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국어 교원 Aug 26. 2021

외국에서는 내가 한국 대표 이미지

2017년 후에 세종학당 3학기

베트남 후에(HUE)에 온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였다. 가게에서 빵을 사고 나오는데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안녕하세요오오~"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니 내가 가르치는 학생 두 명이 같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고 있었다. 학생들은 해맑게 웃으며 큰 소리로 인사했고, 나도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그런데 한국어 학당이 아닌 다른 곳에서 학생들을 마주친 건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은행에 신청한 체크카드를 찾으러 들어갔는데, '선생님 어서 오세요'하는 말이 들렸다. 깜짝 놀라 나를 부른 사람을 쳐다보니, 초급 3권 반 학생 '안'이 유니폼을 입고 은행 입구에서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나 : 안 씨, 여기에서 일해요?

안 : 네, 선생님. 반가워요. 왜 왔어요? 제가 도와요?

나 : 네! 카드를 찾으러 왔어요. 어디로 가야 해요?


안 그래도 베트남에 온 지 별로 안 되어 베트남어도 못하고 은행도 복잡하고 카드를 신청한 창구와 찾는 창구가 달라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되던 참이었다. 안은 나를 한 창구로 데려간 후 은행 업무를 보는 것을 도와줬다. 비록 초급 학생이어서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잘 되지는 않았지만, 낯설고 복잡한 곳에 나를 도와줄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되었다.


후에 2년 차인 2018년에는 2주가 지나도 나아지지 않는 감기 증상 때문에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진료를 받고 싶어, 후에에서 제일 괜찮은 병원인 국제 인터내셔널 병원에 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이제 막 한글을 공부하기 시작한 학생을 만났다! 병원 내 약국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완전 초급 학생이기에 할 줄 아는 한국어는 간단한 인사말밖에 없어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그런데 학생이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나를 자기 한국어 선생님이라며 소개를 하자 한순간 주변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은 눈을 반짝이며 나한테 자기도 한국어에 관심이 있다는 둥, 자기 아는 사람도 한국에 갔다 왔다는 둥 베트남어와 영어를 섞어 가며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학생에게 우리 학당 한국어 수업을 신청하는 방법을 물어보기도 했다. 


은행이나 병원, 길거리에서 학생을 만난 일은 반가웠지만, 당황스러웠던 경험도 있었다. 바로 술집(bar)에서 학생을 만난 것이다. 나는 원래 술을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니고, 마시더라도 가끔 집에서 혼자 마신다. 대학생 때도 술집에서 술을 마시지는 않았다. 그런데 외국에 있을 때는 가끔이지만 술집에 간다. 외국에 혼자 살면 가끔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는데, 나는 이 외로움을 다른 사람과 만나거나 전화를 하며 해결하기보다는 시끌벅적한 곳에서 혼자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며 해결하는 편이었다. 내가 사람들과 어울려 놀지는 않아도 그런 흥겨운 분위기 안에서 그 분위기를 즐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사람들이 많이 오는 카페에 가고 이렇게 아주 가끔이지만 혼술을 하러 술집에 가기도 했다. 


DMZ Bar Hue


내가 가는 술집은 후에 여행자 거리 입구에 있는 DMZ라는 곳이었다. 현지인 선생님과 한 번 놀러 간 적이 있어서 익숙하기도 했고 여행자 거리 입구라서 분위기도 경치도 아주 좋았다. 수업이 끝난 토요일 저녁 8시, 늦은 저녁을 먹을 겸 술도 마실 겸 DMZ에 갔는데, 한 종업원이 나를 보고 반기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이번 학기에 새로 등록한 초급 1권 반 학생이었다. 나는 새로 가르치게 된 학생들 얼굴을 아직 외우지 못해 누군지 몰랐는데, 학생은 나를 굉장히 반겼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술과 음식을 주문했는데, 사실 속으로는 조금 불편했다. 술집에서 술을 먹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술'이다 보니 괜히 눈치가 보였다. 선생님이 주말에 술집에서 혼술 한다고 학생들한테 소문이 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중에 몇몇 학생들이 알게 되기는 했는데, 그때는 그냥 재미있게 받아칠 수 있었다.


