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를 믿는 인도에는 여러 남신과 여신이 있다. 최고 신 비슈누(Visnu), 파괴의 신 시바(siva), 창조의 신 브라흐마(Brahma)는 그 많은 신 중에서도 대표가 되는 신이다. 그중에서 브라흐마는 비슈누 신의 배꼽에 있는 연꽃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브라흐마의 아내는 사라스바티(Saraswati)라는 신인데, 그녀는 지혜의 신이자 배움의 신이다. 아, 그리고 인도의 대표 신은 아니지만 흥미로운 신으로 가네샤(Ganesha)라는 신도 있다. 가네샤 신은 시바 신의 아들로 인간의 몸과 코끼리의 몸을 다 가지고 있다.
왼쪽부터 비슈누, 브라흐마, 가네샤
이 모든 흥미로운 인도 신화 이야기는 샨드라에게서 들었다. 내 영어 실력의 부족으로 샨드라가 설명해주는 모든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샨드라가 손짓 발짓을 하며 동화를 들려주는 듯한 목소리로 열심히 설명해 주어서 재미있게 들었다. 중요한 건, 나는 한 번도 샨드라에게 인도 신화에 대해 물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샨드라는 어느 날 한국어 공부를 하러 교실에 오자마자 갑자기 인도 신화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없다. 그냥 이야기하고 싶으니까 이야기한 것이다.
샨드라는 이런 학생이었다. 조용할 것 같았던 첫인상과 다르게 정말 수다스러웠고,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샨드라는 수업 시간 전, 중간에 쉬는 시간, 끝난 후에 잠시도 쉬지 않고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의 종류는 다양했다. 인도에 있는 자기 원래 집과 동네 이야기, 가족들 이야기(특히 두 살 어린 동생 뒷담화), 주말에 가족들이랑 공원에서 놀았던 이야기부터 코로나19 이야기, 인도의 신화 이야기, 마하트마 간디에다가 국제 정세 이야기까지.
2020년 9월 어느 날, 한국어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어김없이 청주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문자가 왔다. 나는 한국에 코로나19 확진자가 점점 많아져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샨드라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기도 걱정이 되지만, 그래도 한국은 인도에 비해 괜찮은 편이라고 말했다. 인도는 코로나 확진자가 수백만 명이 넘었으며, 하루 확진자가 만 명이 넘는다고 했다. 나도 인도 소식을 이미 뉴스로 봐서 알고 있었다. 나는 아직 9살밖에 안 된 샨드라가 인도의 사정을 얼마나 알겠나 싶어 그저 나도 인도가 너무 걱정된다고만 대꾸했다.
2021년 3월 현재 인도 코로나19 확진자 현황
하지만 샨드라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성숙하고 똑똑한 아이였다. 겨우 9살밖에 안됐지만 가끔 내가 놀랄 정도로 어른스러운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이날은 특히 더 그랬다. 샨드라는 심각한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샨드라 : 인도에 코로나 확진자가 너무 많아요. 하지만 인도는 가난해서 한국처럼 코로나를 관리할 수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도 안 쓰고 다녀요. 왜냐하면 마스크를 구할 수가 없거든요. 인도에는 부자들도 많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훨씬 많아요.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차이가 너무 커요. 그 사람들은 코로나에 걸려도 치료할 수 없어서 집에서 죽어요. 병원도 부족하고 병원 시설도 안 좋아서 그 사람들을 받아줄 수 없고 제대로 된 치료도 못 받고 있어요. 코로나19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있어요. 정말로 안타깝고 걱정돼요.
(영어로 말했지만 편의를 위해 한국어로 쓴다)
인도는 상위 1%가 전체 부의 60%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라고 한다. 인도 사회개발위원회(CSD)의 통계에 따르면 인도에서 상위 1%가 차지한 부의 비중은 2015년 22%에서 2018년 58%로 급격히 확대됐다고 한다. 이런 인도에서 ‘코로나19 방역’은 꿈만 같은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당장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을 판인데, 마스크는 어떻게 구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는 어떻게 하겠나? 병원에서는 당연히 폭증하는 코로나19 환자들을 관리하지 못하고 있고, 제대로 된 치료도 못하고 있다. 한 병원에서는 코로나19 환자 옆에 시신을 방치하기까지 했다. 샨드라는 이러한 인도의 현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인도의 낮은 사회계층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삶이 더 피폐해졌다. (출처 : 코로나19 인도, 봉쇄의 두 얼굴 (167회_2020.04.25.방송) - YouTube)
나는 9살 아이가 이렇게까지 자기 나라 문제를 심각하게 인지하고 걱정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내가 9살 때 우리나라는 IMF로 심각한 사회 경제 문제를 겪었지만 난 IMF가 뭔지도 모르고 세상 편하게 살았던 것 같은데, 샨드라는 비교적 안전한 곳에 있으면서도 안전하지 않은 조국 인도를 걱정하고 인도의 문제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샨드라는 현재 러시아에서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고, 러시아가 백신을 개발하면 코로나19가 점차 괜찮아질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 당시 러시아는 ‘스푸트니그 V’라는 백신을 개발했고 세계 최초로 코로나 19 백신을 정식으로 승인한 상황이었다. 부끄럽지만 나는 이런 정보도 샨드라를 통해 알았다.
샨드라는 학교 공부 외에도 영어 학원, 미술 학원, 음악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많이 배우는 건 어린 샨드라에게 부담이 많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항상 숙제를 해 오던 샨드라가 한 번 숙제를 깜박한 날이 있었는데, 샨드라는 내게 공부할 게 너무 많아서 잊어버렸다고 했다. 샨드라가 학원 공부를 많이 한다는 걸 알고 있어서 나는 숙제하기가 힘들면 수업 시간에 같이 하자고 했다. 하지만 샨드라는 자기는 공부하는 걸 좋아해서 집에서 숙제를 하고 싶다고 했다. 힘들어도 괜찮다면서.
나는 샨드라에게 왜 공부를 좋아하냐고,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힘들지 않냐고 물었고, 샨드라는 진지한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샨드라 :우리 부모님은 제가 아주 똑똑한 아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아빠는 나중에 저를 런던으로 유학을 보낼 거래요. 저는 크면 런던에 가서 의학을 공부할 거예요. 그러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돼요.
저는 나중에 의사가 되어서 인도로 갈 거예요. 훌륭한 의사가 되어서 인도 사람들을 도와줄 거예요. 많은 사람들을 치료하고 살리고 싶어요.
9살, 공부할 거 공부하면서 실컷 뛰놀고 맛있는 것을 먹고 사랑만 받으며 살아도 충분한 나이에 샨드라는 돈이 없어 기본적인 진료조차 받지 못하고 외면당하는 대다수의 인도 사람들을 걱정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돕는 사람이 되겠다는 꿈을 생각하며 힘든 것을 꾹 참고 공부하고 있는 것이었다.
샨드라가 설명해 준 인도의 여신 ‘사라스바티’는 지혜의 신이지만 인도 성전(聖傳) ‘리그 베다’에 나오는 ‘사라스바티 강’의 화신이라고도 한다. 그녀는 흐르는 강이 변하여 흐르는 모든 것(말, 웅변, 지식, 음악 등)의 여신이 되었다고 한다. 또 사라스바티는 풍요와 번영을 돕는 신이기도 하다. 사라스바티처럼 지혜롭고 똑똑한 샨드라. 나중에 샨드라가 사라스바티처럼 인도의 풍요와 번영을 돕는 사람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