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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Oct 01. 2021

베트남의 우기

2017년 후에 세종학당 3학기

2017년 3월, 베트남의 중부 도시 후에에 파견될 준비를 할 때 후에 세종학당에서 일하시는 현지인 행정 교원에게 꼭 챙겨 가야 할 물건이 있는지 물어봤다. 행정 선생님은 '전기 이불, 모기장, 얇은 패딩이나 점퍼'가 꼭 필요할 거라고 하셨다. 전기 이불이란 바로 전기장판이었다. 그런데 모기장은 이해하겠는데, 그 더운 베트남에서 전기장판과 얇은 패딩과 점퍼가 왜 필요하다는 건지 이해가 안 갔다.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여기는 3월부터 9월까지는 건기, 10월부터 2월까지는 우기인데 건기 때는 덥지만 우기 때는 기온이 15도까지 내려가고 비가 많이 와서 춥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전기장판은 가져갔지만 패딩과 점퍼는 가져가지 않았다. '혹시 추우면 거기 가서 옷을 사지'라는 생각으로 긴팔 몇 개와 얇은 카디건만 가지고 갔다.


한 달 뒤, 다낭 공항을 통해 베트남에 입국했다. 비행기에서 나오자마자 덥고 습한 공기가 내 몸을 확 감싸는 듯했다. 마치 사우나에 온 느낌이었다. 그런데 현지인의 말로는 지금이 날씨가 좋을 때란다. 이렇게 숨 쉬는 것도 답답한데 이게 좋은 날씨라니, 앞으로 남은 베트남 생활이 걱정되었다.


그런데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었다. 대체 지금이 왜 건기라는 거지? 내가 아는 건기는 비가 잘 안 오고 건조한 날씨인데, 후에는 한국의 여름철처럼 비도 자주 왔고 무엇보다 정말 정말 습했다. 건조한 날씨의 끝판왕인 몽골에서 2년 동안 살았던 나는 베트남의 날씨가 너무 낯설었다. 몽골에서는 샤워를 하고 나면 바디로션을 치덕치덕 바르고 아침저녁으로 보습에 좋다는 로션에 팩을 바르고 가습기를 하루 종일 틀어놔도 너무 건조해서 피부가 항상 말라 있었다. 이불 빨래를 하면 햇빛이 그다지 강하지 않아도 6시간 안에 다 마르고, 물에 흠뻑 적시고 대충 짠 수건을 방에 걸어 놓고 자면 그다음 날 아침에는 수건이 과자처럼 빳빳하게 말라 있었다.


그런데 베트남에서는 로션을 바르지 않아도 피부가 항상 촉촉했다. 빨래는 햇빛이 없으면 잘 마르지 않았다. 비가 올 때도 안 올 때도 숨을 쉴 때마다 습기 찬 공기가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지금이 건기라는 걸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10월우기를 경험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베트남의 건기가 내가 알던 건기가 아니었듯이 우기도 내가 알던 우기가 아니었다. 비가 그치질 않는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장대비가 우수수 쏟아지거나, 잠시 쉬어간다는 듯이 평범하게 주룩주룩 내리는 것의 반복이었다. 아, 비가 많이 와서 우기인 게 아니고 비가 안 그쳐서 우기구나.


비가 이렇게 계속 오니 배수 시설이 안 좋은 후에는 당연히 툭하면 홍수가 났다. 후에의 중심이지만 지대가 낮은 Bic C마트 근처는 툭하면 길이 잠겼다. 비가 내리면 넘친 물이 무릎까지 오는 건 예사 일이었다. 항상 Bic C 마트에서 장을 봤었는데 길이 잠기면 그쪽으로 택시가 가지를 못해서 물이 빠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래도 후에 세종학당과 우리 아파트는 지대가 높은 편이라고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게다가 바로 옆에는 흐엉 강이 있는데, 강과 땅의 높이 차이가 좀 있어서 절대로 강이 넘칠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른 아침, 행정 선생님께서 갑자기 전화하셨다.


