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후에 세종학당 2학기
* 이 글은 2017년 후에 세종학당에서 한국어 파견 교원으로 근무했을 당시를 회상하며 쓴 글입니다.
방학이야? 그럼 이제 좀 쉬겠네? 출근한다고? 방학인데 왜 출근을 해?
2학기가 끝나고 방학이 됐다며 가족들에게 말했더니 가족들이 이렇게 말했다. 내가 시간 강사라면 방학에는 수업을 안 하니 당연히 출근도 안 하고 월급도 안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시간강사가 아닌 직원이므로 당연히 수업이 없을 때도 근무를 해야 한다. 파견 교원은 수업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업무뿐만 아니라 학당 행정 업무를 하기도 한다. 이건 학당마다 다르다. 어떤 학당은 파견 교원에게 수업과 수업 준비, 수업과 관련된 학사 업무만 하게 하는 곳도 있고, 어떤 학당은 그 외 학당 행정 업무나 추가 과제를 주기도 한다. 그리고 수업 외 업무를 하든 안 하든 휴가를 쓰지 않는 이상은 출근을 해야 한다.
방학이라 학기 중보다 여유로워진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아주 느긋하게 일할 수는 없었다. 방학 기간 동안 해야 하는 과제도 있었지만 우리 학당에서 하는 큰 행사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바로 '베트남 전국 세종학당 글짓기 대회 및 문화 교류 행사'이다. 후에 세종학당은 매년 한글날 전에 전국 세종학당 학생들 중에서 한국어 중급 수준 학생들을 대상으로 글짓기 대회 및 문화행사를 개최한다. 각 학당에서 먼저 예선을 치르고 최대 3명의 학생을 선발해 행사 당일 후에 세종학당에서 글짓기 대회 본선을 치르는 것이다. 행사는 1박 2일로 진행되며 후에 세종학당에서는 각 학당별 지도교사 한 명과 학생 한 명의 숙박비와 교통비를 지원해 준다.
행사 준비는 현지인 운영 요원 선생님이 담당한 일이 제일 많았지만, 우리 파견 교원도 행사 진행 준비를 같이 논의하고 운영 요원 선생님을 보조했다. 그리고 우리 학당 예선 대회를 치르고 본선에 나갈 학생들을 선별해서 지도했다. 글짓기 주제를 주면 학생들이 1주일 동안 글을 써 오고 그것을 피드백 해 주는 방법으로 지도했다. 학생들은 정말 성실하게 연습했다. 아직 대회는 한 달이나 남았는데도 내가 본인들이 쓴 글을 고쳐줄 때 떨리는 눈으로 잔뜩 긴장한 채 나를 바라봤다. 그런 학생들을 보며 나도 더 열심히 지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방학이니만큼 학기 중보다 여유가 있었고 학기 동안 못 쉰 것을 다 풀 수 있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언니와 남동생과 사촌 동생이 놀러 온 것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몇 개월 안 보고 살아도 별로 보고 싶다는 마음이 안 들었는데, 이상하게 외국에 나오면 한 달도 안 돼서 보고 싶어 진다. 시간이 맞지 않아 다낭 공항까지 마중 나가지는 못했고 예약한 그린 호텔 입구에서 언니 동생들을 기다렸다. 그린 호텔은 학당 바로 옆인 데다가 출근길에 있어서 출근길에 항상 직원들과 마주친다. 게다가 후에에 처음 왔을 때 3박 4일 동안 머문 곳이기도 해서 더욱 익숙하다. 로비에서 설레는 표정으로 연신 입구 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직원들이 와서 이야기를 걸었다.(영어로 이야기했지만 편의상 한국어로 씀)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중에 언니와 동생들이 호텔로 들어왔고, 나는 어린애처럼 언니한테 달려가 푹 안겼다. 가족들을 만나면 좋은 점은 나의 모습을 솔직하고 마음 편하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언니 앞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여행하는 동안 누군가의 선생님과 동료 교사가 아닌 동생의 모습으로 언니에게 실컷 어리광을 부릴 수 있어서 좋았다.
