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국어 교원 Nov 28. 2021

일시 귀국

2017년 후에 세종학당 마무리

3학기를 마치고 2주 후인 12월 중순, 나는 베트남으로 간 지 9개월 만에 한국으로 왔다. 내 비자는 1년짜리였는데, 연장을 하려면 한국으로 왔다 가야 했기 때문이다. 일시 귀국이었고 내년 초에 1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다시 베트남으로 가야 했다. 약 3개월 동안 비워야 하는 집이 신경 쓰였는데, 다행히 집주인이 3개월 동안 단기 여행객만 받고 다른 사람에게 임차하지 않겠다고 했다. 집에 있는 짐들은 후에 세종학당 교실에 보관했다.


한국에 오자마자 한 일은 내과에 가는 것이었다. 11월부터 이상하게 소화가 잘 안 되고 위산이 계속 올라와서 힘들었다. 배고픔도 느끼고 밥을 먹을 때도 잘 먹었는데, 밥을 먹고 나서 위산이 올라오는 것 때문에 힘들었다. 심지어 물을 마셔도 그랬다. 베트남에서는 건강이 걱정돼도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을 수가 없었다. 말이 안 통하는 건 둘째치고 후에의 병원 시설은 후에 사람들도 꺼릴 만큼 안 좋으니까. 게다가 제대로 원인을 알려면 위내시경 검사를 해야 한다는데, 아무리 힘들어도 후에에서 내시경 검사를 하기는 싫었다.


아픈 것을 참고는 있었지만 솔직히 너무 무서웠다. 살면서 이런 증상은 처음 겪었다. 게다가 한 달 넘게 나아지지 않고 계속되고 있었다. 검색해보니 이 증상은 역류성 식도염부터 위암까지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고춧가루를 한 스푼 더 넣은 매운 라면, 후에의 대표적인 음식이자 매운 쌀국수인 분보 후에에 매운 고추 양념 추가, 튀긴 음식과 기름진 빵, 베트남 커피 하루에 두세 잔 같이 자극적인 음식들만 먹어서 생긴 역류성 식도염일 확률이 높았다. 쌓인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만 푼 탓이었다. 하지만 몽골에서도 이렇게 먹었지만 이런 증상은 없었는데... 그리고 아무것도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보니 가장 최악의 경우인 위암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계속 들어 무서웠다. 게다가 올라오는 위산과 소화불량 때문에 잠도 잘 못 자고, 먹는 것이 힘들어지고,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풀지를 못하니 몸도 마음도 조금 피폐해졌다. 양배추가 역류성 식도염에 좋다고 해서 저녁마다 양배추를 삶아 다른 반찬 없이 쌈장하고만 같이 밥에 싸 먹었는데 그렇게 먹으니 좀 나아지는 것 같다가도 커피 한 잔만 마시면 다시 위산이 역류하곤 했다.


그래서 귀국하고 최대한 빠른 날짜로 위내시경 예약을 했다. 검사 결과는 다행히 위염과 역류성 식도염이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위염의 정도가 좀 심하다고 했다. 내가 사진으로 봐도 좀 그랬다. 선생님은 위험한 것은 아니지만 조심은 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약은 처방해 주셨지만, 이런 것은 약보다는 음식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식습관을 바꾸라고 했다. 특히 커피를 끊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걸 끊으면 삶의 즐거움이 없어져 버리는데 어떻게 하라고... 끊지는 못하겠지만 건강을 위해서 줄이기로 했다. 몽골에서도 2년 동안 이렇게 먹고 잘 살았는데 지금 문제가 터지다니... 나이를 먹은 탓인 듯했다. 20대 중반과 20대 후반은 같은 20대라도 다르구나. 아니, 몽골에서부터 문제였던 식습관이 쌓이고 쌓여 지금 터진 건가? 어쨌든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약도 먹고 식사 때마다 양배추와 샐러드를 좀 먹어서 위염과 역류성 식도염이 괜찮아지니 바로 베트남에서 참고 참은 식욕이 터졌다. 한국은 맛집의 천국이었다. 베트남에서 SNS로 매일매일 업데이트되는 맛집을 보며 얼마나 입맛을 다셨는가! 베트남에서 못 먹고 산 건 아니지만, 음식이 너무 한정적이었다. 매일 베트남 음식을 먹고, 한국 음식이라 봤자 집에서 양배추쌈을 먹거나 한국식 편의점인 K-MART에서 산 한국 라면과 만두 혹은 한국 식당에서 제육 볶음밥을 주문해서 먹는 정도였다. 매운 치즈 등갈비, 치즈 폭탄 떡볶이와 닭갈비, 황금올리브 치킨, 슈프림 양념 치킨, 아보카도 연어 덮밥, 새우나 스테이크가 잔뜩 올라간 피자, 무엇보다 한국에 있을 때 하루에 한 끼는 꼭 빵으로 먹을 정도로 빵순이인 나를 눈 돌아가게 하는 온갖 아름다운 빵들... 후에에도 빵집이 있기는 하지만 종류도 너무 적었고 한국보다 맛이 없고 기름졌다. 카페에서도 한국에서 파는 것과 같은 조각 케이크를 팔지 않았다. 그동안 얼마나 빵과 케이크를 참았는지! 역류성 식도염과 위염이 괜찮아지자마자 정말 그동안 참아 왔던 식욕을 마음껏 방출했다. 이러다가 또 위산이 올라오곤 했지만... 철없게도 의사 선생님이 위험한 단계는 아니라고 했으니 지금은 이렇게 먹어도 된다고 생각해서 그냥 먹었다. 오랜만에 맛보는 치즈와 고기와 기름의 향연, 카페에 널려 있는 아름답고 달콤한 디저트, 눈과 입이 모두 호강하는 새롭고 다양한 메뉴들 덕분에 스트레스는 버리고 살을 얻었다.


