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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Mar 11. 2021

나의 사랑하는 스웨덴!

스웨덴에서 온 삼남매

새로 전학 온 스웨덴 학생들은 다루기가 힘들었다. 일단 교재가 고민이었는데, 학생들이 2학년과 3학년, 5학년이어서 샨드라처럼 <초등학생을 위한 표준한국어 저학년 의사소통> 교재를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저학년용과 고학년용을 따로 나누지 않은 <초등학생을 위한 표준한국어 1>을 사용했는데, 이 교재는 2013년에 나온 교재로 고칠 점이 많이 있었다. 게다가 교재는 내가 개인 돈으로 사야 해서 세 명에게 모두 줄 수 없어 한 권만 주고 숙제할 때 참고하게 했고, 수업 때는 전자책 교재를 캡처해서 PPT로 따로 보여 줘야 했다.


그리고 세 명이 남매라 웃고 떠들고 서로 놀리며 장난을 치는데, 수업을 한 시간밖에 안 해서 아이들이 장난을 많이 치면 수업 시간이 부족했다. 특히 둘째 레빈과 첫째 마틴이 서로 장난을 많이 쳤다. 레빈은 형한테 은근히 경쟁심을 느끼는지, 내가 쓰기 연습지를 나눠 주면 정확히 쓰는 것보다 형보다 빨리 쓰는 거에 더 신경을 썼다. 그러다가 형인 마틴이 자기보다 빨리 쓰고 발음도 정확하게 해서 내가 틴을 칭찬하면 삐져서 교실 뒤쪽으로 가거나 교실을 나가버리기도 했다. 레빈의 이런 경쟁심은 수업에 방해가 되기도 했지만, 게임으로 배운 것을 연습할 때는 오히려 좋은 효과를 보이기도 했다. 한글 수업을 할 때 책상 위에 단어 카드를 늘어놓고 내가 말한 단어를 빨리 찾는 게임을 했었는데, 레빈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단어를 찾았다. 눈에서 불이 나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단어 카드를 늘어놓고 교사가 말한 카드를 빨리 찾는 게임을 하니 학생들이 아주 재미있어했다.


첫째 마틴은 레빈처럼 장난기가 있었고 동생들을 계속 놀렸는데, 첫째라서 그런지 은근 동생들을 돌보고 책임감도 있었다. 동생이 한국어 교실에 안 오면 챙기러 가고, 막내인 에이미가 쓰기 활동을 잘 못하고 있으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며 도와주기도 했다. 또 영어를 조금 할 수 있어서 동생들이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영어로 대신 말해주는 역할도 했다.


막내인 에이미는 정말 귀여운 아이였다. 9살이라는 게 안 믿길 정도로 몸도 작았고 목소리도 작았다. 그리고 한국어를 배우는 속도도 오빠들에 비해 아주 느렸다. 하지만 공부는 제일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다. 내가 쓰기 유인물을 나눠주며 쓰기 연습을 하라고 할 때 두 오빠들은 서로 장난을 치다가 내가 앞으로 가서 조용히 하고 쓰라고 말을 해야만 쓰기를 시작했는데, 에이미는 유인물을 나눠주는 순간부터 긴장하며 연필을 꼭 쥐고 천천히 쓰기를 시작했다. 가끔 내가 설명을 하는데 오빠들이 떠들면 조용히 하라고 따끔하게 야단을 치기도 했다. 참 여러모로 귀엽고 고마운 학생이었다.


아주 귀여운 것을 봤을 때 ‘심쿵하다(심장이 쿵 하다)’라는 말을 쓴다. 이번에는 스웨덴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심쿵했던 경험을 쓰려고 한다.


힘든 한글 공부를 끝내고 <초등학생을 위한 표준한국어 1> 6과 ‘안녕하세요?’를 가르칠 때였다. 교재에 있는 나라 이름을 공부할 때였는데, 교재에는 ‘스웨덴’이 없었다. 학생들은 자기 나라가 없자 약간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PPT로 나라 이름을 복습할 때, 내가 제일 마지막에 스웨덴 사진을 보여주자 학생들은 신이 나서 ‘스웨덴’을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기뻐했다.


학생들 : 스웨덴이 있어! 스웨덴 최고!(아마도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말했으니까.)

