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국어 교원 Mar 11. 2021

한국어를 한국어로만 어떻게 가르치나요

스웨덴에서 온 삼남매


학생들이 영어도 못하면 어떻게 설명하세요?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아 봤다.      


그럼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한국어로 가르쳐요.”     


내가 한국어를 한국어로만 가르친다고 대답하면 ‘그게 가능한가?’ 하는 표정을 짓는다. 심지어는 같은 한국어 교사 중에서도 한국어를 한국어로만 가르치는 게 가능한지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가능하다. 그리고 우리가 원어민에게 영어를 배울 때는 강사들이 한국어로 영어를 설명해 주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건 한국어를 한국사람에게 배우는 외국인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한국어 수준을 초급, 중급, 고급 세 단계로 나누면 가르치기 제일 어려운 단계는 어느 단계일까? 한국어 교사가 아닌 사람에게 물어보면 ‘고급이 제일 어렵지 않아? 어려운 말을 가르쳐야 하니까’라고 하고 '초급은 단순해서 쉽지 않아?'라고 한다. 아니다. 그런데 초급이 제일 가르치기 힘들고 어렵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단계 중에서 ‘쉬운’ 단계는 없지만 제일 ‘어려운’ 단계는 단연컨대 초급이다.


초급이 어려운 이유는 첫째, 이 단계에서 잘못 가르치거나 잘못 배우면 오류가 굳어져버려서 나중에 고치기 힘들어진다. 둘째, 중고급 단계에서는 한국어가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태이지만 초급에서는 아직 낯선 언어기 때문에 한국어의 어순, 수많은 문법 특징 등에 학생들이 힘들어할 수 있다. 셋째, 바로 이번 편에서 말하려고 하는 ‘한국어로만’ 설명하기가 어렵다.


중고급 단계에서는 학생들이 이미 배운 한국어가 많기 때문에 한국어로만 설명하기가 부담스럽지 않다. 학생들이 배운 어휘와 문법을 이용해서 한국어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중급 문법인 ‘N이라도’를 중급 학생들에게 설명한다고 하자. ‘N이라도’는 ‘밥이 없으면 라면이라도 먹자’처럼 ‘마음에 안 들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어서 차선으로 선택할 때’ 쓰는 문법이다. 학생들에게 설명할 때는 위에 쓴 사전적 의미를 그대로 설명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교사 : ‘밥이 없으면 라면이라도 먹자.’ 이 사람은 배가 고파요. 그런데 이 사람은 밥을 먹고 싶었어요, 라면을 먹고 싶었어요? 밥을 먹고 싶었어요. 하지만 지금 밥이 없어요. 그런데 라면은 있어요. 그래서 밥을 먹고 싶었지만 라면을 먹어요. 만약에 밥이 있으면 무엇을 먹었을까요? 밥을 먹었을 거예요.


이렇게 설명한 후에 몇 가지 예문을 더 들어주면 학생들은 ‘N이라도’라는 문법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초급의 경우 학생들이 배운 한국어가 별로 없어서 한국어로만 설명하는 게 어렵다. 더군다나 아예 한국어를 처음 접하는 ‘한글’을 배우는 단계에서는? 많은 초보 한국어 교사들이 걱정하는 게 바로 ‘한글’을 가르치는 단계이다.


2020년 9월 중순, 내가 인도 아이 샨드라를 가르치고 있던 A초등학교에 스웨덴 학생 3명이 전학을 왔다. A 초등학교에서는 스웨덴 학생들도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고, 하루 최대 2시간 수업할 수 있었던 나는 한 시간은 스웨덴 학생들, 한 시간은 샨드라를 가르치기로 했다.


스웨덴 학생들은 남매 사이였다. 첫째 마틴은 5학년, 둘째 레빈은 3학년, 막내 여동생인 에이미는 2학년이었다(이름은 모두 가명). 세 명은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했고 영어도 못했다. 첫째인 마틴이 어렵지 않은 영어 회화만 가능해서, 두 동생의 담임선생님은 동생들에게 전달할 말이 있으면 마틴을 찾아가서 전달한다고 했다.


