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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Oct 24. 2022

대면 수업을 시작하다

2022년 문화원 세종학당 1학기

베트남은 2022년 초부터 점점 코로나19로 인한 규제를 풀기 시작했다. 코로나19 감염이 줄어들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위드 코로나 시대로 가는 것이었다. 내가 입국한 4월에는 언제 코로나가 있었냐는 듯 식당과 카페가 북적였고 길을 걷다 보면 공안(경찰)이 보는 앞에서도 마스크를 안 쓴 사람도 많이 보였다. 아니, 공안도 마스크를 안 쓰고 있었다. 다만 한국인들이 주로 사는 미딩과 쭝화 지역은 6월에도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녀야 했던 것 같다. 6월의 어느 날, 미딩에 있는 한인 미용실에 갔었는데, 내가 호안끼엠 구에 산다고 하자 사장님이 거기도 마스크를 꼭 쓰고 돌아다녀야 하냐며, 여기는 마스크를 안 쓰면 공안이 와서 벌금을 문다고 하셨다. 한국인이 많이 사는 아파트는 아예 아파트 입구에서 공안이 대기하고 있다고 하는데, 외국인들을 노리고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진짜 외국인들 대상으로만 이렇게 하는 건지, 공안이 맞기는 맞는지, 아니면 미딩과 쭝화 지역만 마스크 검사를 엄격하게 한 건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이렇게 위드 코로나로 가면서 학교들도 점점 대면 수업을 하기 시작했다. 4월에는 다른 세종학당들도 이미 대면과 비대면을 섞어서 하고 있었는데, 비대면인 경우에는 교원이 한국에 있거나 학생들이 대부분 다른 지역에 사는 경우였다. 우리 한국문화원도 대면 수업 일정을 정했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의견이 중요했기 때문에 대면 수업을 원하는지, 시작하면 언제부터 하기를 원하는지 반마다 조사했다. 학생들은 거의 모두 대면 수업을 원했다. 대면 수업 시작 일정은 반마다 달랐는데, 김 선생님 담당 반은 5월 중순부터 대면을 시작했고 내가 담당하는 세종 4·7·8 반은 6월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5월 중순, 후에 세종학당에서 가르쳤던 학생 양 씨와 만났다. 양 씨는 지금 하노이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어는 나에게 세종한국어 3권을 배운 이후 한 번도 공부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런 것 치고는 잘하는 편이었다. 


"양 씨, 잘 지냈어요? 반가워요!"

"저는 잘 지냈어요. 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선생님은 많이 날씬해요." 


후에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나보고 다 날씬해졌다고 말한다. 딱히 다이어트가 목표였던 건 아닌데, 후에에서 귀국하고 나서 위염과 역류성 식도염으로 강제 채식을 하고 운동에 재미도 들려서 5kg 정도가 빠졌다. 사실 지금 엄청 날씬한 것도 아닌데, 4년 전 나는 정말 뚱뚱했던 것인가! 4년 전 후에 세종학당에서 '뚱뚱하다, 날씬하다' 등의 형용사를 가르칠 때가 생각났다. 


"여러분, 저는 날씬해요, 뚱뚱해요?"

"음... 보통이에요."

"아, 음..."

"선생님... 죄송해요. 조금, 많이 아니에요. 조금 뚱뚱해요."


사실 바로 전 근무지였던 몽골에서는 날씬하다는 소리도 가끔 들었었기에, 베트남과 몽골 사람 체격이 차이가 난다고 해도 내가 뚱뚱한 편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다. 그런데 내가 조금 뚱뚱하다는 한 학생의 솔직한 대답에 반박하는 학생이 없었다. 그저 내 눈을 살짝 피할 뿐이었다. 그래, 그랬었지. 내가 정말 뚱뚱한 편이었나 보다. 덕분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생겼었으니 지금은 4년 전 나의 조금 뚱뚱함에 조금 감사하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났지만 전혀 어색한 것 없이 잘 놀았다. 하노이 전통 쌀국수라는 분탕(Bún thang)도 먹고, 같이 계란 커피도 마시고, 호안끼엠의 명물 짱띠엔 아이스크림도 먹고, 낮에 호안끼엠을 돌아다니며 거리 공연도 봤다.


분탕은 우리나라의 잔치국수 느낌이었다. 짱띠엔 아이스크림은 12,000동(약 600원) 정도 하는데 맛이 괜찮았다.


그전까지는 호안끼엠 호수에 평일 낮이나 주말 밤에 갔었는데, 주말 낮의 호안끼엠은 정말 분위기가 달랐다. 가족끼리 놀러 온 사람들,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등 거리 공연을 하는 사람들, 포장마차들, 거리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즐비했다. 주말에는 호안끼엠이 오토바이나 차들이 못 들어오는 차 없는 거리가 된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저녁에 다시 가 보니 수상인형극으로 유명한 탕롱 수상인형극장 앞에서도 공연을 하고 있었다. 전통 공연인 것 같았는데 배우들이 무대에서 공연을 하고 탈을 쓴 사람들이 주변을 돌아다니며 아이들과 놀아주고 있었다. 다리가 아파 계속 보지 못해서 아쉬웠다.


