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후에 세종학당 3학기
나와 김 선생님, 학당장님은 후에(HUE)를 벗어나 동남아시아 세종학당 워크숍에 참여하러 하노이에 도착했다. 우리는 공항에서 세종학당 재단에서 보내 준 차량을 타고 호텔로 갔다. 한 30분 정도 타고 갔을까, 가면서 하노이 풍경을 가만히 구경했다. 도시지만 사실 도시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후에, 고궁을 비롯한 문화유산의 도시이기 때문에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는 후에,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는 후에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높게 솟은 건물들과 후에에 비해 세련된 듯한 도시 분위기가 이국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아파트가 우뚝 솟은 도심을 지나 베트남인들이 많이 사는 듯한 빌라와 주택들이 있는 곳을 갔을 때는 후에와 비슷해서 동질감도 느꼈다.
나는 하노이에 온 것이 정말 좋았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지만 그때만이라도 비의 도시 후에를 벗어날 수 있었고 시간이 없어 베트남에 파견된 동안 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하노이에 왔고 무엇보다도 동남아시아의 다른 나라에 파견된 동기 선생님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동기 선생님들은 2주간의 짧은 국내 교육 기간 동안만 함께 하고 다른 나라로 파견이 되거나 거리가 먼 다른 지역으로 파견이 되어서 서로 만날 기회가 없었다. 하노이나 호찌민 같이 세종학당이 많이 있는 곳에서는 서로 만나기도 하지만, 베트남 중부 도시는 후에 세종학당 하나만 있어서 다른 선생님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이번 워크숍은 동남아시아 동기 선생님들, 그리고 동기는 아니라도 다른 선생님들과 만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라서 좋았다.
워크숍이 진행되는 호텔은 하노이 그랜드 플라자였다. 5성급 호텔이고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멋있고 고급스러운 로비가 나를 반겨주는 느낌이라 신이 났다. 안내데스크에서 키를 받고 세종학당 재단 데스크에서 명찰과 기념품, 에코백을 받아 방으로 갔다.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이었다. 나와 김 선생님은 고민에 빠졌다. 하노이에서 첫 끼는 뭘 먹어야 할까? 맛있는 거, 후에에 없는 거를 먹고 싶은데 여기 근처에 맛있는 식당이 어디 있을까? 후에에서는 식당에 가면 거의 항상 베트남 식당이었다. 서울식당이라는 한국 식당도 있었지만 그나마 한국 음식과 제일 비슷한 맛이었고 반찬도 나와서 가끔 갔지 맛있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우리는 결국 새로 만난 선생님 한 분과 근처에 한국 사람이 한다는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었다. 가격은 베트남치고 좀 비쌌지만 후에에서 갓 상경한 우리에게 가격은 문제가 안 됐다. 베트남에서 한국 사람이 하는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을 수 있다니! 오랜만에 먹어 보니 짜장면은 정말 너무 맛있었다! 중국집이 있는 건물 1층에 스타벅스도 있어서 갔는데, 세상에... 커피 한 잔이 7만 동 가까이 되었다(우리나라 돈으로는 3천500원 정도). 후에에서는 커피가 아무리 비싸도 4만 동이 넘지 않았는데. 그래도 대도시까지 왔으니 비싼 커피 마셔 봐야 하지 않겠나 싶어 10만 동짜리 크리스마스 특별 음료를 마셨다. 역시, 맛은 있었다.
호텔로 돌아와 로비 카페에서 캄보디아, 태국에 파견 가신 친한 선생님들을 기다렸다. 그분들은 비행기가 밤늦게 도착해 호텔에도 아주 늦게 오셨는데, 그래도 직접 마중하고 싶어서 기다렸다.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항상 카톡으로 서로 자료도 공유하고 고민과 고충을 나누며 의지했다. 그렇게 늦게 도착하신 선생님들과 만나 짧게 인사하고 방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워크숍이 시작됐다. 첫날에는 개회식과 세종학당 운영 현황 및 사례 발표를 한 후에 운영교원과 파견 교원이 나눠서 강의를 들었다. 파견 교원은 세종학당 재단에서 개발 중인 <비즈니스 한국어> 교재 소개와 활용 방안 및 실습 강의를 들었다. 둘째 날에는 세종학당 업무 관리 시스템과 '누리 세종학당' 사이트 활용 방안에 대해 강의를 듣고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둘째 날 저녁, 세종학당 재단 임직원들과 파견 교원, 운영 요원들이 저녁 만찬을 가졌다. 우리는 레스토랑에서 베트남 코스 요리를 먹으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졌다. 만찬이 끝나고 몇몇 선생님들은 이대로 호텔에 돌아가기가 아쉽다며 하노이를 좀 돌아다니기로 했다. 시간은 이미 8시가 지나 늦은 저녁이었지만 일찍 들어가기 싫은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대로 호텔에 돌아가서 내일 아침 후에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 것은 너무 아쉬웠다. 나와 친한 선생님, 그리고 만찬 때 친해진 선생님 몇 분은 어디를 가야 후회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결국 우린 롯데호텔로 갔다. 롯데 호텔은 하노이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이었고, 제일 위층에는 '탑 오브 하노이'라는 루프탑 카페가 있었다. 베트남 파견 교원은 나밖에 없어서 레스토랑 직원에게 택시를 잡아 달라고 할 때 내가 베트남어로 부탁했는데, 부끄러운 실력이었는데도 다른 선생님들이 나보고 대단하다며 치켜세워주셔서 좀 뿌듯했다. '탑 오브 하노이'에 가니 감탄밖에 안 나왔다. 정말 하노이가 한눈에 보였는데, 야경이 서울 못지않게 멋졌다. 아니 순간 여기 서울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노이 중심을 흐르는 강이 한강과 비슷했고, 휘황찬란한 불빛이 시골에서 상경한 나에게 '이것이 도시의 야경이다!'라고 강력하게 말해 주는 것 같았다.
루프탑 카페에서 더 놀고 싶었지만 하노이 날씨는 예상보다 쌀쌀했다. 우리는 하노이 날씨가 이럴 줄 모르고 얇은 옷만 챙겨 와서 따듯한 실내로 대피해야 했다. 롯데 호텔 내부에도 카페가 있었고 우리는 거기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마지막 날, 워크숍에서 만난 선생님들과 아쉬운 인사를 하고 다시 후에로 돌아왔다. 하노이를 떠나면서 생각했다. 나중에 꼭 다시 와서 제대로 즐겨 보고 싶다고. 다시 돌아온 후에는 역시 비에 젖어 있었다. 하지만 짧게나마 하노이에서 새로운 경험을 해서인지 후에의 우기와 습기가 전처럼 싫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