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부터 7월까지, 살면서 가장 바쁜 날을 보낸 것 같다. 작년에는 주 27시간 수업에 대학원 박사과정 수업까지 듣느라 지쳐 이번 학기에는 좀 느슨하게 해야지 했는데... 박사과정 수업은 지난 학기보다 과제가 많았고, 청강 수업까지 하나 더 들어야 했다. 그리고 대학원 등록금에 강의하고 있는 2월과 8월에는 강의하는 학교가 방학이라 수입이 없다는 것에서 오는 부담에 결국 이번에도 수업을 많이 해서 몸을 혹사시켰다. 덕분에 수입은 어느 정도 보장이 됐고, 다양한 수업을 하며 많은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지만, 정신이 없어 수업 시간에 실수도 많이 하고 건강도 잃었다.
아래는 내가 지난 3월부터 7월까지 담당했던 수업이다.
1. 세종학당 초급, 중급 한국어 수업(온라인) - 1주에 2시간 10주, 1주에 6시간 10주
2. 말레이시아 학생 대상 온라인 토픽 중급 쓰기 수업(온라인) - 1주에 2시간 8주
3. 대학교 한국어센터(어학연수생들 대상) 강의(대면) - 1주에 8시간 20주
4. 대학교 외국인 학부생 대상 전공 한국어(대면 + 온라인) - 1주에 5시간 16주
5. 초등학교 다문화 학생 한국어 강의(대면) - 1주에 4시간 20주
6. 카페토크 한국어 회화 강의 (온라인) - 1주에 최소 1시간
7. 대학교 외국인 학부생 대상 토픽 특별 집중 강의 (대면) - 1주에 6시간 3주
8. 베트남 학생들 대상 한국 유학 비자 면접 대비 수업 (온라인) - 1주에 6시간 7주
물론 이 수업 들은 모두 동시에 한 건 아니지만, 보통 1주일에 23~25시간 수업을 하고 3주 동안은 1주에 37시간 수업을 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일반 회사원들은 1주일에 40시간 이상 일하는데 1주일에 37시간이 뭐가 힘들다고'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일하는 시간이 아닌 수업을 하는 시간만 최대 37시간이었다. 수업 준비는 당연히 훨씬 더 많은 시간이 들어간다. 그리고 이번에는 온라인 수업이 많아서 수업 자료 제작에 시간을 정말 많이 썼다. 주말 포함 쉬는 날 없이 새벽 2시까지 컴퓨터를 두들기며 대학원 과제를 하거나 수업자료를 만들었다.
일을 줄인다고 했는데, 이번 학기에는 이상하게 수업 제안이 많이 들어왔다. 제안이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인 데다가 '이번에 거절하면 다음에는 기회를 안 줄 수도 있다'는 생각, 대학원 학비와 수입이 없는 달에 대한 부담, 나의 고질적인 수업 욕심이 불러온 결과이다.
그리고 그 결과... 살이 빠졌다. 많이 먹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살찌는 음식을 좋아해서 자주 먹었고, 운동은 시간이 없어 하지 못했는데도 살이 빠졌다. 하지만 나는 '고생 많이 했으니까 빠진 거겠지' 생각했다. 눈에 띄게 많이 빠진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친구들이 너 살 빠진 것 같다고 했을 때도 일 많이 해서 그런 거고 많이 빠진 건 아니라고 말했다. 딱 맞던 바지가 헐렁해진 걸 느꼈을 때는 '아이스크림, 팥빙수 해치워야지ㅋㅋㅋ 합법적으로(?) 살찔 수 있겠네!'라고 생각했었다.
2주 전부터 시간이 조금 나기 시작해서 못 만났던 친구들을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밤에 과자 한 봉지와 맥주를 혼자 먹으며 영화를 보고, 뷔페도 가서 실컷 먹었다. 근데 그래도 살이 안 찐다. 뭔가 이상한 걸 느꼈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나보고 그렇게 기름진 음식 좋아하고 빵 좋아하는데 살이 잘 안 찌냐고, 안 찌는 체질 같다고 말한다. 아니다. 나는 원래 살이 잘 붙는 체질이다. 다만 운동을 좋아해서 꾸준히 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이렇게 먹고 운동 안 하면 당연히 살이 쪄야 한다. 그런데... 왜 바지 사이즈가 더 헐렁한 걸까?
마침 주기적으로 해야 하는 갑상선(정확한 명칭은 '갑상샘') 초음파 검사를 받아야 할 때가 와서 검사를 받았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갑상선이 넓어지고 안에 염증이 있다며 혈액검사를 받아 보자고 하셨다. 그래서 혈액 검사를 했는데, 백혈구 수가 너무 줄었고 여러 가지를 따져 보면 자가면역질환에 의한 갑상선기능항진증이 의심된다고 종합 병원이나 내분비내과 전문 병원으로 가 보라고 하셨다. 종합 병원은 예약이 한 달 뒤로 잡혀서 일단 오늘 청주에 유일하게 있다는 내분비내과 전문 일반 병원으로 갔다. 처음부터 다시 다 검사를 해야 한다고 하여 혈액검사, 갑상선 초음파검사를 받고 신체검사까지 받았는데, 체중계에 올라간 순간 깜짝 놀랐다.
나는 예전에 다이어트를 하다가 체중 강박을 심하게 겪어서 그 이후로는 건강검진 때가 아니면 체중을 재지 않았다. 그래서 1년에 한 번만 체중을 잰다. 그런데 한창 다이어트에 미쳐 있을 때 목표했던, 그러나 절대 이룰 수 없었던 그 몸무게가 되어 있었다. 혼잣말을 안 하는 편인데, 순간 "이게 뭐야?!" 하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제야 무서워졌다. 살이 빠져서 무섭다니.
의사 선생님의 말씀과 인터넷으로 읽은 갑상선기능항진증 증상은 내 상태와 딱 맞아떨어졌다. 체중 감소, 손 떨림, 기운 없음 심장 두근거림, 하루 종일 피곤함. 그런데 나는 이걸 그저 바빠서, 일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 걸로 생각했었다. 눈에 염증도 갑자기 자주 생기게 됐지만 이것도 온라인 수업과 수업 자료 만드는 것 때문에 밤에 컴퓨터를 많이 해서 그런 줄 알았다. 갑상선 초음파 검사 주기가 되지 않았으면 계속 그렇게 생각할 뻔했다. 큰 병은 아니지만 놔두면 몸이 전반적으로 점점 더 안 좋아지고 최악의 경우 심근경색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하니 이번에 알게 된 게 천만다행이다.
앞으로는 무엇보다 내 몸 건강을 신경 쓰고, 슬프지만 금주하고, 수업도 정말로 줄여야 할 것 같다. 건강도 챙기도 일도 수입도 챙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갑상선기능항진증의 원인은 모르겠지만 안 그래도 그전부터 면역력이 약했었는데 그동안 무리해서 공부하고 일을 한 게 더 면역력을 약화시킨 게 아닌가 싶다. 무리하게 욕심을 무린 지난날이 후회된다.
그래도 일을 많이 한 덕분에 학생들과 재미있는 경험도 많이 했다. 8월까지는 그래도 시간이 넉넉하니, 쉬면서 그동안 수업하면서 겪은 재미있는 경험을 소소하게 올리고자 한다.
독자님들, 앞으로 올릴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어 주시길, 그리고 건강 챙기시길 바랍니다^^
표지 사진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