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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Oct 11. 2022

드디어 만났네요

2022년 문화원 세종학당 1학기

하노이 도착 둘째 날, 월요일 점심에는 집을 보러 다녔다. 나와 같이 온 교원들은 다들 한국에 있을 때 한국인이 운영하는 하노이 내 부동산이나 지인을 통해서 집을 구했지만 나는 하노이에 와서 직접 구했다. 나는 무조건 '집은 직장에 걸어 다닐 수 있는 곳에' 구하고 싶었는데, 한국문화원이 있는 호안끼엠 구는 아파트도 거의 없고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 아니라서 한국인 부동산에 정보가 없었다. 그리고 정보가 있더라도 나는 집은 직접 돌아다녀보고 구해야 한다는 주의라서, 일단 호텔을 5박 6일 잡고 충분히 집을 보러 다니기로 했다.


한국에 있을 때 베트남 부동산 사이트에서 문화원 근처 스튜디오 룸, 서비스 아파트를 알아봤다. 문화원 운영요원 짱 선생님이 너무 감사하게도 집주인과 약속을 잡아 주겠다고 하고 집을 보러 같이 가 주신다고 해서, 가격 대비 괜찮은 방 세 개를 고르고 월요일에 한꺼번에 보러 가기로 했다. 월요일 아침에 동기 교원과 호안끼엠을 잠깐 다녀오고 호텔로 돌아와 짱 선생님을 만났다. 그동안 카톡으로만 서로 엄청 이야기하고, 줌 회의 때만 봤었기 때문에 짱 선생님을 보는 게 약간 설렜다.


"선생니임~ 너무 반가워요. 우리 드디어 만났네요."

"선생님!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반가워요~~!"


우리는 차를 타고 집을 보러 다녔다. 첫 번째 집은 문화원과 아주 가까웠으나 시설이 가격 대비 별로였고 밤에 퇴근하고 오는 길이 무서울 것 같았다. 그리고 빨래 건조대가 베란다나 발코니도 아닌 추가로 설치된 외부 공간에 있는데, 발을 디딜 수 없고 막대기를 이용해야 해서 빨래를 널고 걷을 때 불편할 것 같았다. 두 번째 집은 시설은 좋았으나 혼자 살기에는 너무 넓었고, 마찬가지로 주변 치안이 불안했다. 세 번째로 보려고 한 집은 이미 다른 사람이 임차했다고 했다. 하지만 걱정 없었다. 전에 문화원 파견 교원이었고 지금은 다른 세종학당으로 파견 가신 선생님이 추천해 주신 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선생님께서 문화원 근무 시절 사시던 곳인데, 집주인이 친절하고 시설도 좋다고 했다. 집주인을 만나고 집 안에 들어가자마자 딱 느낌이 왔다. '여기다!'


5층짜리 서비스 아파트인데 집주인은 첫인상부터 좋은 분이라는 느낌이 확 들었고, 방도 원룸이었는데 혼자 살기에 딱 좋아 보였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옥상과 안전성이었다. 옥상에 올라가니, 주변에 높은 건물이 별로 없어서 시야가 탁 트여 보였고, 유일하게 높은 건물이 위풍당당하고 웅장해서 멋을 더했다. 옥상은 마치 작은 카페처럼 예쁘게 꾸며 놨고, 옆에는 작아서 혼자만 사용할 수 있는 정도지만 수영장도 있었다. 그리고 1층에 관리 사무실이 있고 저녁부터 아침까지 근무하시는 경비 아저씨도 계셔서 문제가 있을 때 바로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고, 빌라 입구에 지문을 찍고 출입하는 구조라 안전 보장도 되었다. 게다가 집주인이 외국인을 주로 받아서 외국인인 내가 튀지도 않아 더 안전했고 말이다. 딱 하나, 개인 세탁기가 없고 공용 세탁기를 1주일에 두 번만 이용할 수 있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그 외에 다른 것은 모두 만 점이었다! 아, 심지어 월세도 그전에 본 두 집보다 저렴했다.


그 자리에서 '오케이!'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집은 아주아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니 오늘 저녁까지 생각해 본다고 했다. 혹시나 호텔로 돌아가서 다시 생각하면, 집을 볼 때는 생각 못했던 단점이 생각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와서 다시 생각해 봐도 역시나 마음에 들어서, 바로 집주인에게 계약하겠다고 했다. 정말 마음이 편했다. 후에에서는 집을 구하는 게 어려워서 며칠이나 발품을 팔았고, 한 달 동안 호텔 살이를 해야 했었는데 여기서는 하루만에 끝났다! 집을 소개해 준 동료 교원, 집주인들에게 통역도 해 주시고 내가 깜빡하고 묻지 않은 것들도 꼼꼼하게 물어봐 주신 짱 선생님, 차를 운전해 주신 문화원 실무관님, 시간을 내서 나와 같이 집을 보러 가 주고 하노이 이곳저곳을 소개해 준 동기 교원에게 정말 감사했다.


