가 간 곳은 비엣텔을 취급하지 않는단다. 대신 모비폰(mobiphone) 상품 중 데이터 하루 2G 무료, 같은 통신사끼리 전화 통화 하루 20분 무료, 한 달 요금 5만 동(현재 기준 한국 동으로 2,900원 정도) 무료인 것이 있어서 그걸로 샀다. 후에에서는 비나폰(vinaphone)으로 한 달 십만 동에 데이터 무제한을 썼었는데, 모비폰은 무제한은 아니지만 하루에 데이터 2G를 모두 쓸 일은 없으니 꽤 좋은 것 같다.
호텔에서부터 유심칩을 살 때까지, 상대방은 영어로 말을 걸었는데 나는 계속 베트남어로 이야기했다. 한국에서부터 '하노이에 가면 베트남 사람하고 꼭 베트남어로만 이야기해야지'라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나는 후에에서 2년, 한국에서 1년 동안 인터넷으로만 베트남어를 공부했다. 인터넷으로 배우는 베트남어는 호찌민이나 하노이 말밖에 없는데 후에는 베트남에서 가장 사투리가 심한 곳이라 타 지역 사람들도 통역이 필요한 수준이어서 실전 베트남어 연습을 할 수 없었다. 내 베트남어 실력 부족으로 사람들이 내 말을 이해 못 하거나, 후에 사람들이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어도 그들의 대답을 내가 못 알아듣거나 했다. 그리고 집주인이나 청소 아주머니 등 후에 사람들은 내가 하는 말을 자꾸 틀렸다고 하는데, 사실 틀린 게 아니라 하노이 말을 한 것이었다. 내가 틀린 게 아니라고 해도 그분들은 나한테 "후에에 있으니까 후에 말을 써야지!"라고 지적해서, 후에에서도 거의 인터넷으로만 베트남어를 연습했다. 그래서 하노이에서는 실생활에서 내가 배운 베트남어를 쓰겠다고 다짐했는데, 그래도 좀 걱정이 되었다. 엄청 버벅거리지는 않을까, 듣는 사람이 하나도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면 어떡하지 싶었는데, 호텔에서도 휴대폰 매장에서도 사람들이 내 말을 다 이해하고 나를 보며 베트남어를 잘한다고 칭찬해 줘서 다행이었다. 아싸! 나 좀 자신감 가져도 되겠구나!
오후에는 하노이의 다른 세종학당 동기 파견 교원을 만나 하노이 관광을 했다. 동기 교원은 나보다 훨씬 일찍 하노이에 와서 하노이를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덕분에 딱히 정보를 찾아보지 않고도 하노이의 맛집과 관광 명소 등을 찾아갈 수 있었다. 첫날인 일요일에 먼저 간 곳은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산다는 미딩이었다. 미딩이 한국과 비슷하다고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간판이 대부분 한국어거나 한국어하고 베트남어가 같이 있었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여기 사는 게 너무 익숙해 보이는 한국인들이었다. 순간 내가 하노이에 있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후에에서는 한국 음식점이 거의 없고, 메뉴도 많지 않아 아쉬웠었는데 여기서는 그럴 일이 전혀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디자인이 유럽의 성같이 멋스러운 미딩 송다 건물을 구경하고, 근처 콩카페에도 갔다. 하노이에는 수많은 맛집과 카페가 있지만, 내가 제일 가고 싶은 곳은 후에에서 자주 갔었던 콩카페와 하이랜드커피였다. 미딩 콩카페의"빨대가 아닌 숟가락을 선택하십시오"라는한국어 안내판은 어색했지만, 맛은 추억의 그 맛이었다.
월요일에는 호안끼엠 호수를 구경했다. 호안끼엠 경치가 좋다는 말은 많이 들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정말 좋았다! 이런 곳이 우리 문화원과 가까이 있다니. 점심 먹고 여기 와서 산책할 수도 있고 퇴근 후에 잠깐 한 바퀴 돌 수도 있고, 문화원 위치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호안끼엠, 아니 하노이에서 아주 유명한 계란 커피를 먹었는데, 세상에 커피가 아주 부드러운 크림 맛이 났다. 나는 단 커피를 안 좋아해서 항상 아메리카노만 마시는데, 이건 정말 맛있었다. 후에에 소금 커피가 있다면 하노이는 계란 커피구나 싶었다.
호안끼엠 계란 커피
아침에도 호안끼엠을 구경하고 저녁에도 호안끼엠을 구경했는데, 아침에 보는 풍경과 저녁에 보는 풍경이 달랐다. 아침과 저녁은 각각 나름대로의 멋이 있는 것 같다. 아침에는 경치 좋은 곳에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곳이라면, 저녁에는 낭만을 즐길 수 있는 곳인 것 같다. 나와 동료 교원은 호수와 야시장도 구경하고 하노이의 명소인 성요셉 성당에서 사진도 찍으며 놀았다.
호안끼엠 야경과 성요셉 성당
돌아오는 길에 호텔 바로 근처에 있는 한국문화원에서 사진도 찍었다. 아, 여기가 바로 내 직장이구나, 내 직장이 된 지는 1년이 넘었지만 이제야 만나는구나. 반갑다 한국문화원, 반갑다 하노이! 파견 기간은 많이 남지 않았지만, 잘 지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