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문화원 세종학당 2학기
베트남 한국문화원은 참 다양한 행사를 많이 한다. 작년에는 코로나가 베트남도 심할 때여서 많은 행사를 하지는 못했는데, 대신 온라인으로 몇몇 행사를 진행했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예쁜 한글 손글씨 공모전이었다. 우리 한글을 손글씨로 정성스럽게 쓸 뿐만 아니라 영상도 아름답게 편집한 우수한 영상들이 아주 많았다. 그중에서도 대상을 받은 영상은 예술작품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떻게 한복을 입고 한국의 궁궐에 직접 가서 서예를 할 생각을 했을까. 게다가 엄청난 명필이다!
올해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가 완화되고 나서는 문화원도 다양한 행사를 많이 개최했다. 한국의 유명 작가를 초대해 작가와의 만남 행사를 하고, 한국 영화 원작을 베트남에서 리메이크한 것을 문화원에서 상영하는 행사도 했다. 또 백제-제주 전시회같이 베트남 박물관에 한국 관련 전시를 하고 박물관 내에서 한국 문화 행사도 연다. 12월 17일부터는 '한국과 베트남의 아름다운 만남'이라는 주제로 베트남 민족학 박물관에 한국 전시관을 연다고 하는데 정말 기대가 많이 된다. 한국 음식 만들기 체험, 캘리그래피 체험 등 단기 체험 학습도 진행하고 케이팝 댄스나 태권도는 학기제로 가르친다. 이런 행사를 할 때마다 신청자들이 많이 몰린다. 문화원에서 근무하며 이렇게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 문화를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배우는 모습을 보면 뿌듯해진다.
문화원 행사가 워낙 많기도 하고, 나는 문화원 '세종학당' 교원이라 문화원에서만 진행하는 행사는 모두 알지 못한다. 문화원 페이스북을 보고 행사가 있다는 걸 아는데, 보통은 베트남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다 보니 크게 관심 있게 보지는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눈을 휘둥그레지게 하는 포스터를 봤다!
효린? 효린이 온다고? 내가 아는 그 시스타 효린? 딱히 엄청 팬인 것은 아니지만, 유명한 가수이고 노래 실력으로는 아이돌 중에서 최고라고 생각하는 가수였다. 그런데 그 효린이 우리 문화원에서 하는 행사에 온다니! 행사 장소도 가까운 호안끼엠 공원이었다. 후에였으면 상상도 못 했을 텐데, 역시 하노이는 다르다. 다행히 토요일에 수업이 오전에만 있어서 저녁에 효린을 보러 갈 수가 있었다. 나는 어학원에서 같이 베트남어를 공부하는 동기 남 선생님과 효린을 보러 가기로 했다. 행사 당일 우리는 호안끼엠 공연장 바로 옆 건물 2층 'HANOI 1930'이라는 식당에 가서 자리를 선점하기로 했다. 그 건물 창가 쪽에서는 공연을 한눈에 볼 수 있는데, 지난번에 거기에서 하는 공연을 보러 갔을 때 사람이 너무나도 많아 그 건물에서 편하게 구경하는 사람들이 부러웠었기 때문이다. 공연 시작은 7시지만 4시에 식당에 가서 공연 때까지 음식과 맥주를 조금씩 계속 주문하며 있기로 했었는데... 공연장이 보이는 창가 자리는 5시 이후로는 예약 손님만 받는단다. 예약을 하려면 한국 돈으로 10만 원에 가까운 코스 요리를 시켜야 했다. 공연이 없을 때 똑같은 자리에 앉았을 때는 이런 이야기가 없었는데. 거의 주말마다 공연을 하는 곳인데 이 식당은 엄청나게 돈을 잘 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료 공연을 편하게 즐기러 왔다가 10만 원을 쓸 수야 없었기에 우리는 그냥 맥주 한 잔만 마시고 5시 되기 전에 나가기로 했다. 맥주를 마시며 밖에서 리허설을 하는 걸 봤는데, 문화원장님도 공연장을 계속 돌아다니시며 행사 전반적인 준비를 계속 확인하시고 있었다. 직원들도 공연 준비를 아주 꼼꼼하게 하고 있었다. 특히 무대 앞 의자 위치를 계속 조정했는데, '누가 앉을 수 있는 것인가 나도 앉아서 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했다.