화요일에는 김 선생님과 같이 첫 출근을 했다. 책상 위에 짱 선생님이 준비한 '최 선생님 환영합니다!'라는 종이 팻말이 나를 반겼다. 나는 그걸 계약이 끝날 때까지 가지고 있겠다고 했다. 문화원을 둘러보고 원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직원들과도 짧게 인사를 했다. 문화원 시설은 정말 좋아 보였다. 여기가 내가 일할 곳이라니! 그리고 세종학당 사무실과 교실은 문화원 본관과 별개로 있어 더 좋았다. 저녁에는 사무실에서 온라인 수업을 했다. 하노이에 왔고 베트남은 이제 코로나를 거의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지만, 그래도 아직은 온라인 수업을 해야 했다. 학생들은 빨리 대면 수업을 하기를 원했고, 나와 김 선생님도 그랬다. 1학기 이내에 대면 수업을 하되, 코로나에 걸린 학생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 코로나 대처 방안은 차차 이야기하기로 했다.


문화원 리셉션, 도서실과 도서관
문화원 갤러리 겸 북카페
세종학당 교실과 문화원 마당


첫 주는 이사도 하고 살림살이 장만도 하느라 아주 정신없었다. 집 근처에 큰 마트가 없어 하노이에서 제일 큰 쇼핑몰이라는 이온몰(Aeon Mall)에도 가고 롯데센터도 가서 필요한 것을 샀다. 쇼핑하러 다니면서, 정말 하노이는 없는 게 없는 도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후에와 정말 다르다. 이사 첫날에는 롯데마트에서 산 과일 세트를 먹었다. 하노이에 오면 과일로 식사를 자주 하겠다고 다짐했는데, 마침 딱 먹기 편하게 잘라진 세트가 있어 좋았다. 하지만 집에 와서 먹으며 생각이 바뀌었다. 과일은 이렇게 잘라진 거 사 먹지 말고 내가 깎고 잘라먹자... 미리 잘라진 건 맛없고 안 신선했다.


이건 맛없었다. 하지만 나중에 내가 직접 잘라 먹은 과일들은 정말 맛있었고 신선했다.


당장 필요한 건 직접 사러 다니고, 그다음부터 장은 스피드 엘(Speed L)이라는 롯데마트 배달앱을 이용해서 봤다. 한국인들은 케이마트(K-MART) 배달앱을 이용한다고 하던데, 내가 사는 지역은 한인 밀집 지역이 아니라 배달이 안 되었다. 스피드 엘은 편하고 좋지만 딱 하나, 배달 시간이 마음에 안 든다. 배달 주문을 하면 받는 시간을 내가 정할 수 있는데, 나는 분명 오후 4시에 받겠다고 주문하고 밖에 나갔는데 배달원한테 지금 문 앞인데 어디냐고 전화가 오거나, 분명히 다음 날 받는 걸로 주문했는데 직원한테 혹시 오늘 받을 수 있냐고 전화가 오거나, 오후 11~12시에 받는 걸로 주문했는데 내가 일어나기도 전인 9시 반에 지금 도착했다고 하거나... 이럴 거면 주문할 때 배달 희망 시간은 왜 입력하라고 하는 걸까. 그래서 몇 번 경험하고 나서는 그냥 토요일이나 일요일 아침 10~11시를 희망 시간으로 입력하고 9시부터 대기를 탄다.


내가 사는 빌라는 세탁기가 공용이고, 세탁물을 1층 세탁기 위에 갖다 놓으면 청소 직원이 세탁기를 돌리고 옥상에서 건조한 후 문 앞에 갖다 준다. 다른 옷은 그렇게 해도 되지만 나는 속옷을 옥상에 다 같이 건조하는 게 싫어서 베트남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쇼핑몰인 소피(Shopee) 앱에서 미니 세탁기를 샀다. 세탁기 성능도 좋고, 집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속옷 빨래 문제가 해결되니 마음이 편했다.


아주 잘 쓰고 있는 미니 세탁기


아무튼 이렇게 첫 주를 바쁘게 보내고 일요일에는 김 선생님과 같이 드디어 학생들을 처음으로 만났다! 2021년 2학기에 내가 4권을 가르쳤고 2022년 1학기에는 김 선생님께 5권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다. 수업 분위기를 항상 재미있게 해 준 황 씨가 있는 반이다. 황 씨는 나한테 맛있는 걸 사 주기로 약속했다며 약속을 지키겠다고 했다. 근데 정말로 맛있고 가격대가 있어 보이는 식당으로 갔다. 학생들은 후에에서 살았던 나를 위해 후에 음식을 시켜 주었다. 1년 넘게 온라인으로만 보던 학생들을 직접 보니 반갑기도 하면서 싱숭생숭하기도 했다. 작년에 이 선생님이 "학생들 얼굴 실제로 보면 많이 다를 거예요."라고 하셨었는데, 정말 그랬다. 1년 내내 가르쳤는데 못 알아본 학생도 있었다. 학생들이 보는 나도 그렇게 달라 보였겠지.


"선생님, 컴퓨터로 본 것보다 훨씬 예뻐요!"

"거짓말이죠? 그래도 고마워요."

"아니에요. 진짜, 진짜!"



하하. 역시 우리 학생들은 모두 착하다. 처음으로 만난 학생들과는 식사는 전혀 어색하지 않고 재미있었다. 식사 후에 나도 돈을 내려고 했으나 학생들이 극구 말렸다. 혹시 정말로 황 씨가 다 냈을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학생들끼리 돈을 모았다고 한다. 대신 나와 김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음료를 사 줬다. 이렇게 학생들과 모여 노니, 코로나19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 나서 좋았다. 대면 수업을 시작하면 이런 만남이 더 많아지겠지. 4월은 이렇게 정말 바쁘고 정신없었지만 즐겁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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