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베트남 입국이 확실해졌을 때 후에 세종학당 운영요원 린짱 선생님이 카톡을 보냈다.
"쌤, 후에는 언제 오실 거예요?"
"4월 30일부터 5월 3일까지 베트남 연휴니까 그때 가려고요. 그런데 4월 30일에는 수업이 있어서 5월 1일에 가려고 해요."
"그럼 제가 그때로 왕복 비행기표 예매할게요. 나중에 예매하면 비싸거든요."
"어, 정말요? 안 그래도 되는데... 후에 가면 그냥 맛있는 거 사 주세요. 비행기표 너무 비싼 선물이에요."
"아니에요. 제가 예전에 쌤 대학원 졸업 선물 사 준다고 했는데 졸업식에 못 가서 후에 비행기표 사 준다고 약속했잖아요~ 약속 지켜야죠. 그리고 맛있는 거는 떰안 선생님이 사 주신대요!"
린짱 선생님은 바로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그렇게 나는 하노이로 출국하는 비행기표를 사기도 전에 하노이-후에 비행기표부터 사게 되었다.
하노이에 도착한 후 집을 구하고 필요한 것을 사고 학생들도 만나고 주변 맛집도 돌아다니고 바쁘게 지내다 보니 어느새 5월이 훌쩍 가까워졌다. 4월 말부터 후에에 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3년이 조금 넘는, 햇수로 따지면 4년 만의 방문이었다. 지난 4년 동안 후에는 어떻게 변했을까? 내가 항상 걷던 레 러이 거리, 우리 집 주변, 후에 세종학당은 그대로일까? 린짱 쌤이랑 늉 쌤하고는 가끔 카톡이나 화상 통화를 했었고, 다른 선생님하고도 SNS로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얼굴 보고 말하면 좀 어색하지는 않을까? 그래도 빨리 보고 싶다! 4월 30일이 되자 가슴이 쿵쾅쿵쾅 했다. 하늘도 나에게 공감했는지 같이 쿵쾅쿵쾅 했다. 번쩍! 우르릉 쾅! 쿵콰앙! 쏴아아아! ... 갑작스러운 태풍에 걱정이 돼서 잠이 잘 안 왔다.
'날씨가 이래서 비행기가 취소되면 어떻게 하지'
겨우 잠들었는데 천둥소리와 휘몰아치는 비바람 소리에 중간에 깼다. 깬 김에 화장실에 갔는데 엄지손가락만 한 바퀴벌레를 만났다. 이런 젠장. 이 집에 와서 처음으로 만난 바퀴벌레였다. 후에에서는 바퀴벌레가 1주일에 한 번은 집에 놀러 왔었기 때문에 많이 놀라지는 않았지만, 태풍도 부는 데다가 집에서 바퀴벌레도 봐서 마음이 더 심란해졌다. 그렇게 자는 듯 마는 듯 선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 공항으로 부랴부랴 갔다. 전날처럼 요란하게는 아니지만 비가 계속 오고 있어서 늦게 도착할까 봐 서둘러 간 건데 괜히 서둘러 갔다. 잦은 연착으로 유명한 베트남 저가항공 비엣젯(Viet Jet)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이번에도 연착이 된 것이다.
"쌤, 저 연착돼서 좀 늦어요!"
"네. 출발하면 알려 주세요. 김찌하고 같이 공항에 마중 나갈게요. 쌤 너무 보고 싶어요."
드디어 후에행 비행기를 탔다. 베트남 연휴라 그런지 비행기에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내 마음도 설렘으로 꽉 찼다. 후에 공항에 도착하고 게이트를 나가자 바로 린짱 쌤과 김찌가 보였다. 우리는 서로를 보자마자 안았다. 근데 린짱 쌤이 울기 시작했다. 나도 살짝 눈시울이 붉어졌다. 2018년 12월에 다낭 공항에서 작별 인사를 할 때와 비슷했다. 그때도 린짱 쌤이 울어서 나도 울었는데...
"왜 울어요. 쌤이 우니까 저도 눈물 나오잖아요."
"아 진짜 ... 안 울려고 했는데..."
"울어 줘서 고마워요. 감동이에요. 이거 사진 찍어야지!"
"선생님 나빠요!"
감동적인 재회와 동시에 놀릴 거리가 생겨서 즐거웠다. 점심으로 뭘 먹고 싶냐는 질문에 나는 바로 후에 음식이라고 말했다. 정말 후에 음식이 그리웠다. 하노이에서도 분보 후에나 반쎄오 같은 후에 음식은 먹어 봤고 그것도 맛있긴 했지만, 후에에서 먹은 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후에 음식은 후에에서 먹어야 한다는 베트남 사람들의 말을 실감했다. 호텔에 짐을 풀고 나서 바로 식당으로 가 후에의 특산물인 반록(Bánh lọc), 반남(Bánh nậm), 반 베오(bánh bèo)를 먹었다. 정말 정말 맛있었다. 역시 베트남 음식은 후에이고 후에 음식은 베트남 최고인 것 같다. 김찌와 린짱 쌤은 나를 위해 엄청 많이 시켜 주었고, 나는 고마워서가 아니라 정말 맛있어서 다 먹었다.
