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국어 교원 Oct 15. 2021

베트남에서 보낸 생일, 그리고 잠시 안녕

2017년 후에 세종학당 3학기

하노이 워크숍에서 돌아오고 며칠 후, 내 생일이 왔다.  카카오톡에서는 생일 며칠 전부터 '생일인 친구'에 생일이 가까운 친구를 알려주고, 페이스북에서도 생일 당일이 되면 프로필에 오늘이 생일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사실 나는 생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괜히 생일을 티 내서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생일이 되기 며칠 전, 카카오톡과 페이스북에서 내 생일을 지울까 생각했는데 그냥 놔뒀다. 나에게 명절과 지인의 생일은 평소에 연락하고 싶었지만 아주 가까운 것이 아니라서 아무 일 없이 연락하기 뻘쭘한 지인에게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좋은 핑계이기 때문이다. 나처럼 생각하는 내 지인도 있을 수 있고, 이런 기회에 서로 안부를 전할 수 있기에 그냥 뒀다.


생일 하루 전 일요일, 감사하게도 같은 아파트에 살고 친하게 지내는 코이카 선생님이 아침부터 미역국을 끓여 주셨다.  해외에서 맞는 생일이라고 이렇게 챙겨주신 코이카 선생님께 너무나도 감사했다. 그리고 생일이라 케이크가 있어야 한다고 핫케익까지 만들어서 주셨다. 내가 만든 김치전까지 합쳐서 단순하지만 코이카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 덕분에 배부르고 따뜻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코이카 선생님이 만들어 주신 소중한 미역국


식사를 마치고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카페에 가서 여유를 즐기다가 집에 돌아와 유튜브로 재미있는 영상을 돌려 봤다. 저녁을 대충 먹고 또 컴퓨터만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광고를 하러 오거나, 아니면 수도 요금과 전기 요금 고지서를 주기 위해 이렇게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가끔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혼자 있을 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면 항상 그냥 무시한다. 몽골에 살 때부터 철저하게 지키던 수칙이었다. 고지서를 주러 온 사람도 내가 계속 문을 열지 않으면 그냥 문에 고지서를 끼어 놓고 간다. 그날도 문을 몇 번 두들기든 그냥 무시하고 컴퓨터를 봤다. 그런데 전화가 왔다. 후에 세종학당에서 2년 넘게 한 학기도 빠짐없이 공부하고, 행사가 있을 때는 부탁하지 않아도 아침 일찍부터 와서 자발적으로 봉사활동을 해서 '후에 세종학당 정회원'이라고 불리는 멤버들이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었다.


"선생님 지금 어디 계세요?"

"집에 있는데 왜요?"

"선생님 저희 지금 선생님 집 앞에 왔어요."


응? 이 주말에 갑자기 왜? 난 정말 몰라서 의아해하며 문을 열었다. 그런데 후에 세종학당 정회원 멤버들 모두가 집 앞에 와 있었다. 생일 초를 켠 초콜릿 케이크를 들고 환하게 웃으며 말이다. 깜짝 놀라서 어벙벙하게 있는데 학생들이 노래를 부르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 겨울에~ 태어난~ 아름다운 당신은~ 눈처럼~ 깨끗한~ 나만의 당신~"


수지의 <겨울 아이>라는 곡이었다. 감동이 몰려와 살짝 눈물이 나왔다. 학생들이 내 생일을 챙겨 줘도 수업 시간이나 페이스북으로 축하 인사만 할 줄 알았지, 집까지 찾아와 이런 깜짝 이벤트를 하며 생일 축하를 해 줄 줄은 몰랐다. 심지어 이 학생들은 지금 내가 가르치는 반 학생들도 아니었다. 어쩐지 낮에 나한테 "선생님 오늘 계속 집에 계실 거예요?"라고 문자를 보내서 "집에 있을 건데 왜요?"라고 했을 때 답장이 없더라니... 문 두드리는 소리를 계속 무시한 게 너무 미안해졌다.


깜짝 생일 파티. 얼굴은 마음에 안 들어서 가림...


학생들의 축하를 받으며 촛불을 끄고 우리는 맛있게 케이크를 먹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집에 주스나 간식거리 좀 챙겨 놓는 건데, 꼭 필요한 것들만 사다 놓는 습관 때문에 학생들에게 줄 게 없어서 미안했다. 이렇게 학생들 덕분에 생일 전날을 행복하게 보냈다.


그런데 그건 시작이었다. 생일 당일이 되자 페이스북으로 학생들의 축하 인사가 쏟아졌다. 지금 가르치는 학생들부터 지난 학기에 가르쳤었던 학생들까지. 생일 축하를 이렇게나 많이 받아 본 적은 없어서 인기 스타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월요일 저녁에는 2권 반 수업이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에게 "안녕히 가세요~"인사를 했는데, 학생들이 좀 이상했다. 몇몇 학생들은 눈치를 보며 교실에서 미적거리고 몇몇 학생들은 어색하게 교실을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나간 학생들이 또 케이크에 초를 켜서 들어왔다!


"선생님~ 생일 축하드립니다! 베트남에서 생일을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나는 학생들에게 케이크를 같이 먹자고 제안했다. 같이 나눠 먹고 싶은 것도 이유였지만 사실 어제 받은 케이크도 남아서 나 혼자 먹기에는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평소에 초콜릿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서 그런지 또 초콜릿 케이크다. 무엇보다 고마운 선물을 해 준 학생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싶었다. 우리는 후에에서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식당으로 가서 맛있게 저녁 식사를 했다. 사준다고 할 때는 아무 말 없던 학생들이 계산할 때가 되니 나는 생일 당사자이기 때문에 돈을 내면 안 된다며 나를 말렸지만 간신히 내 돈으로 계산을 했다.


학생들이 준 케이크와 식당에서 찍은 단체 사진.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각각 다른 반 학생들의 축하 세례가 이어졌고 축하 편지도 받았다. 다행히 케이크는 아니었지만 어떤 반은 학생들이 돈을 모아서 선물도 사 줬다. 예쁘고 세련된 스카프였다.아주 비싸고 고급진 선물은 아니지만 학생들에게 선물을 받는 것은 부담이 되었다. 내가 부담스러워하는 듯하자 학생들이 "선생님! 이거 싸요! 안 비싸요. 우리 같이 샀어요. 그래서 괜찮아요."라고 연신 말했다. 학생들이 돈을 모아 고심해서 산 선물을 돌려 주낼 수는 없어서 선물을 받고 대신 카페에서 음료를 사 줬다.


나는 항상 내가 부족한 선생님이라고 생각했고, 미숙함 점이 많아 학생들에게 미안한 적이 많았다. 내가 주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받은 느낌이다. 나는 전생에 무슨 덕을 쌓았길래 주변에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많을까?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항상 좋은 학생들만 만났던 것도 아니고, 좋은 일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학생 때문에 "정말 내가 이렇게까지 해외에서 한국어를 가르쳐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행복한 기억이 안 좋은 기억을 항상 누르는 느낌이다. 이렇게 학생들과 따뜻한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은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고 선물이다.


이제 3학기도 끝났고 1년을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파견 교원들은 연말이 되면 비자 연장 겸 재교육을 들으러 한국으로 귀국해야 한다. 나도 12월 중순에 한국으로 귀국하는 비행기를 탔다. 최대한 빨리 다시 올 수 있기를 바라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