이것보다 더 많이 먹었지만... 먹는 게 바빠서 사진을 별로 안 찍었다.


한국에 왔다고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수업을 하지 않을 때도 월급을 받는 직원이었으므로 수업이 없어도 일을 해야 했다. 재단으로 출퇴근을 해야 했는데, 세종학당재단은 서울에 있지만 우리 집은 청주... 집에서 출퇴근을 하려면 최소한 새벽 5시 반에는 일어나야 했고 퇴근하고 집에 가면 빨리 가도 9시 가까이 되었다. 이런 스케줄로 일하는 것은 전에 다른 일을 할 때 해 봤었는데, 도저히 못할 일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냥 게스트하우스를 2주 예약했다. 2주 후에는 그동안 쌓인 휴가를 모두 쓰고, 그다음 출근 문제는 그때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재단 근무를 시작했다. 나도 세종학당재단 직원이기는 하지만 다른 나라로 파견 가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이지 재단의 사무일을 하는 것은 아니었고, 재단은 면접 볼 때와 교육받을 때 강의실에만 갔었지 내부 사무 공간에는 가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출근을 하기 전부터 긴장도 되고 걱정도 많이 되었다. 어떤 업무를 하게 될지, 잘 못해서 눈치 보지는 않을지, 동기이자 나와 같이 후에 세종학당에 일하는 김 선생님과 같이 재단 근무를 하니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그 외의 재단 직원 분들을 잘 아는 것이 아니라 소외되고 기죽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해 보니 괜한 걱정을 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일로만 소통했던 담당 주임님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셨고 재단 출근이 낯선 우리를 배려해 주셨다. 업무도 낯선 업무가 아니라 한국어 교원들이 할 수 있는 업무가 배정되었다. 또 우리보다 먼저 재단 근무를 시작하신 파견 교원들이 계셨다. 그분들과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시며 서로 그동안 쌓여 왔던 이야기도 풀었다. 해외 파견 교원으로 일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종류의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 어려움 때문에 힘들 때 무엇보다 힘이 되는 것은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언을 해 줄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냥 어려움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에게 털어놓는 자체가 참 큰 힘이 되는 것 같다. 재단에서 근무하며 좋았던 점은 다른 파견 교원 분들과 직접 만나서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점인 것 같다.


2주간의 짧은 근무를 끝내고 고향에 돌아와 가족들과 2017년 연말을 보냈다. 코이카 단원이었을 때는 두 번의 연말을 모두 몽골에서 보냈는데, 이번에는 베트남 파견 교원 신분이면서도 연말을 한국에서 가족들과 같이 보낼 수 있어 좋았다. 2018년에는 또 어떤 일들을 겪게 될까, 똑같은 곳에서 지내며 일을 하니 올해보다는 더 능숙하게 지낼 수 있겠지. 올해보다는 더 행복한 2018년을 맞기를 바라며 연말을 보냈다.


매거진의 이전글 베트남에서 보낸 생일, 그리고 잠시 안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