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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May 07. 2023

베트남어 시험 결과는?

하노이 유학 생활 6

결론부터 말하자면 망했다. 쓰기를 제외한 말하기, 듣기, 읽기는 내 점수를 바로바로 알 수 있었기에 망했다는 걸 바로 알 수 있다. 쓰기는  작문 점수를 아직 모르지만,  문제를 잘못 이해해서 썼기 때문에 망했다. 말하기는 말하기 시험 감독관이 시험이 끝나고 등급을 알려 줬다. 결과는 내가 목표한 C1(고급 1)이 아닌 B2(중급 2)였고, 이것도 감독관이 점수를 잘 준 것이다. 시험이 끝나고 우울함을 달래기 위해 당을 입에 때려넣고 싶어 평소에 혼자 먹기 부담스러웠던 망고 빙수 하나를 혼자 먹었지만, 그래도 너무 우울했다. 그동안 내가 열심히 공부를 안 했나 싶기도 하고, 머리가 안 좋나 싶기도 했다.


빙수는 매우  맛있었다.

시험을 못 본 가장 큰 이유는 내 베트남어 실력이었다.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았다. 심지어 쓰기와 말하기는 문제 하나를 제대로 이해 못 했다. 두 번째 이유는 문제가 너무 어려웠고 이상했다는 것이다. 나도 외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이고 시험 문제도 여러 번 만들어 봤기 때문에 너무 높은 난도와 이상한 문제 방식을 보며 짜증이 났다. 어떻게 문제가 이상한지 말해 보면 일단 듣기! 듣기는 한 10번째 문제까지는 질문을 듣고 알맞은 대답을 고르는 것이다. 그런데 듣기 시험인데 질문을 보여준다.


듣기 기출문제 1번


이런 문제인데, 따로 듣기 지문이 있는 게 아니었다. 이 문제를 해석하자면 이렇다.

문제 1 : 그 남자는 이름이 뭐예요?
① 제 이름은 남이에요.
② 그 여자 이름은 람이에요.
③ 그 남자 이름은 남이에요.


질문과 답을 문제지에 있는 거 그대로 들려주기만 하는 문제가 10개나 있다. 이게 왜 듣기 문제인지 이해가 안 간다. 그냥 듣기를 생략하고 문제만 보고 답을 고르면 되는데 이게 듣기 능력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두 번째는 듣기를 한 번만 들려준다는 거다. 한국어 시험도 영어 시험도 두 문제가 한 세트면 다 두 번씩 들려준다. 그런데 베트남어 능력 시험은 짧은 듣기도 긴 듣기도 한 번만 들려준다. 뒤에 가면 경제와 정치와 관련된 복잡하고 긴 내용도 나오는데, 심지어 문제도 두 개이고 답항도 1번부터 4번까지 기본 3~4 문장은 되는 긴 글이 나왔다. 답항을 읽을 시간도 부족했다.


듣기 기출문제 48번 49번 내용. 내가 푼 문제는 아니지만 이와 비슷하게 길었다.


그리고 문제 난이도도 이해가 안 갔다. 너무 어려웠다. 물론 내 베트남어 실력이 부족했던 탓도 크지만, 기존 기출문제와 비교해도 수준이 너무 차이가 났다. 단어도 생소한 단어가 많이 나왔고, 기존 기출문제는 듣기와 읽기 답항 문장이 길어야 2 문장이었는데, 이번에는 문장이 3~4 문장 되는 게 많았다. 가뜩이나 어려운 말인데 답을 읽는 데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것이다. 그리고 읽기 문제에 읽기 지문에 나오지 않는, 상식이 있어야만 풀 수 있는 문제도 있었다.


쓰기와 말하기 문제도 너무 어려웠다. 쓰기 작문 1번 문제는 '직업을 선택할 때 '양'과 '질' 중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문제에 내가 모르는 단어가 많이 나와서 문제를 잘못 이해했고, 시험이 끝나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무슨 문제였는지 알았다. 말하기의 경우 마지막 질문을 이해 못 해서 감독관에게 무슨 뜻인지 설명해 달라고 말했었는데, 가 이해하기로는 '출산율' 문제였다. 남자와 여자 성비? 현재 우리나라의 출산율 문제와 해결 방법? 확실하지는 않다. 이제까지 '인터넷 사용의 장단점, 건강 관리 방법, 외국어 공부의 장점, 스트레스 해소 방법' 등의 주제로만 연습한 나는 너무 당황했다. 시험이 끝나고 베트남어 과외 선생님께 이런 문제들이 나왔다고 하자 선생님도 이해가 안 간다며, 그건 베트남 사람들도 바로 대답할 수 없는 문제라고 이건 시험은 너무 수준이 높았다며 위로했다.