세종학당은 학습자들이 대부분 학생이나 직장인이기 때문에 토요일에 항상 수업을 한다. 그래서 학기 중에는 시간이 없어 주변 여행도 잘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다낭과 호이안 여행을 제대로 즐겼다. 먼저 후에에서 1박을 했다. 우리는 후에 고궁(다이노이.Dai Noi)에 갔다. 고궁은 전에도 동기인 김 선생님과 같이 가 봤지만, 가족들과 다시 가니 느낌이 새로웠다. 나는 그동안 짬짬이 배운 지식과 베트남어 실력을 발휘해 가이드 역할을 했다. 후에에서 1박을 한 후에는 다낭에 갔다. 다낭 숙소는 미케비치 바로 앞에 잡았는데, 경치가 정말 좋았다. 해 질 녘에 호텔 앞 해수욕장에 있는 야외 바(bar)에서 샴페인과 코코넛 주스를 마시며 바다 경치를 구경하니 잠시 현실을 잊고 로맨스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다음 날 호텔 수영장에서 바라본 해돋이도 절경이었다.
다낭 둘째 날에는 바나 힐(BàNà Hills)에 갔다. 바나 힐은 다낭의 바나 산 위에 있는데, 옛날 프랑스가 베트남을 점령했을 때 산 위에 지은 마을이다. 그래서 건물도 그렇고 마을 분위기에서 프랑스 느낌이 물씬 받을 수 있다. 여기에서는 놀이기구도 탈 수 있고 축제도 즐길 수 있다. 바나 힐은 5월에도 동기 김 선생님과 코이카 단원 선생님과도 같이 간 적이 있었다. 내가 한 번 갔었기 때문에 가이드도 해 줄 수 있어서 처음 갔을 때는 여기저기 헤매는 바람에 시간이 부족해져 즐길 수 없었던 것도 즐길 수 있었다.
그다음에는 호이안에 갔다. 호이안의 야시장과 구시가지 거리는 그 특유의 분위기가 정말 인상적이었고 좋았지만, 사람이 너무나도 많았다. 너무 많아서 길을 걷는 게 줄을 서서 걷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다낭과 후에보다 훨씬 더웠다. 해가 졌는데도 땀이 주룩주룩 날 정도였다. 우리가 가기로 한 식당은 입구부터 사람들로 붐볐는데, 대기 시간이 기본 1시간 이상이었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그 지역만의 특별한 음식을 먹기 위해 기다리는 것도 여행의 묘미 아닌가. 찜통 같은 더위 속에서 기다리다 먹은 음식은 정말 다들 인정할 정도로 맛있었다.
마지막 날, 우리는 다시 다낭으로 갔다. 비행기가 밤에 출발이라 낮에는 다낭의 테마 파크인 아시아 파크에 갔다. 테마 파크지만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도 별로 없고 놀이기구도 조금 시시한 것 밖에 없어서 재미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관람열차 하나는 정말 좋았다. 아시아 파크의 관람열차는 이제까지 본 것 중에서 제일 큰 것 같았다.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다낭 시내 전체가 보일 정도였다. 사람이 없어서 우리가 원하면 관람 열차에서 내리지 않고 더 탈 수 있었다. 그렇게 세 번을 타고 다낭에 해가 지는 모습을 구경하며 낭만에 취한 상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공항에서 언니 동생들과 이별하고 나 혼자 돌아오는 길은 정말 쓸쓸했다. 나는 원래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하고 혼자서도 잘 사는 사람인데도 언니 동생들과 같이 있던 시간이 즐거웠던 만큼 혼자가 된 시간이 외롭게 느껴졌다. 시간이 늦어 다낭에서 1박을 따로 하고 아침에 후에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다낭에서 유명한 반미 집에 가서 반미를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는데도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불과 하루 전 언니 동생들과 깔깔거리며 수다를 떨며 식사를 했던 것이 생각나서 쓸쓸했다. 하지만 나는 그 쓸쓸함을 뒤로하고 다시 나의 일상에 돌아가야 했다. 아주 바쁘고 정신없이 보낼 2학기를 맞이하기 위해.
여섯 살 다문화 아동 진수와 제가 서로를 치유하며 함께 성장한 이야기입니다. 진심을 담아 열심히 썼습니다. 천방지축 사고뭉치, 교사에게 반말하는 아이, 책과 글자를 보면 질색하던 아이, 유치원과 친구들이 싫다던 아이 진수가 저를 만나고 바뀐 이야기, 코로나19를 만나 한국어 교사라는 꿈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실의에 빠져 있던 제가 진수를 통해 다시 꿈을 향해 걷게 된 이야기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나를 기다리는 아이, 나를 볼 때마다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는 아이, 순수하고 맑은 눈으로 나를 보며 내가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고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아이. 이런 아이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진수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었고, 어느새 나도 모르게 이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어버렸다.
- <우리는 함께 자란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