사실 A 초등학교에서 처음으로 가르쳤던 러시아 학생 B도 한국어도 영어도 전혀 못 하는 학생이었다. A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B를 가르쳤을 때도, 스웨덴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나에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학생들이 한국어도 영어도 전혀 못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라고 물어보였다. 나는 당연히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한글을 배우는 제일 첫 단계인 모음 '아, 야, 어, 여, 오, 요, 우, 유, 으, 이'를 오직 ‘한국어로만’ 가르치는 방법을 스웨덴 아이들을 가르쳤던 경험을 통해 소개하려고 한다.


<도입>


1.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한 후 오늘의 학습 목표를 소개한다.     


교사 : (고개를 숙이며) 안녕하세요?

-> 학생들은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모른다. 하지만 처음 만났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기 때문에 인사말이라는 것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교사가 인사를 했는데 대답을 안 하면 학생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고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한다. 그럼 상대방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을 때는 본인도 ‘안녕하세요?’라고 응답을 해야 한다는 것을 눈치로 알 수 있다.     


학생들 : 안녕하세요?

-> 학생들이 제대로 대답하면 박수를 치며 칭찬한다. 학생들에게도 박수를 치라고 바디랭귀지로 권유한다. 박수를 치면 학생들이 재미있어하고 수업 분위기도 좋아진다.

     

교사 :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최oo이에요. (칠판에 쓴다. 명찰이 있으면 명찰을 들어 보여주고, 명찰이 없으면 손으로 본인을 가리키며 말한다.) 이름이 뭐예요?

-> 학생들은 ‘이름’이나 ‘이름이 뭐예요?’가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교사가 자기 이름 말하고 칠판에 썼으므로 ‘이름의 뭐예요?’가 자기 이름을 말하라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학생들 : 마틴, 레빈, 에이미.


교사 : 잘했어요! 마틴, 레빈, 에이미. 만나서 반가워요.(세 명 모두에게 악수를 하며 ‘만나서 반가워요’라고 말한다)     


학생들: 만나서 반가워요.

-> 성격이 활발한 학생들은 어눌한 발음으로 교사의 말을 따라한다. 여기까지만 했는데도 학생들은 ‘안녕하세요?’,‘이름이 뭐예요?’,‘만나서 반가워요’라는 말을 배웠다. 굳이 현지어나 영어로 설명해주지 않아도 말이다.


2. 오늘 배울 학습 목표를 소개한다.


교사 : 오늘은 모음을 공부할 거예요. (아래 화면을 보여주며)

-> 마찬가지로 학생들이 교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도 사진을 보여줬기 때문에 저게 모음이고 오늘 저걸 배운다는 걸 알 수 있다. ‘모음’이 무슨 뜻인지는 굳이 몰라도 된다.


모음1


입모양 예시

<설명>


1. 교사가 1~2번 소리내어 읽는다. 이때 따라하지 말고 듣고 입모양을 보고 소리를 익히게 한다.


교사 : 자, (귀에 손을 올리고) 잘 들으세요. (손가락으로 입과 눈을 가리키며) 그리고 입을 보세요. (손으로 말하는 흉내를 한 다음 엑스 표시하며) 따라하지 마세요.


-> ‘잘 들으세요, 입을 보세요, 따라하지 마세요’가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바디랭귀지로 다 이해할 수 있다.


2. 1번 단계 후에는 이제 학생이 따라하게 한다. 한 단어를 최소한 세 번 이상 교사의 발음을 따라한다. 입모양을 정확하고 크게 해서 발음하고 학생들의 눈을 맞추며 발음한다. 학생들의 발음이 어색하면 다시 따라하게 한다.


교사 : 이제 잘 들으세요. (손으로 말하는 흉내를 내며) 그리고 따라하세요. 아, 아, 아. 야, 야, 야...


3.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읽는다.


교사 : (손으로 학생과 교사 자신을 아우르며) 이제 같이 읽어요. (손으로 확성기 모양을 만들고) 크게 말해요.     

4. 한 명씩 시킨다. 제일 잘하는 학생부터 시켜서 못하는 학생의 부담을 덜어주고, 못하는 학생이 연습할 시간을 준다.


교사 : 이제 마틴! 마틴이 읽으세요. 아, 야, 어, 여...


