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초, 베트남 후에 세종학당에 처음 갔을 때, 학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엄지 손가락 길이의 작은 도마뱀 한 마리가 휙 지나가는 걸 보고 깜짝 놀랐었다. 갑자기 나타난 것도 놀랐지만 처음으로 도마뱀이라는 존재를 보니 크기는 작아도 놀랍기도 하고 좀 무섭기도 했다. 첫날 근무를 마치고 후에 세종학당 교원들과 회식을 했는데, 현지에서 10년 가까이 사신 학당장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셨다.
"베트남은 처음이라고 하셨죠? 여기서 하루 지내보니 어떠세요?"
"학당 계단에서 도마뱀을 봐서 깜짝 놀랐어요."
"하하 그 정도야 뭘... 베트남에서 도마뱀은 친구지요. 계속 보다 보면 귀엽게 보일 거예요."
친구라니! 어떻게 하면 도마뱀이 친구가 될 수 있단 말인가? 학당에서 봄 도마뱀은 굉장히 작은 편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조그만 것도 보기 싫었는데 어떻게 도마뱀이 귀엽게 보일 수 있다는 걸까? 난 절대 도마뱀이 귀여워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집을 못 구해 한 달 동안 2성급 호텔에서 살고 있을 때, 이 도마뱀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자려고 불만 끄면 뭔 이상한 소리를 목청껏 지르는 것이다.
끽끽, 깍깍, 재액재액(혹은 쌔액쌔액)
울음소리도 기분에 따라 다르게 내는 건지 가지각색이었고,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가 내는 것 같았다. 같이 후에로 파견 와서 같은 호텔에 묶고 있던 김 선생님에게 도마뱀 소리가 시끄럽지 않냐고 했더니 도마뱀도 소리를 내냐며, 전혀 못 들었다고 하셨다. 내 방이 도마뱀들 정기 모임 장소였나 보다. 대체 모이면 뭔 얘기를 하는 건지 서로 싸우는 건지 노는 건지 토론을 하는 건지 안 그래도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는 낯선 외국에 와서 외로운데 지들끼리만 신나게 떠들었다.
그래도 몇 주 동안 도마뱀을 자주 봐서 그런지 이제 도마뱀을 보고 놀라지는 않았다. 그저 밤에 소리가 시끄러울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어느 때와 같이 퇴근하고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가다가 기겁을 했다. 불이 켜니 뭔 길이는 손바닥보다 커 보이고 넓이는 적어도 5cm는 될 것 같은 도마뱀 한 마리가 화장실 윗벽을 타고 올라가더니 어디론가 쏙 사라진 것이다! 그전까지 본 도마뱀은 아무리 커도 길이는 중지 손가락, 넓이는 1cm 정도였다. 너무 놀라 샤워하는 것을 포기하고 얼른 세수와 양치만 하고 나왔다. 그날 밤, 잘 시간이 되어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는데 생전 처음 들어보는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끄아악 끄아악 끄아악!!
평소 도마뱀 울음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다만 그리 크지 않은 소리를 여러 마리가 내서 시끄러울 뿐이었다. 그런데 이 소리는 달랐다. 한 마리가 목이 찢어져라 울어재끼는데, 아니 이거 도마뱀이 아니라 새끼 악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솔직히 무서웠다.
'이 도마뱀이 내 침대 위로 올라와 내 몸에서 놀면 어떡하지! 이 도마뱀은 똥도 클 텐데 천장 기어 다니다가 내 얼굴에 떨어뜨리면 어떡하지?'
어쨌든 잠을 자기는 했는데, 너무 짜증이 난 나머지 다음 날 4성급 호텔이자 처음 후에에 왔을 때 한 달 머물 호텔을 구하기 전 잠깐 머물렀던 그린 호텔을 1박 예약했다. 호텔에 묶고 있는데 도마뱀 때문에 다른 호텔을 예약한 것이다. 그 왕도마뱀과 엄청난 울음소리를 또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그린 호텔에서 푹 자고 맛있는 호텔 조식도 먹으며 심신의 안정을 취한 다음, 다시 내가 머물고 있던 호텔로 돌아왔다.
나는 그전까지 설치하지 않았던 모기장을 설치했다. 사각 모기장이었는데, 모기와 혹시라도 천장에서 떨어질 도마뱀 똥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호텔 방이라 설치하기가 이래저래 불편해서 그냥 사용하지 않았던 모기장이었다. 하지만 그 왕도마뱀을 경험하고 나니 모기장을 어떻게든 설치해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호텔살이를 끝내고 집을 계약한 후에 내 방에 설치한 사각 모기장이다.
다행히 그 왕 도마뱀은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다음에 내가 만난 건 호텔 화장실 바닥을 자기 집 안방인 것처럼 활보하는 검지 손가락만 한 검은색 바퀴벌레였다. 그것을 보는 순간 머리가 사고를 정지해버렸다. 베트남은 바퀴벌레가 크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나는 즉시 화장실 문을 닫고 프런트로 내려가 직원에게 인터넷에서 바퀴벌레 사진을 보여주며 이게 지금 방에 있다고 다급하게 말했다. 직원은 여유롭게 웃으며 책이었나 신문지 같은 걸 돌돌 말아 내 방 화장실로 들어갔고, 이어서 화장실에서 무언가를 팍 팍 때리는 소리가 났다. 나와 김 선생님은 밖에서 직원이 제발 바퀴벌레를 제대로 잡아주길 기다렸고, 한편으로는 저렇게 때리다가 바퀴벌레 알이 터지면 어쩌나 걱정도 했다. 이어 직원이 웃으며 축 늘어진 바퀴벌레 다리를 들고 나왔고 우린 비명을 지르며 황급히 방구석으로 도망갔다. 그리고 한국에서 바퀴벌레와 개미를 막는 데 효과적이라고 해서 산 바퀴벌레 개미 퇴치 분필을 화장실 입구, 침대 주위에 문질러댔다. 제발 저런 바퀴벌레를 보는 게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라며.
도마뱀과 바퀴벌레
그럴 리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바퀴벌레 개미 퇴치 분필은 하나도 효과가 없었고, 나는 2018년 12월에 한국으로 귀국하는 날까지 바퀴벌레와 동거했다.
회식 때 학당장님이 하신 말씀이 맞았다. 도마뱀은 친구였고 귀여웠다. 검지나 중지만 한 바퀴벌레, 약을 뿌리면 약이 아니라 마약을 먹은 것처럼 방안을 날아다니며 보고 싶지 않은 비행쇼를 하는 바퀴벌레, 배를 까뒤집고 징그러운 다리를 사정없이 바들거리며 죽어가는 바퀴벌레를 생각하면 정말 정말 귀여운 존재였다.