후에에 도착해서 바로 먹은 음식
점심을 먹고 나서는 바로 후에의 명물, 소금 커피(cà phê muối) 집으로 갔다. 후에 세종학당 근무 시절, 항상 쓰디쓴 아메리카노만 좋아하던 내가, 달아도 맛있어서 한 번 시키면 두 잔을 시켰던 소금 커피! 이번에도 역시 두 잔을 마셨다. 맛은 역시 내가 기억하는 그 맛이었다. 하노이에도 카페에서 가끔 소금 커피를 마신 적은 있는데, 후에의 그 맛과는 확연히 달랐다. 물론 후에 소금 커피가 더 맛있고, 값도 2만 동으로(한국 돈으로는 1,100원 정도) 아주 싸다.
내 사랑 소금 커피
소금 커피를 마신 후에는 린짱 쌤의 오토바이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먼저 후에 세종학당을 보고 싶었지만 인사를 드리고 싶었던 경비 아저씨가 다음 날 출근하신다고 해서 세종학당 방문은 다음 날로 미뤘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후에의 경치를 구경하며 감상에 젖었다. 후에는 변했지만 그대로였다. 전보다 높은 건물도 조금 더 많이 생겼고 길도 더 정비된 것 같고, 내가 알던 가게들의 이름도 바뀌고 신한 은행도 들어왔다. 하지만 후에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분위기는 그대로였다. 특히 고궁이 있는 구시가지를 지날 때 더 감상에 빠졌다. 멋들어진 나무와 낡았지만 고풍스러운 성벽들이 어울린 경치, 그리고 4~5년 전 학생들의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면서 느낌 감정들과 그때의 추억들이 영화 필름처럼 머릿속에 펼쳐졌다.
호텔로 돌아와 좀 쉬다가 옛날 나의 집으로 갔다. 거기에는 새로운 파견 교원 선생님이 살고 계시는데, 감사하게도 내가 후에로 다시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살던 곳이 그리우실 텐데 집에 오고 싶으면 오시라고 초대를 해 주셨다. 집 내부 인테리어는 좀 바뀌었지만 집에서 보는 바깥 경치는 그대로였다. 떰안 선생님도 곧 오셨다. 떰안 선생님은 내가 후에 세종학당에 파견됐을 때 현지 교원 겸 운영요원이셨는데, 몇 달 안 돼서 한국으로 유학을 가셨다. 그래도 우리는 카톡으로 자주 이야기했고 내가 논문 쓸 때 떰안 선생님 도움을 많이 받았었다. 떰안 선생님은 유학을 끝내고 돌아와서 다시 운영 교원 겸 교원으로 일하고 계셨다. 선생님은 5년 만에 보는 것이어서 더 반가웠다. 우리는 다 같이 저녁으로 껌헨(cơm hến)을 먹고 여행자 거리에 가서 맥주도 마시며 놀았다.
후에 식 비빔밥, 껌헨.
다음 날에는 린짱 쌤과 아침에 후에 세종학당 근처 분보 후에(bún bò Huế) 맛집에서 분보 후에를 먹고 학당으로 갔다. 아침에 가서 그런지 학당으로 가는 게 출근길 느낌이 났다. 입구에서 경비 아저씨가 언제나 그랬듯 사람 좋은 미소로 나를 반겨 주셨다. 그리고 내가 날씬해졌고 베트남어 실력이 많이 늘었다며 칭찬해 주셨다. 그리고 드디어 다시 만난 후에 세종학당! 간판은 바뀌었지만 안은 거의 그대로였다 심지어 내가 사용했던 실내화와 오렌지 모양 방석도 그대로 있었다. 우리는 사무실에서 예전처럼 소금 커피도 1인당 두 개 시켜 먹고 교실에서 수업 놀이(?)도 했다.
"짱 씨! 숙제했어요?"
"아니요, 바빠서 안 했어요!"
"아무리 바빠도 숙제는 해야죠. 지난 시간에 우리 뭐 배웠죠?"
