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국어 교원 Dec 07. 2022

선생님 사과드립니다

2022년 문화원 세종학당 2학기

"선생님,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제 사과를 받아 주세요"


수업이 시작하고 10분쯤 지났을까, 6권 학생 황 씨가 내민 손에는 진짜 '사과'가 있었다. 빨갛고 둥근 사과. 사과는 황 씨의 가방에 더 많이 담겨 있었다. 그때, 황 씨 옆에 앉은 주옌 씨가 황 씨의 가방에서 사과 하나를 빼서 나한테 내밀었다.


"선생님, 지난 수업에 못 와서 죄송합니다. 저도 사과드릴게요."

"오 맞아요, 선생님. 저는 주옌 씨 사과도 같이 샀어요."


하하하. 이게 다 세종한국어 6권 2과에서 '사과'를 배운 탓이다. 2과 '사과'에서는 사과할 때 쓰는 표현을 배운다. 이 단원의 '읽고 쓰기' 부분에서는 이런 지문이 나온다.


누군가에게 사과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말을 꺼내기가 어려울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어에서 '사과'는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뜻은 과일이다. 빨갛고 맛있는 사과는 한국 사람들이 아주 좋아하는 과일이다. '사과'의 두 번째 뜻은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동사로 '사과하다'라고 한다. 다른 사람에게 사과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미안하다고 직접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럴 때 요즘 한국에서는 가까운 친구에게 사과를 주면서 "내 사과를 받아 줘."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면 그 친구는 "그래, 너의 사과를 받아 줄게."라고 응답한다. 맛있는 사과와 실수한 사람의 사과를 함께 받는 것이다. 아직 다른 사람에게 사과하지 못한 잘못이 있으면 얼른 과일 가게에 가서 사과를 하나 사라. 그리고 그 사람에게 말하라. "내 사과를 받아 주세요."
 - <세종한국어 6> 30쪽


이 단원을 배우고 나서 나는 사과 부자가 되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선생님 지각해서 죄송합니다", "숙제를 못 해서 죄송합니다.", "바쁜 일이 있어서 수업에 못 갑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끝날 것을, 이 단원을 배운 이후에는 학생들 손에 사과와 관련된 것이 하나 씩 들려 있는 것이다.


"선생님, 저는 사과 주스를 준비했어요!"

"고마워요. 그런데 안 줘도 돼요."

"받아주세요~"


"이건 사과가 아니고 석류인데요, 사과하고 모양하고 색깔이 비슷해서 가져왔어요!"

"고마워요. 그런데 타오 씨는 저한테 사과할 일 없지 않아요?"

"아, 네. 그런데 그냥 사과 드려요. 히히히"


학생들은 미안함 보다는 재미가 있어서 나한테 사과를 주며 사과했다. 사과를 주는 데 핑계를 붙이기도 했다. 사과를 사오느라 늦었으면서 5분 늦어서 죄송하다며 사과를 준다던가 말이다. 6권 반은 아침 반과 저녁 반이 있는데, 두 반한테서 사과 세례를 받았다. 덕분에 이번 학기는 내가 사과를 일부러 사 먹지 않아도 사과를 충분히 먹고 있는 중이다.


황 씨의 사과를 받고 나서 황 씨에게 물었다.


"그런데 주옌 씨 것하고 황 씨 것하고 두 개만 주면서 사과는 왜 이렇게 많이 샀어요?"

"아, 선생님. 이거는요, 나중에 드릴 거예요."

"나중에도 잘못할 거예요?"

"네. 사과가 하나, 둘, 셋 ... 일곱 개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일곱 번 잘못해도 돼요."

"하하하 잘못하면 안 죠."

"아니에요 선생님. 우리는 잘못하면 선생님한테 '내 사과를 받아 주세요' 하면서 사과를 드릴 거예요. 선생님은 꼭 사과를 받으세요."


결국 이 일곱 개의 사과는 모두 다 받았다. 숙제를 깜박해서, 지각해서, 그냥. 뭔가를 잘못 한 학생들은 황씨에게 사과를 빌려서 나에게 내밀었다. 학생들이 준 사과, 사과 주스, 석류는 모두 맛있었다.


한국어 수업을 하다 보면 한국인들을 가르칠 때는 경험하기 힘든 재미있는 경험을 참 많이 한다. 내가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이런 재미있고 맛있는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준 세종한국어 6권 2과가 참 고맙다.

 

세 명의 학생에게 받은 사과, 사과, 그리고 석류



매거진의 이전글 하노이 치과 방문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