마지막으로, 시험 진행에 문제가 있었다. 시험을 보기 전에, 베트남에서 컴퓨터로 보는 시험인 데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실시하는 컴퓨터 기반 시험이라 시험 도중에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했었는데,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듣기 시험 때 45번에서 듣기 파일이 갑자기 재생이 안 되는 것이었다. 듣기 시험은 수험자들 전체가 같이 듣는 게 아니라 헤드폰을 쓰고 각자 컴퓨터에서 나오는 듣기 파일을 듣는 거였다. 듣기 파트가 1부터 4까지 나뉘어 있는데 파트 1이 끝나면 파트 2로 수험자들이 직접 페이지를 넘기는 방식이었다. 누구는 파트 3을 듣고 있어도 다른 사람은 파트 4를 들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험자마다 듣는 속도가 달랐는데, 내가 43번 문제를 듣고 있을 때 45번을 풀던 다른 수험자들이 문제를 제기했고 감독관이 잠깐 기다리라고 하며 문제가 있는 수험자들 컴퓨터를 확인했다. 그런데 수험자들은 '조용히' 문제제기를 했는데 감독관은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듣기 문제를 풀다가 이게 뭔 소란인가 싶어 집중력도 흩어지고 감독관의 말 때문에 듣기 문제도 못 들었다. 심지어 아직 문제를 풀고 있는 다른 수험자들의 컴퓨터도 확인하며 문제 없이 듣고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가뜩이나 한 번만 들을 수 있는데 이렇게 방해를 하다니. 다행히 3분 이내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감독관은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계속 말했다. 나는 그나마 두 문제를 못 들은 거지만 몇몇 사람들은 더 많은 문제를 못 들었을 것이다.


그전 문항을 풀 때는 내 옆 자리 사람이 손을 들어 감독관을 불렀는데 감독관이 바로 내 옆에서 소근소근도 아닌 보통의 목소리로 말하는 바람에 한 문제를 날렸었다. "이 사람은 무슨 계절을 좋아하나?"에 대한 답을 고르는 문제였는데 하필 "제가 좋아하는 계절은..." 부분에서 감독관이 불쑥 말을 한 것이다. 이 문제는 읽기와 쓰기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감독관과 부감독관이 시험 중간에 작은 목소리로 잡담을 나눴다. 집중해야 하는 시험 시간에 앞에서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니... 나는 전에 토픽(한국어 능력 시험) 감독도 했었는데, 토픽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듣다 못해 읽기와 쓰기 시험에서 헤드폰을 썼는데, 시간이 지나니 내 앞의 사람 몇몇도 헤드폰을 썼다. 읽기를 때는 4지선다인데 답항은 선택할 시스템 문제도 있었다.

 

이런저런 문제가 있었지만, 시험을 못 본 이유는 역시 내 베트남어 실력이 아직 많이 부족한 탓이 제일 크다. 단어 공부를 더 열심히 했어야 했다. 에 적은 시험에 대한 내 불만은 다음에 베트남에서 베트남어 능력 시험을 보는 분들 참고하시라고 쓴 것이기도 하고 약간의 자기 변명이기도 하다. 좀 많이 우울하지만, 지난 글에 썼듯이 어학연수의 목적이 시험 점수였던 것은 아니었고, 공부하면서 내 베트남어 실력이 많이 좋아진 건 사실이니 시험을 못 봤다고 해서 그동안의 노력이 아주 헛수고라고는 생각 안 한다.


그리고 이번 경험으로 나는 한국어 학습자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선생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학생들 중에는 공부는 별로 많이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한국어 실력은 뛰어난 학생이 있고, 공부는 정말 열심히 하는데 실력도 시험 점수도 노력에 비해 별로 안 좋은 학생이 많다. 나도 후자의 경우가 아닌가 싶다. 어쩔 수 없다. 외국어 실력도 소질이 있는 사람이 더 좋을 수밖에 없으니까. 5개 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누구나가 5개 국어를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이번을 경험 삼아 다음에 시험 보면 잘 볼 것이고, 무앗보다 결과가 과정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번 일로 진짜 열심히 공부했는데 시험 성적이 좋다며 우울해하는 학생들을 아마 위로하고 다독일 있을 같다. "저도 그랬어요."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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