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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Dec 06. 2022

하노이 치과 방문기

2022년 문화원 세종학당 2학기

'아얏! 아 뭐지? 왜 아프지?'


저녁에 이를 닦다가 앞니에서 갑자기 통증이 느껴졌다. 아무리 봐도 치아에 문제는 없는데... 아니, 자세히 보니 앞니와 잇몸 경계 사이에 아주 작은 갈색 점이 하나 있었다. 뭘까, 칫솔에 찔렸나? 아까 이쑤시개 쓰다가 찔렀나? 에이 모르겠다, 그냥 일시적인 통증이겠거니 하고 그냥 넘겼다.


다음 날 아침, 이를 닦는데 여전히 앞니를 닦을 때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눈을 크게 뜨고 보니까 갈색 점이 하나 더 생겨서 두 개가 되었다. 흠... 치과에 가야 되나? 치과는 무서운데. 중학생 때 이 13개가 썩어서 학교 다음으로 치과에 많이 다녔었는데, 그때부터 치과 특유의 냄새와 위이잉 소리를 몸서리치도록 싫어하고 무서워하게 되었다. 30대 어른이 되어도 치과가 무섭기는 마찬가지이다. 정기적으로 가서 검진을 받긴 하지만 스케일링도 1년에 한 번 받지만 치과는 정말 가기 싫다! 그리고 한국어가 통하는 치과는 한국문화원하고 멀리 떨어져 있어서 연차 안 내고 잠깐 다녀오기도 좀 그렇고 갔다 오면 근무 시간도 많이 뺏긴다. 한국문화원 근처에도 현지 치과는 많지만 가기가 망설여졌다. 사실 몇 달 전에 이가 아파서 치과에 갔었는데, 간판에 프랑스였는지 오스트레일리아였는지가 있길래 영어를 쓸 수 있는 줄 알고 들어갔다. 그런데 내가 들어가자마자 치과 직원들은 엄청 당황해하며 베트남어로 수군거렸다.


"외국인이 왔는데 어떻게 하죠?"

"한국 사람인 거 같은데."

"혹시 영어 할 줄 아는 사람?"


보다 못해 내가 먼저 베트남어로 말했다.


"저, 영어도 조금 할 줄 알고 베트남어도 조금 할 줄 알아요."


그러자 치과 안의 사람들 표정이 살짝 밝아지며 이제는 "이 한국 사람 영어도 할 줄 알고 베트남어도 조금 할 줄 안대요."라고 수군거렸다. 안에서 치과 의사가 나왔는데 나를 보더니 또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옆에서 직원이 "영어도 조금 할 줄 알고 베트남어도 조금 할 줄 안대요."라고 말하자 다시 표정이 밝아졌다.


그리고 진료를 받고 나는 계속 베트남어로 설명을 들었다. 당연히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이에 문제가 있던 게 아니었기에 대략 이해가 가능했다. 의사 선생님은 내 이에는 아무 문제가 없으며, 양치를 잘하고 음식을 씹을 때 너무 강하게 씹지 말라고 했다. 집에 와서 양치를 하다가 어금니 사이에 낀 오래 묵은 듯한 음식물이 빠졌는데 통증이 바로 사라졌다. 음식물이 껴서 이가 아팠던 건데 그걸로 치과까지 가다니... 창피했다. 어쨌든 이렇게 현지 치과는 말이 안 통하고 직원들이 외국인을 부담스러워하는 불편함이 있어 가기가 망설여졌다.


'참자, 별거 아니겠지. 아니야! 별거 아닌 걸 왜 내가 판단해 의사가 판단해야지! 치과는 늦게 가면 엄청 손해라고. 아니 근데 진짜 가기 싫은데.'


내 안의 천사와 악마, 아니 치과를 싫어하는 마음과 치아를 지키려는 마음이 다투는 사이, 잇몸의 세 번째 갈색 점이 거울을 통해 나한테 '안녕!' 인사를 했다.


아, 정말 가야 한다. 하 진짜. 주변에 괜찮은 치과가 어디 있을까, 저번에 갔던 곳은 시설도 좋고 직원들도 친절했지만 창피하니까 빼고 다른 곳을 찾아보자, 아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호안끼엠 가는 길에 어디 치과가 개원식을 하고 있었는데 한국 사람이 와서 축사하고 있었지. 혹시 한국어가 통하는 곳일 수도 있으니 거기로 가 보자! 그렇게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일찍 치과로 나섰다.


내가 간 곳은 'Id beauty center'라는 곳이다. 치과뿐만 아니라 피부과도 있는 4층짜리 병원 건물이다. 역시, 입구에 '어서 오십시오'라는 한국어가 적혀 있었다. 휴, 다행이다. 한국어가 통하겠구나! 안심하고 당당하게 들어갔다. 그런데 어? 직원들 표정이 난감해 보인다? 카운터에 가자 직원들이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어, 음... 한국?"


아... 한국어 안 되는구나. 이런. 그냥 포기하고 베트남어로 나는 한국 사람이라고 말했다. 내 베트남어를 들은 직원들 표정이 밝아졌다. 여기서도 베트남어로 설명 듣겠구나... 어쩔 수 없지 치료만 잘 받으면 되지.