호안끼엠의 거리 공연들


그런데 이렇게 많이 돌아다녀서일까, 아니면 양 씨와 만난 다음 날 비가 와서 날씨가 좀 쌀쌀했는데 한여름 옷을 입고 다녀서 그런 걸까, 화요일에 출근했을 때 몸이 좀 안 좋았다. 저녁 수업 전에 몸이 살짝 으슬으슬하고 목 상태도 안 좋은 걸 느꼈는데 퇴근하고 집에 오니 열이 나는 것 같았다. '혹시 코로나 아니야?' 하는 생각에 자가 키트를 콧구멍 깊숙이 찔러 넣어 검사해 보았는데, 음성이었다. 열은 타이레놀을 먹으니 다행히 금방 가라앉았다. 괜찮겠지 하고 자고 다음 날 일어났는데 깜짝 놀랐다. 목소리가 완전 맛이 간 것이다! 세상에 내 목에서 이런 목소리가 나올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급하게 운영요원 선생님께 전화해서 재택근무를 하겠다고 했다. 김 선생님보다 대면 수업을 늦게 시작해서 살짝 아쉬웠는데, 이 때는 대면 수업을 아직 시작 안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면 수업을 김 선생님처럼 시작했으면 어제 수업을 했을 텐데, 만약 내가 코로나19에 걸린 거라면 학생들에게도 피해가 갔을 것 아닌가. 목소리가 이상한 것 빼고는 다른 증상이 없었고 주변에 코로나 걸린 사람들이 다 겪었다는 후각 미각 상실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식욕은 더 돋았다. 하지만 자가 키트는 100% 믿을 수 있는 게 아니었고 증상도 사람마다 다르다고 하고, 정작 목소리가 이상했을 때는 나오지 않았던 잔기침이 목이 다 괜찮아지고 나서도 한동안 계속 났으니 아마도 코로나19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잔기침은 계속 조금 났지만 목은 삼 일 후에 완전히 괜찮아졌다. 다행이었다. 그다음 주인 5월 24일에 중요한 행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1회 대한민국 대사배 말하기 대회 결선이었다. 부문은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전공하는 전공부와 세종학당 학생들이 참가하는 비전공부, 중고등부로 나뉘었고, 세종학당 학생들은 작년 세종학당 말하기 대회 중급에서 1등 한 학생들이 출전할 수 있었다(전 세계 세종학당은 1년에 한 번 말하기와 쓰기 대회를 개최한다). 전공부와 비전공부는 대상 부상은 한국에서 6개월 어학연수를 하는 것이었다. 작년에 전국 예선과 북부 예선, 남부 예선을 거쳐 결선 진출자를 선발했고 우리 학당 후옌 씨가 쟁쟁한 실력자들 속에서 비전공부 결선에 진출했다. 원래 결선도 작년에 치러야 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올해로 미뤄진 것이었다. 길고 긴 시간을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린 만큼 좋은 결과를 얻었으면 했다. 나와 김 선생님, 원 선생님은 줌으로도 후옌 씨의 말하기 연습을 돕고, 학당으로 불러서 또 연습시켰다. 대회 당일, 후옌 씨는 많이 긴장했는지 얼굴이 창백했다.


학생이 발표할 때는 '긴장해서 말을 더듬으면 어떻게 하지? 갑자기 빔프로젝트 오류가 생기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나도 긴장이 되었다. 다행히 후옌 씨는 연습 때보다 더 능숙하게 발표를 마쳤다. 나와 김 선생님은 1등, 그리고 아무리 못해도 2등은 할 거라고 확신했다. 우리는 6시에 저녁 수업이 있어 5시부터 하는 심사 발표를 못 듣고 학당으로 와야 했는데, 수업 바로 직전 현장에 남아 계시던 운영요원 짱 선생님이 후옌이 대상을 탔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다! 


제1회 대한민국 대사배 베트남 전국 말하기 대회 결선 축하 공연과 단체 사진(단체 사진 출처: 주베트남 한국문화원 페이스북)


6월 첫째 주, 드디어 나도 대면 수업을 시작했다. 1년 4개월 만의 대면 수업이었고 그전에도 2020년부터는 다문화 학생들과 과외 식으로 수업을 했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 앞에서 대면으로 수업을 하는 건 2년 반만이었다. 오랜만이라 살짝 긴장되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수업이 시작되자 긴장감은 금방 사라졌다. 학생들 중 몇 명은 작년부터 1년 넘게 가르쳤었는데도 대면으로 만나니 낯설었다. 줌에서 보는 것과 실제가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여러분, 정말 반가워요! 직접 만나고 싶었어요."

"저희도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 1학기 끝나기 전에 교실에서 만나서 좋아요." 


수업을 하다 보니 점점 에너지가 생겼다. 인터넷 문제도 없고, 학생들이 화면을 켜 놓고 딴짓을 한다는 의심도 할 필요 없고, 학생들의 말소리도 어느 한 명 묻히는 거 없이 다 들리고, 쓰기 오류도 즉각 즉각 수정해 줄 수 있어서 시원했다. 그리고 탁 트인 공간에서 마주 보고 이야기하니 훨씬 재미도 있었고 말이다. 첫 대면 수업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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