학생들 : 선생님, DMZ에서 술을 드세요?

나 : 네, 저는 가끔 술을 마셔요. 그리고 거기는 경치가 예뻐서 좋아요.

학생들 : 다음에는 저희하고도 같이 가요!

나 : 좋아요!


하지만 말만 저렇게 하고 학생들과 같이 가지는 않았다. 학생과 같이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규칙은 없지만, 그래도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는 건 수없이 많이 해도 같이 술을 같이 마시는 건 싫었다.


우연히 학생을 만나 제일 당황했던 장소는 술집이 아니라 공원이었다. 집 앞 공원에서 산책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옆에 다가와 '선생님'하고 나를 불렀다.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으니 우리 학당 학생인 것 같았고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얼굴이었다. 나도 인사했지만 속으로는 누군지 몰라 미안했다. 학생은 나를 아주 반갑게 바라봤기 때문이다. 


학생 : 선생님, 여기서 만나요. 이 근처에 사세요? 정말 반가워요.

나 : 네, 저도 반가워요^^

학생 : 그런데 선생님 저 알아요?

나 : 음... 얼굴은 아는데 이름을 몰라요. 미안해요.

학생 : 괜찮아요, 선생님. 저는 다른 반이에요. OO선생님 학생이에요.


알고 보니 내 담당 학생이 아니었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어서 다행이었다. 우리 학당은 그 당시 후에의 유일한 한국어 학당이었기 때문에 학생들이 항상 많았다. 1년에 3학기가 있는데, 한 학기에 아주 적게는 120명, 많게는 200명까지 등록을 했다. 모르는 얼굴이 충분히 있을 수 있었다. 학생이 말하길, 내 수업을 듣지는 않았지만 내 수업을 듣는 친구에게서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페이스북도 봐서 나를 잘 알고 있다고 다음 학기에는 내 수업을 듣고 싶다고 했다. 그 학생은 나와 페이스북 친구였는데, 나는 나한테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하는 사람이 사는 지역이 HUE이고 함께 아는 사람이 많다고 나오면 누군지 몰라도 그냥 친구 신청을 받아 줬다. 그 학생도 그런 경우였나 보다.


그런데 학생을 만나고 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자주 가는 식당, 길거리, 카페 등에서 나를 보는 사람들 중 이렇게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더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학생들 앞에서는 당연히 행동을 조심하지만, 학생들이 없는 곳에서도 행동거지를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뭐 남들이 보기에 안 좋은 행동을 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만약 실수로 손에 있던 쓰레기를 놓쳤는데 우연히 학생이 그 장면을 보고 오해를 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분 나쁜 일이 있어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는데 그걸 본 학생이 '저 선생님은 수업 때는 항상 웃고 있더니...' 하며 나를 이중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한번 본 장면으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되는 거지만, 그 사람과 가까이 지내지 않는 이상 사람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본 장면으로 판단하게 되니까. 후에에는 한국 사람이 별로 없다. 물론 여기도 K-POP과 한국 드라마, 영화의 인기는 아주 높아서 한국 사람과 문화가 낯설지는 않다. 하지만 미디어로 보고 듣는 사람보다 실제로 보고 만나는 사람이 주는 이미지와 영향이 더 강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내가 무심코 하는 행동이 여기에서는 우리 세종학당뿐만 아니라 한국의 이미지를 대표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실제로 이런 말을 하는 학생도 있었다.


"저는 한국인 선생님들이 정말 좋아요. 모두 친절하세요. 한국 사람들은 원래 이렇게 다 친절해요? 저는 한국인 선생님들 덕분에 한국 사람들도 좋아요."


물론 한국 사람들이 모두 친절할 것 같다는 것은 학생의 착각이지만, 우리의 행동이 한국의 이미지를 더 좋게 만든다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었다. 좋은 행동이 한국의 이미지를 좋게 만드는 만큼, 내가 혹시라고 실수로 저지른 행동이 한국의 이미지를 나쁘게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중했던 여름 방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