   

교재에는 스웨덴이 없었다. 하지만 ppt로 이렇게 스웨덴을 보여주니 학생들은 좋아서 난리를 쳤다.


나는 고작 스웨덴 하나를 추가한 걸로 이렇게까지 기뻐하나 싶었지만, 사소한 것에 기뻐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귀여웠다.


나라 이름을 끝내고 이름을 묻고 답하기, 나라 묻고 답하기도 모두 공부한 후에, 나는 학생들에게 질문했다.


나 : 여러분은 어디에서 왔어요?

학생들 : 스웨덴! 스웨덴에서 왔어요!


교재에 있는 예문을 읽어보라거나 ‘이름이 뭐예요?’ ,‘ 라몬은 어디에서 왔어요?’ 이런 질문을 하던 어색하게 말하거나 개미가 기어가는 것처럼 작은 목소리로 말하던 아이들이, 자기들의 모국인 스웨덴을 말할 때는 마치 누가 더 크게 말하나 시합하는 것처럼 목청이 찢어져라 대답했다. 



교재에 있는 연습을 모두 마친 후에 학생들에게 사람 이름과 나라 이름 카드를 나눠 줬다. 먼저 학생들 이름이 들어가 있는 사람 이름 카드를 이름이 안 보이도록 뒤집에서 한 장씩 뽑게 했다. 마틴은 ‘밍밍’, 레빈은 ‘마틴’, 에이미는 ‘아키라’ 카드를 집었다. 레빈은 자기가 형이 되었다며 ‘우와아~ 마티인~’하며 마틴을 놀려댔고 마틴은 ‘I am Chinese!’(나는 중국 사람이야)라고 말하며 낄낄댔다. 에이미는 나에게 ‘아키라? 아키라?’라고 말했는데 아키라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궁금해하는 것 같아서 ‘일본’이라고 말하니 수줍게 웃었다.


아이들에게 나눠 준 사람 이름 카드


그 후에 나라 이름 카드도 나눠 줬는데, 우연히도 에이미가 ‘스웨덴’을 뽑았다. 조용하고 내성적이던 에이미는 자기가 스웨덴을 뽑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스웨덴!’을 외쳤다. 마틴과 레빈은 그런 에이미를 부러워했다.


학생들에게 나눠 준 나라 이름 카드. 에이미는 '스웨덴'을 뽑고 뛸 듯이 좋아했다.


카드 뽑기 후에 나는 학생들에게 ‘이름이 뭐예요?’, ‘어디에서 왔어요?’를 물어봤다. 에이미의 차례가 되자 에이미는 전에 못 보던 환한 미소로 ‘스웨덴에서 왔어요!’라고 크게 말했다.


활동을 마친 후 수업이 끝날 시간이 되어 나눠 준 카드를 다시 받으려고 했는데, 에이미에게서 스웨덴 카드를 가져가려고 하자 ‘우웅’ 거리며 싫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나는 에이미에게 ‘스웨덴이 좋아요? 그럼 가져요. It’s your card’라고 말했다. 마틴이 통역을 해 주자 에이미는 얼굴을 활짝 펴며 좋아했다. 그리고 마치 귀여운 강아지를 안는 것처럼 카드를 소중하게 품에 안으며 뭐라고 말했는데, 마틴이 말하길 ‘나의 사랑하는 스웨덴’이라고 했단다. 그런 에이미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정말 ‘심쿵’했다.


고작 ‘스웨덴’이라고 쓰인 카드 한 장인데 그렇게나 소중하고 좋을까 싶으면서도, 언어도 안 통하고 낯선 문화인 먼 타국으로 와서 많이 외로운 상태에서 조국 스웨덴을 이렇게라도 만나니 반가웠던 걸까 싶었다. 스웨덴 국기 사진을 보여 주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좋아하며 ‘스웨덴’을 연신 외치면 학생들의 모습에, ‘스웨덴’ 카드를 소중하게 품에 안고 집에 간 에이미의 순수한 모습에 내 마음도 ‘순수함’이라는 색으로 번진 듯한 날이었다.




<출처>

교재 이미지 : <초등학생을 위한 표준한국어 1>(2013. 국립국어원)

https://kcenter.korean.go.kr/repository/ebook/standard_korean/elementary_01/book.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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