"선생님, 괜찮아요? 아무 일 없으세요?"

"네. 저 괜찮아요. 왜요?"

"선생님 집 주변에 물이 넘쳤어요! 거기 못 다닌대요."

"네?!"


급하게 일어나서 창밖을 보니, 아주 낯선 풍경이 있었다. 아파트 앞에 평소에 보이던 차도는 보이지 않았고 배가 있었다. 먹는 배 말고 타는 배! 강이 아닌 차도에! 사람들이 그 배에 하나둘씩 타고 있었다. 강이 넘쳐 버렸고, 행정 선생님 말씀대로 아파트 앞 길은 완전 잠겨 있었다. 1층으로 내려가 보니 아파트 바로 앞 가게 아주머니가 다리를 걷고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물을 열심히 푸고 있었다. 물은 사람의 무릎 높이까지 차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길이 넘쳤을 뿐 아파트 안까지 물이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아파트를 기점으로 지대가 낮아지는 왼쪽은 상황이 나빴다. 사람의 가슴 높이까지 물이 차 있었고 아예 출입 통제를 하고 있었다. 길에 떠 있는 배는 그쪽으로 가는 배였다.


저기 작은 배가 있는 곳이 원래는 도로였다...


도저히 출근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중에 다행히 오늘 오전은 집에 있으면서 상황을 좀 보자는 학당장님의 전화를 받았다. 출근 문제는 해결이 됐지만, 이렇게 고립될 줄 모르고 집에 먹을 것과 물을 충분히 사 놓지 않은 것이 걱정되었다. 다행히 비는 오후에 좀 잠잠해졌고 물은 출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빠졌다. 왼쪽 길은 여전히 침수가 심했지만 학당으로 가는 오른쪽 길은 걸어다닐 수 있을 정도로는 빠졌다. 후에는 배수 시설이 안 좋아 물이 자주 넘쳤지만 비가 약하게 오거나 그치면 바로 물이 빠졌다. 나는 출근길을 걸어가면서 또 놀랐다. 공원이 없어졌다! 강 옆에 공원이 있었는데 강이 넘쳐 버려서 공원을 완전히 삼킨 것이다. 공원의 벤치도 공원으로 내려가는 계단도 완전히 잠겨서 안 보였다.


나는 이런 상황이 너무 낯설었고 걱정이 되었는데 후에 사람들은 전혀 아니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물을 푸는 사람들의 표정은 평온했다. 학생들도 선생님들도 이런 일은 우기 때 일상이라고 했다. 학생들이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을 보면, 물이 무릎까지 온 상황에서 해맑게 물장난을 치거나 심지어 수영을 하는 사진도 있었다. 이렇게 우기에는 지대가 조금이라도 낮은 곳에서는 집까지 물이 들어와 가족들이 합심해서 물을 푸고 1층에 있는 가구들을 2층으로 부랴부랴 옮기는 일이 흔하다고 했다. 그리고 당연히 길이 잠겨서 학당에 오지 못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선생님! 저 오늘 못 갈 것 같아요. 집 앞에 물이 허리까지 와요."

"저 집에 물이 들어와서 오늘은 수업에 못 가요. 죄송합니다."

"선생님~ 물이 많아서 오토바이를 탈 수가 없어요 ㅠㅠ"


당연히 이런 경우에는 수업에 못 오는 것을 이해해 줬다. 하지만 비로 인해 수업에 못 오는 학생들이 많다고 휴강을 하면 너무 자주 휴강을 해야 해서 학생이 두세 명밖에 못 와도 수업은 계속했다. 이런 상황에도 수업을 들으러 오는 학생들이 대단했다. 하지만 강이 넘쳐 공원을 삼킨 그날은 결국 전체 휴강을 해야 했다. 학생들이 못 오는 것도 문제였지만, 현지인 선생님들이 집 밖으로 나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선생님은 집 앞 골목에 물이 가슴까지 차 버려서 도저히 나갈 수가 없다고 했고, 어떤 선생님은 집에 들어온 물을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우기가 아닐 때의 공원. 우기 때는 벤치가 다 잠겼다.