"몰라요 선생님~"
후에 세종학당 교실과 사무실. 온라인 수업만 하고 있어 교실 책걸상을 모두 치워 논 것이 씁쓸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재미있을까. 이 시간만큼은 나는 4년 전 후에 세종학당 파견 교원일 때로 돌아갈 수 있었다. 오후에는 예전에 자주 점심을 먹던 학당 근처 식당으로 갔다. 원래 분 틱 느엉(bún thịt nướng)과 넴 루이(nem lụi), 맛집이었고 원래도 좀 넓은 편이었는데 돈을 많이 벌었는지 식당을 엄청 확장했다. 이곳에서 동기 김 선생님과 같이 점심을 먹곤 했고, 집주인도 저녁을 사 줄때 이곳으로 나를 데려오기도 했다. 점심을 먹고 나는 호텔로 돌아가고 린짱은 내가 쓴 <우리는 함께 자란다>를 가지러 집에 갔다. 책에 사인을 받기 위해서였다. 린짱과 김찌는 역시 내가 가르친 학생이자 친한 친구인 녓칸하고 같이 호텔로 다시 왔는데, 내가 좋아하는 반짱쯩(bánh tráng trứng)을 사 가지고 호텔로 왔다. 나는 <우리는 함께 자란다>에 편지를 썼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돼도, 우리 우정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요.'
우리는 서로를 조금 더 편하게 부르기로 했다. 린짱은 나를 '언니'라고 부르고 나는 존대는 하되 린짱의 이름만 부르기로 했다. 저녁에는 후에 세종학당 현지 교원이신 띠엔 선생님과 또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반깐(Bánh canh)을 먹었다. 반깐도 후에 시절 내가 좋아하던 음식이었는데, 하노이에서는 찾지 못했었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쩨(chè)를 먹으러 갔다. 하노이에서 학생들이 후에 쩨라고 해서 먹은 적이 있는데, 후에의 쩨 맛이 나지 않았다. 후에에서 쩨를 먹으니 '그래, 역시 이 맛이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쩨는 떡, 팥, 고기 떡, 콩, 젤리, 은행 등 다양한 재료를 내가 원하는 대로 섞어서 먹을 수 있는데, 나는 고기 떡을 좋아했다. 제일 인기가 많은 재료라 나오자마자 다 팔렸는데, 린짱과 김찌, 녓칸은 언제 고기 떡이 새로 나오나 계속 살펴봤다. 근데 내가 너무 감격해서 먹었는지, 배가 부른데도 계속 권했다. 다행히 이때 부른 배는 그다음 코스인 노래방에서 지칠 때까지 노래를 부르며 꺼뜨릴 수 있었다.
분보 후에, 분 틱 느엉과 넴 루이, 반짱쯩, 반깐, 쩨
호텔로 돌아와 후에에서의 린짱과 후에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이틀 내내 비가 계속 내려서 많이 걸어 다닐 수 없어 아쉬웠지만, 나에게 후에는 비의 도시라고 생각될 만큼 우기 때가 인상적이었기에 이것도 나름 그때의 분위기가 나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린짱과 김찌가 직접 만든 포도주를 마셨는데, 포도주가 정말 풍미 있고 맛있었다. 후에에서 많은 음식을 먹었지만 미안하게도 내가 산 적은 별로 없다. 비행기표를 린짱이 사 줬으니 내가 식사는 책임지겠다고 했는데, 린짱과 김찌, 녓칸이 나 몰래 미리 계산을 하고 현지 선생님들이 사 주시고 심지어 떰안 선생님은 저녁도 사 주셨으면서 린짱에게 나한테 맛있는 거 더 사 주라고 돈까지 보냈다.나를 이렇게나 반겨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행복했고, 감사했다.
하노이로 돌아가는 날, 린짱과 녓칸과 김찌와 분짜 까(bún chả cá) 맛집에서 분짜 까를 먹었는데, 와 정말 양도 많고 맛있었다. '분짜 까는 처음 먹어 보는 것 같은데, 하노이에도 당연히 있겠지? 근데 후에의 이 맛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들자 후에를 떠나는 게 더 아쉬워졌다. 아쉬움을 덜 남기기 위해 소금 커피를 한 번 더 마셨다. 린짱과는 호텔에 같이 있었고, 녓칸과 김찌도 3일 내내 나와 같이 다녔다. 후에 세종학당 교원 시절에도 학생들 중에서 이 친구들과 유독 많이 다녔기에, 덕분에 정말로 4년 전 그때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우리는 공항에서 아쉬운 이별을 뒤로하고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이렇게 후에에서의 추억 여행이 행복하게 끝났다. 어쩌다 보니 후에 음식 여행도 되어서 연휴 내내 배가 꺼질 때가 없었고 살도 좀 쪘다. 하지만 내 몸에 쌓인 건 칼로리와 지방이아니라 사랑과 고마움인 것 같았다. 살은 얼마 안 있어 다시 빠졌지만, 후에에서 받은 마음은 영원히 나에게 남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