내가 간 치과


로비에서 좀 기다리자 위에서 직원이 내려와서 나를 안내했다. 치과는 4층에 있다며 나를 4층으로 데려갔다. 음... 그런데 나는 그냥 진료받으러 온 사람이지 VIP는 아닌데 나보고 그냥 위로 올라오라고 하면 되지 왜 굳이 내려와서 나를 모셔가지? 서비스가 아주 부담스러울 정도로 좋군. 아니 혹시 여기 가격 엄청 비싼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을 하며 치과에 들어가 의자에 누웠다. 


치과 의자에 누워있는 것도 불편한데, 이 큰 병원에 나밖에 환자가 없는 것도 불편한데, 내 주변에 의사 선생님과 나를 안내해 준 직원을 포함해 다섯 명이 있었다. 왜?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나를 보는데? 나를 안내해 준 직원이 의사 선생님께 로비에서 내가 말한 내 증상을 설명했다. 의사 선생님은 진지한 표정으로 증상을 듣고 내 이를 살폈다. 그리고 나머지 네 분도 다 내 이를 봤다. 의사 선생님 표정이 심각해 보였다. 다른 네 명의 표정도 심각했다. 의사 선생님은 치위생사와 직원들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내 이를 가리키며 뭐라 뭐라 설명을 했다. 뭔데? 대체 뭔데? 왜 이렇게 표정이 심각하세요? 덩달아 심각한 표정으로 선생님을 바라보는 나에게, 의사 선생님은 여전히 심각한 표정으로 나한테 말씀하셨다.


"그냥 염증이에요. 큰일 아니에요."


큰일 아닌데 다들 왜 그렇게 심각하셨어요... 다섯 명이 똑같이 심각해서 제 마음이 큰일 날 뻔했잖아요. 의사 선생님한테 살짝 삐졌다. 그런데 큰일 아니라니까 갑자기 의사 선생님이 엄청 착하고 인자해 보이셨다. 그래서 혼자 삐지고 혼자 용서했다.


"염증 치료를 하고, 스케일링도 하셔야 해요." 

"비싸요?"

"아니요. 50만 동이에요."


50만 동이면 한국 돈으로 2만 5천 원. 괜찮네. 스케일링은 반년 전에 받았지만 치석 때문에 염증이 생겼다니까 받아야지. 정말 받기 싫지만 받아야지. 그렇게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계속 궁금했던 것이 있었다. 내 오른쪽에는 의사 선생님, 내 왼쪽에는 한 분은 의사 선생님을 보조하시는 치위생사, 한 분은 그 치위생사를 보조하시는 분(필요한 기구를 전달하심), 그리고 치과 직원. 그런데 의사 선생님 옆에 계신 분은 대체 뭘 하시는 분일까 하는 것이다. 치료가 시작돼도 계속 가만히 나를 (계속 진지한 표정으로)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내가 정말 싫어하는 이를 깎는(?) 위이잉 소리가 들리고 아픔과 두려움에 손에 힘을 주자 그분의 역할을 알게 되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힘 빼세요.", "괜찮아요. 안 아플 거예요."


언젠가 미국 어떤 병원에서는 환자들에게 심리적 안정을 위한 인형을 준다는 인터넷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렇다. 그분의 역할은 그 '인형'이었다! 그분은 따뜻하고 안정적인 목소리로 꼭 주먹을 쥔 내 손을 감싸고 나를 다독이고 응원했다. 나는 엄청 고통스러워 하지는 않았는데 아이를 달래듯 손을 토닥이기도 했다. 그 상황이 재미있어서 아픈데 웃겼다. 웃긴데 웃을 수가 없었다. 치료가 끝나자 나한테 수고했다고 잘했다고 칭찬해 주셨는데 '나 32살인데 어린애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좋았다.  



치료가 끝나고 엑스레이실로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다. 역시 직원이 따라와서 내 옷과 머리핀을 챙겨 주는 등 보좌해 줬다. 엑스레이를 찍고 의사 선생님께 설명을 듣는데 선생님께서 아주 천천히 그리고 최대한 쉽게, 어려운 용어는 구글 번역을 사용하시며 말씀해 주셔서 좋았다. 치실을 사용해 양치를 잘하라는 일반적인 이야기도 하고, 내 이에 금이 가 있다는 말도 하셨다. 엑스레이를 보니 정말 그랬다. 육안으로도 살짝 금이 보였는데 난 다른 사람도 다 그런 줄 알았다. 저번에 치과에서 나한테 식사할 때 너무 강하게 씹지 말라고 했던 이유가 이거구나. 역시나 여기 선생님도 나한테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이렇게 치료를 다 받고 계산을 하고 영수증을 챙겨 나오는데 아까 다섯 분 모두 나와서 나한테 인사했다. 치과에서 VIP 체험 제대로 한다. 아까는 사뭇 진지하더니 이때는 다들 싱글벙글 웃는 표정으로 나를 배웅해줬다. 베트남어를 잘한다는 칭찬까지 덤으로 해 주며 말이다. 이 치과, 마음에 든다. 서비스도 좋고 사람들도 친절하고 시설도 좋고 심리를 안정시켜 주는 분(?)도 계시고, 다만 너무 심각한 표정으로 진료 보는 건 좀 그렇고.


아무튼, 이렇게 치료를 잘 받아서 염증은 바로 나았다. 치과는 싫지만, 하노이 현지 치과를 방문한 경험은 참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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