후에의 우기는 정말... 후에라는 도시 자체가 매일매일 비에 젖어 있는 듯한, 아니 비에 빠져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끊임없이 내리는 비와 툭하면 넘치는 길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학생들의 잦은 결석으로 수업도 제대로 못하고 출퇴근이 불편했던 것은 사실 제일 큰 문제는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계속해서 쳐지는 기분이었다. 빨래는 두 달 내내 한 번도 제대로 마르지 않았다. 5일을 건조대에 널어놔도 마르지를 않아 드라이기로 말려야 했다. '물먹는 하마'와 같은 제습제를 부엌, 방 2개, 거실, 화장실에 놨고 제발 집 좀 건조해지라고 문을 꼭 닫고 에어컨을 틀어놓고 출근했는데도 전혀 소용이 없었다. 우리 집은 내가 이사 오기 전에 페인트칠과 인테리어를 모두 다시 한 집인데도 벽에 곰팡이가 드는 건 순식간이었다. 나무로 된 방문은 썩어 가는 것 같았다. 학당 벽도 곰팡이가 장악해버렸고, 학당 책상 서랍 안에 있는 종이들은 모두 물먹은 듯이 눅눅해져 있었다.


그리고 정말 추웠다. 내가 왜 한국에서 경량 패딩을 가져오지 않았을까! 우기 때 온도가 15도까지 내려간다고 해서 '에이 그게 뭐가 추워'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나를 원망했다. 계속 계속 비가 와서 체감 온도는 훨씬 낮았던 것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정말 겨울처럼 두꺼운 패딩과 코트를 입고 다녔다. 나도 패딩까지는 아니지만 결국 내 몸을 보호해 줄 웃옷을 샀다. 한국에서 가져왔으면 괜한 돈을 쓰지 않았을 텐데... 그런데 바깥보다 집 안이 추운 게 더 싫었다. 후에는 난방 시설이 전혀 없었다. 미니 히터라도 사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후에 그런 것은 없었고 하노이나 호찌민에서 살 수 있었다. 전기장판을 안 가져왔으면 큰일 날 뻔했다. 집에서는 항상 목도리를 하고 겉옷을 껴입고 항상 뜨거운 차나 커피를 마시며 덜덜 떨거나 전기장판 안에 들어가 몸을 녹였다.


그치지 않는 비, 불편함, 추위, 늘어나는 곰팡이들과 2달 가까이 있다 보니 도저히 기운이 나지 않았다. 계속해서 몸과 마음이 쳐지고 아무 이유 없이 울고 싶어지기도 했다. 하루를 비로 시작해서 비가 끝내는 느낌이었다. '여기 좀 벗어나고 싶다. 잠깐만이라도...' 이런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비의 도시 후에를 정말 잠깐이라도 벗어날 기회가 생겼다. 바로 하노이에서 2박 3일 동안 '동남아시아 세종학당 워크숍'이 열린 것이다. 파견 교원들은 워크숍에 필수로 참석해야 했다. 베트남에 있는 동안 한 번은 꼭 가 보고 싶었던 하노이에 가는 것, 워크숍 때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교원들도 만나서 쌓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 좋은 호텔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좋았지만, 나는 솔직히 후에를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는 게 제일 좋았다.


하노이에 가는 비행기를 타는 날도 역시 비가 우렁차게 쏟아졌다. 이러다가 결항이 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우리가 탄 택시는 가는 길마다 물줄기를 흩뿌렸고, 어떤 길에서는 바퀴가 반 이상이 잠기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하노이로 출발했다. 비행기 안에서도 마치 샤워기로 가장 강한 세기의 물을 뿌리는 듯한 바깥 풍경을 구경했다. 드디어 비행기가 출발하고 중부 지방을 벗어나자 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이륙하기 전과 이륙한 후 비행기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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