5. 발음이 헷갈리는 모음쌍을 칠판에 쓰고 연습한다. 학생들은 보통 ‘ㅗ/ㅜ’, ‘ㅏ/ㅓ’, ‘ㅛ/ㅠ’,‘ㅡ/ㅣ’를 헷갈려한다. 먼저 따라하게 한 후 개별 연습을 시킨다.


교사 : (손가락으로 눈을 가리키며) 잘 보세요. 그리고 따라하세요. (따라한 후) 이제 마틴! 읽으세요.


<연습>


1. 쓰기 연습을 한다. 다음과 같은 쓰기 연습 유인물을 나눠 준다. 교사는 계속 돌아다니며 학생들이 쓰는 것을 보고 틀린 것이 있으면 고쳐준다. ‘한글’ 단계에서는 시간이 부족해도 쓰기 활동은 수업 시간에 해야 한다. 숙제로 내주고 싶으면 수업 시간에 쓰기 활동한 자료를 새 종이로 다시 줄 것! 주의해야 할 점은 유인물을 만들 때 ‘고딕체’로 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다른 글자체, 예를 들면 함초롱바탕체로 유인물을 만들어서 주면 학생들이 ‘ㅣ’를 ‘ㄱ’하고 비슷하게 쓰는 오류를 저지른다. 쓰기 활동이 끝나면 학생들에게 자기가 쓴 것을 다시 읽어 보라고 한다.


(좌)고딕체/(우)함초롱바탕체. 쓰기 연습하는 유인물은 되도록 고딕체로 만들어서 줄 것!


2. 듣기 활동을 한다. 교사가 하는 말을 잘 듣고 맞는 모음을 찾는다. 문제를 다 풀고 정답을 알려준 후에는 틀린 글자를 다시 같이 읽으며 복습한다. 소리의 차이를 들려주며 입모양의 차이도 보여준다.


교사 : 잘 들으세요. 그리고 (손가락으로 1 표시를 하며) 1번이에요, (손가락으로 2 표시를 하며) 2번이에요, 말하세요.

-> 학생들은 1번, 2번이라는 단어를 몰라도 교사의 바디랭귀지로 다 이해할 수 있다.

  

다 듣고 난 후에는 이렇게 정답을 표시해서 알려준다.

학생들 : 1번! 2번!

-> 교사가 마치 퀴즈 프로그램을 진행하듯이 하면 학생들이 아주 재미있어하면서 경쟁하듯이 대답을 한다.

    

교사 : 잘했어요!

-> 한글 단계부터 ‘잘했어요’라는 말을 많이 해야 학생들이 자신감을 얻는다. 물론 ‘잘했어요’가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아래 이미지를 보여주며 말하면 이해할 수 있다.

잘했어요!


8. 오늘 배운 모음만 들어간 단어를 보여 주며 모음을 복습한다. 마찬가지로 교사가 먼저 들려주고 세 번 이상 따라하게 한 후 학생들에게 개별적으로 말하게 한다. 



9. 8번에서 배운 단어로 쓰기 연습을 한다. 마찬가지로 다 쓴 학생은 자기가 쓴 것을 쭉 읽어보게 한다. 단어가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된다. 오늘 학습 목표는 단어 공부가 아니라 ‘모음’을 읽고 쓸 수 있는 거니까.


단어 연습지


한국어를 한국어로만 가르치는 방법을 한글의 제일 첫 단계인 모음 '아, 야, 어, 여, 오, 요, 우, 유 , 으, 이'를 가르치는 예시를 들어 설명해 봤다. 이건 내가 가르치는 방식으로 교사마다 방법은 다를 수 있다. 그 다음 자음 예사소리(ㄱ,ㄴ,ㄷ,ㄹ,ㅁ...) 가르치고, 자음과 모음을 합쳐서 발음하고 쓰는 것을 가르치는 것까지 소개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너무 내용이 많아진다. 한글을 가르치는 것이 걱정되는 초보 한국어 교사나 예비 한국어 교사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길 바란다.


 



<출처>


모음 1 : <초등학생을 위한 표준 한국어 1>

ǥ���ѱ����_�ʵ�_1�� (korean.go.kr)


입모양 : <세종한국어 입문> 누리 세종 (iksi.or.kr)

표지 이미지, 잘했어요 손 모양 : pixaba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