식당에서 내려와 공연 준비하는 모습을 둘러보다가 문화원장님과 마주쳤다. 인사를 드리고 '혹시 무대 앞 의자에 앉아서 공연을 볼 수 있을까요?'라고 말할 준비를 했는데 감사하게도 원장님께서 먼저 이따가 의자 앉아서 공연 보라고 말씀해 주셨다. 힘들게 사람들 사이에 껴서 봐야 하나 걱정이었는데 한시름 덜었다. 공연장 옆에는 보스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한국문화원 부스도 있고 하노이 2 세종학당 부스도 있었다. 한국문화원 부스에서는 컵 떡볶이를 나눠 주고 하노이 2 세종학당 부스에서는 캘리그래피 체험 등 한글 관련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부스 구경도 하고 떡볶이도 먹고 호안끼엠의 유명하고 역사 깊은 짱띠엔 아이스크림도 먹고 곳곳에서 하는 거리 공연도 즐기며 공연을 기다렸다.
제일 처음 공연은 국제학교 아이들의 합창이었다. 이어 등불 축제 개막을 알리는 퍼포먼스를 했다. 무대 뒤 대형 화면에 공연을 구경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거리에 설치된 등불이 보였는데, 사람들은 끝없이 서 있었고 호안끼엠의 밤을 밝히는 등불은 정말 멋있었다.
본격적인 공연 첫 순서는 신인 가수인 MCND였다. 나는 최신 노래, 아이돌들한테 관심이 없는 편인데도(방탄소년단은 한국어 교사로서 고마운 점이 많아 좋아한다.) 신나게 공연을 즐겼다. 평소에는 전혀 듣지 않는 노래인데 공연장에서 라이브로 들으니 너무 흥이 났다. 다만 의자에 앉아 보는데 주변에는 다 한국 사람이고 특히 내 앞과 옆에 댄스 곡에도 진중한 태도를 유지하시는 중년의 한국 남자분들이 계셔서 내 흥을 억눌러야 했다... MCND는 정말 열정적으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멋있었다. 나보다 한참 어린 동생들인데 이 먼 타국 땅까지 와서 땀을 흘리며 최선을 다해 무대를 뜨겁게 해 주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했다.
MCND의 마지막 공연은 베트남 최고 인기 가수인 득푹의 노래였다. 멤버들이 베트남어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데 중간에 깜짝 이벤트가 있었다. 득푹이 중간부터 합류해서 노래를 같이 부르는 것이다. 원래 득푹이 나올 예정이긴 했는데 이렇게 재미있게 등장할 줄 몰랐다. 그다음에는 득푹이 노래 몇 곡을 불렀는데, 나와 남 선생님은 그때 이후로 득푹에게 빠져버렸다. 그전까지는 노래는 알아도 사람은 몰랐었는데 말이다. 노래를 잘 부르는 건 둘째였다. 노래를 부르며 무대에서 내려와 팬들 한 명 한 명, 무대 곳곳을 보며 소통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노래가 끝나고 그가 하는 베트남어를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말투에서 사람이 선량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득푹의 공연 후에는 베트남 유명 가수 황 투이 린의 무대도 있었는데 역시 아주 흥겨웠다. 카페에서, 길가에서 자주 듣던 노래를 이렇게 공연장에서 들으니 좋았다.
황 투이 린의 무대도 끝나고, 그전과는 결이 다른 함성 소리가 호안끼엠을 울렸다. 효린의 이름이 화면에 뜬 것이다! 효린은 베트남을 상징하는 노래이자 내가 좋아하는 'Hello Viet Nam'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등장했다. 2015년에 하노이에 왔을 때도 불렀다고 한다. 나와 남 선생님은 효린을 보며 역시 효린은 탑(TOP) 가수라며 연신 감탄했다. 춤을 추며 노래를 연속해서 부르는데도 전혀 흐트러지지 않고 완벽하게 노래를 불렀다. 정말 주변에 있는 분들이 무게를 잡고 계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언니! 사랑해요!'를 외치며 방방 뛰고 난리를 쳤을 것이다. 주변 분들도 체면 때문에 흥을 감추고 계신 것은 아닐까 내가 조금만 적극적으로 즐겨서 그분들의 봉인(?)을 풀어 드릴까... 아니 그러기에는 의자에 앉은 분들 분위기가 다 점잖다. 몸은 편했지만 공연을 진심으로 즐기는 나의 마음을 효린 님께 적극적으로 표현해 드리지 못했다.
공연이 끝나고 페이스북을 보니 우리 학생들도 페이스북에 모두 한-베 등불축제 관련 게시물을 올리고 있었다. 내가 가르치는 한 학생은 효린한테 꽃을 줬는데 효린이 그 꽃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리기도 했다. 대박! 이날 하루는 공연도 좋았고, 동기 선생님과 같이 축제를 즐겨서 좋았고, 우리 한국문화원도 좋았고 다 좋았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